재건축 안전진단 강화에 주민 안전·형평성 우려
"재건축 사업 '불투명'...집값 상승으로 이어질 것"
[서울=뉴스핌] 노해철 기자 = 정부가 재건축 안전진단을 강화하면서 서울 양천구 목동신시가지 아파트와 송파구 올림픽선수촌아파트 등 노후 단지의 불만이 커지고 있다. 아파트 단지의 안전성 여부를 따져야할 안전진단이 정부의 재건축 규제 수단으로 변질됐다는 이유에서다.
일각에선 이번 대책으로 단지별 안전진단 통과 여부에 따른 형평성 문제가 불거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재건축 사업을 통한 주택 공급이 줄면서 오히려 집값이 오르는 부작용이 발생할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 "주민 안전은 '뒷전'...형평성 어긋나"
국토교통부는 17일 발표한 '주택시장 안정을 위한 관리방안'에서 재건축 안전진단 절차를 강화했다. 1·2차 정밀안전진단의 선정·관리주체를 기존 시·군·구에서 시·도로 바꾸고, 2차 안전진단에선 현장조사를 의무화하는 내용이 담겼다. 또 2차 안전진단 자문위원회는 구조안전성, 건축·설비 노후도 등을 심의하고 총점은 비공개하기로 했다.
이번 대책이 시행되면 준공 30년이 넘은 노후 아파트 단지들은 재건축 사업이 더 어려워질 것으로 예상된다. 대표적으로 안전진단을 추진하는 목동신시가지 아파트와 올림픽선수촌 아파트 등이 꼽힌다. 이들 단지는 안전진단에서 A~E등급 중에서 D등급 이상을 받아야 정비구역 지정, 조합설립, 사업시행인가, 관리처분인가 등 재건축 사업 절차를 진행할 수 있다.
최근 1차 안전진단 비용 모금을 진행 중인 올림픽선수촌은 주민 안전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올림픽선수촌아파트 재건축 모임(올재모)에 따르면 1988년 지어진 이 단지는 내진설계가 이뤄지지 않았다. 천장과 외벽 균열, 콘크리트 노출 등의 문제도 발생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유상근 올재모 회장은 "정부가 노후 아파트 주민들의 안전문제를 가지고 규제 수단으로 삼고 있다"며 "앞으로 내진 성능 평가에서 좋지 않은 결과가 예상돼 주민 반발은 더욱 커질 것으로 보인다"고 토로했다.
총 14개 단지로 구성된 목동신시가지 아파트에선 단지별 형평성 문제가 불거질 것으로 보인다. 전체 단지 중 최근 2차 안전진단(적정성 검토)을 통과하거나 진행 중인 목동6단지와 9단지는 이번 규제를 피했다. 그러나 최근 1차 안전진단을 통과한 11단지를 포함한 12개 단지는 통과 여부가 더욱 불투명해진 상황이다.
목동11단지 재건축추진준비위원회 관계자는 "이미 1차 안전진단 결과가 나온 상황에서 이번 규제가 소급 적용된다면 안전진단을 최종 통과한 6단지와의 형평성 차원에서 문제가 있다"며 "정부가 노후 아파트 주민들을 집값을 올리는 주범으로 몰고 있다"고 털어놨다.
[서울=뉴스핌] 노해철 기자 = 목동6단지 정밀안전진단 최종 통과 소식을 알리는 현수막. [사진=노해철 기자] 2020.06.18 sun90@newspim.com |
◆ 재건축 규제로 주택 공급 ↓..."집값 오를 것"
전문가들은 안전진단 문턱을 넘지 못하는 단지들이 늘면서 서울 내 주택 공급이 줄어들 것이라고 지적했다. 공급 부족은 중장기적으로 집값 상승으로 이어질 것이란 설명이다.
수요가 몰린 서울에서 재건축 등 정비사업을 통한 주택 공급은 큰 비중을 차지한다. 부동산114 조사 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1월부터 10월까지 서울의 신규분양 2만1988가구 중 정비사업 물량 비중은 76%(1만6751가구)에 달했다. 전국 평균인 28%을 훨씬 웃도는 수치다.
권대중 명지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이번 대책이 당장 시장 안정화에는 도움이 될 수 있지만, 중장기적인 대책이 되진 않는다"며 "수요가 있는 곳에 공급을 억제한다면 결국 집값이 오를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책임연구원은 "안전진단 강화는 재건축 사업 추진을 어렵게 하려는 정부의 의도가 의심된다"며 "주차난을 겪는 노후 단지에선 화재 발생 시 소방차 진입로가 확보되지 않는 등 안전성 문제가 커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앞으로 안전진단 통과가 어려워지면서 이미 통과한 단지에 수요가 몰리는 '풍선효과'가 발생할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김구철 미래도시시민연대 조합경영지원단장은 "안전진단을 비롯한 재건축 인허가를 강화하는 것은 결코 시장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며 "인허가 통과가 더 어려워지면서 이미 관련 절차를 마친 단지 위주로 수요가 몰리는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sun90@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