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두환, 12·12 직후 미국 대사 만나 "군부 장악 도움 원해"
[서울=뉴스핌] 허고운 기자 = 정부는 5·18 민주화운동 40주년을 앞두고 미국 국무부가 전달한 기밀해제 문서를 15일 공개했다. 발포명령 책임자 등 핵심 의혹을 풀 결정적 단서는 문서에 포함되지 않았으나 진상 규명을 위한 추가 문서 확보의 첫걸음을 디뎠다는 평가가 나온다.
외교부에 따르면 이번에 공개된 5·18 민주화운동 관련 자료는 43건, 140쪽 분량의 미 국무부 문서로 주한미국대사관이 생산한 문서가 포함됐다. 문서 내용 대부분은 과거에 공개된 바 있으나 이번에는 당시 비공개된 부분까지 완전히 공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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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뉴스핌] 이형석 기자 = 사자(死者)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된 전두환 전 대통령이 지난 4월 27일 오후 광주 동구 광주지방법원에서 공판을 마치고 나서고 있다. 2020.04.27 leehs@newspim.com |
◆ 美 대사 "정치적 야심 가진 전두환 경계해야"
문서는 1979년 12월 12일 전두환·노태우 등 신군부 세력이 일으킨 군사 쿠데타 직후인 1979년 12월 13일부터 1980년 5월 17일 비상계엄 확대 선포, 김대중 내란 음모 사건 재판이 끝날 때까지인 1980년 12월 13일까지의 기록이 담겼다.
다만 공개된 자료 중 완전하게 새로운 내용은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외교부 당국자는 "관련 증언이나 회고록 등을 통해 이미 알려진 내용"이라며 "미국이 이미 공개된 문서 가운데 가려져 있던 부분이 새롭게 추가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번 공개로 윌리엄 글라이스틴 주한미국대사가 1979년 12월 14일 전두환 보안사령관과 면담한 후 미 본국에 보고한 내용 전체가 확인됐다.
글라이스틴 대사는 당초 전두환과의 만남이 쿠데타를 인정하는 모양새가 될 수 있다면서 꺼렸으나 군부 분열 등 사정을 알아보기 위해 면담을 강행했고, 전두환에 대해 '정치적 야심을 가진 사람으로 경계가 필요하다'고 평가했다.
글라이스틴 대사는 또 전두환과 신군부를 1908년 터키에서 군사혁명을 일으킨 젊은 장교들을 의미하는 'Young Turks'(젊은 투르크)로 지칭하며 이들이 미국의 도움을 원한다고 판단했다.
이같은 내용은 1996년 처음으로 5·18 관련 문서가 공개됐을 때 일부가 공개됐고, 1999년 글라이스틴 대사의 회고록에도 담겼으나 공식 문서로 확인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 이희성 "민주화운동 통제 못하면 베트남처럼 공산화될 것"
5·18 민주화운동 전날 당시 최광수 대통령 비서실장이 글라이스틴 대사와 만나 나눈 대화도 공개됐다. 지난 1996년 공개 때는 빠져 우리 정부 고위관계자의 정국 판단을 읽기 어려웠다.
최 비서실장은 계엄령 사태를 원만하게 해결하고 새로운 정치발전 프로그램을 마련하라고 충고하는 미 대사에게 최규하 정부는 시민사회의 요구를 수용, 정치 개헌을 해보려 했지만 사실상 신군부의 눈치를 보고 있다고 말한 것으로 나타났다.
아울러 글라이스틴 대사가 5·18 당일 이희성 계엄사령관과 만난 이후 정세 분석을 본국에 보고한 내용도 완전히 공개됐다. 이희성 사령관은 면담에서 민주화운동을 통제하지 못하면 한국이 베트남처럼 공산화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날 외교부 당국자는 "5·18 40주년을 앞두고 미국으로부터 기밀이 해제된 관련 자료를 전달받은 것은 미국도 한국에 협조적이고 우호적 제스처를 취한 것"이라고 평가하며 "미측은 한미동맹 협력 정신에 따라 내용을 공개한다고 밝혔다"고 전했다.
우리 정부가 미 정부에 5·18 관련 기록물을 공식 요청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외교부는 앞으로도 추가 공개가 이뤄질 수 있도록 미 측과 적극 협력할 계획이다.
heogo@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