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이영란 편집위원 = 백현진(48)의 그림은 회화가 지닌 매력을 듬뿍 품고 있다. 알쏭달쏭 모호한 가운데 상상의 나래를 마음껏 펼치게 하니 말이다. 으흠, 저건 신호등일까, 저 황금빛 바탕에 방울방울 매달린 건 눈물일까 하며 그림 속 이미지들을 따라가며 끝없이 음미하게 만든다. 알 수 없는 부호와 기호, 다채롭고 매혹적인 색감, 자유로운 선과 면이 거침없이 중첩되며 회화가 선사하는 즐거움에 빠져들게 한다. 감상자들은 잠시나마 자유와 활기를 만끽하게 된다.
화가 뿐 아니라 배우, 가수, 감독, 디자이너까지 예술의 여러 영역을 종횡무진 누벼온 백현진이 서울 용산구 경리단길의 젊은 갤러리인 P21(대표 최수연)에서 개인전을 개막했다. 백현진은 오는 26일까지 '핑크빛 광선(P-ray)'이라는 타이틀 아래 갤러리 벽면을 가득 채운 대형회화를 포함해 다수의 페인팅 작업과 소형드로잉, 설치작품 등 총 15점의 신작을 공개했다.
백현진은 화가로서도 국내외에서 예술성을 인정받아왔다. 한국은 물론 영국에서도 그의 팬이 따로 조성돼 있을 정도다. 그는 "다른 무엇을 하지 않을 때라도 꼭 그림은 그린다"고 한다. 그에게 회화란 다층적이면서도 다차원적인 스스로의 미적 감수성과 가장 연동이 잘 되는 매체다. 그림 작업 자체가 전방위적으로 활동하는 백현진 예술의 근본이요, 출발점인 셈이다.
[서울=뉴스핌] 이영란 기자= 백현진의 회화 '말할 수 없는'. [사진= P21] art29@newspim.com |
애초에 청사진 없이 시작되는 백현진의 그림은 내러티브를 완성하려는 욕심이 없다. 몇번의 붓질로 작가가 느꼈던 찰나의 감성들이 캔버스에 산발적으로 배치되면서 기묘한 구성을 이룬다. 즉흥적이고 직관적인 붓질은 이전에 배치된 붓질에 반응하며 또다시 다른 이미지로 구현된다. 불균형한 붓질간의 균형을 맞추는 듯하다가도, 부지불식 어그러뜨려버리는 행위를 반복하면서 백현진은 '정답이 없는 회화의 그 정답없음'에 유유히 이른다.
P21에서 갖는 개인전의 타이틀로 '핑크빛 광선(P-ray)'을 지을 당시, 작가는 새로운 관계에 대한 막연한 욕망에서 '핑크빛'을 떠올렸다. '핑크빛 광선'이 머릿 속에 그려지는 동시에, 이내 명멸하는 신기루 같은 것이라 느꼈다.
그의 작업방식처럼 전시제목 '핑크빛 광선(P-ray)' 또한 제목을 짓는 그 순간, 백현진의 감정과 욕망이 중첩된 흔적이라 할 수 있다. 백현진은 이번 전시의 오프닝에서 퍼포먼스를 통해 '핑크빛 광선'을 연주하고 직접 노래도 불렀다. 작가는 '핑크빛 광선' 개인전에서 선보일 퍼포먼스와 그림을 통해, '농담과 통곡들', '침묵과 반성들', '섬광과 혼란들', '폭우와 망상들', '고립과 텅 빈 마음'과 같은 온전하지 않고, 모호하고 불안정한 생각으로 가득 찬 인간의 복잡다단하고 불가사해한 감정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
[서울=뉴스핌] 이영란 기자= 전방위 예술가 백현진의 신작회화 '농담과 통곡의 벽지'. [사진= P21]. art29@newspim.com |
백현진은 말한다. "저는 언어로는 할 수 없는 '무엇'을, 말 그대로, 언어로 할 수 없기에 이미지(회화/설치/퍼포먼스/연기)나 소리(음악/설치/퍼포먼스/연기)로 다루는 것입니다. 반면 다른 매체로는 다룰 수 없고 언어로만 다룰 수 있는 '무엇'이 있다면, 그때는 물론 언어를 사용합니다. 이번 전시는 언어나 소리로 다룰 수 없는 그 '무엇'을, 그림으로 기록하여 나타낸 경우입니다."
백현진은 홍익대학교 조소과 학사를 중퇴했다. 2007년 이탈리아 비아파리니를 시작으로, 한국, 영국, 독일 등지에서 다수의 개인전을 열었다. 2017년에는 국립현대미술관 '올해의 작가상 2017' 파이널리스트로 선정되기도 했으며, 쾰른 미하엘 호어바흐 재단(2015), 삼성미술관 플라토(2015), 상하이 민생현대미술관(2010), 쿤스트할레 빈(2007) 등 다양한 기관에서 전시를 가졌다. 또한 백현진은 한국 인디밴드 1세대 '어어부 프로젝트'와 프로젝트 듀오 '방백', 솔로가수로도 활동하는 싱어송라이터이자, 영화 <북촌방향>, <경주>, <그것만이 내 세상>과 드라마 <붉은 달 푸른 해>에서 강한 존재감의 연기를 선사한 배우로도 이름을 알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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