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박효주 기자 = 유통가 큰 별이 떨어졌다. 신격호 롯데그룹 명예회장이 향년 99세로 19일 오후 4시29분 별세했다. 향년 99세.
신 명예회장은 지난해 12월 18일 서울 아산병원에 입원한 후, 고령으로 인한 증세를 치료해왔다. 롯데그룹은 창업주인 고인을 기리고자 그룹장으로 4일 간 장례를 치르기로 결정했다.
신격호 롯데 명예회장 [사진=롯데지주] 2019.12.04 june@newspim.com |
신 명예회장의 장례 주관은 이홍구 前국무총리, 반기문 前UN사무총장이 명예장례위원장을 맡으며 장례위원장은 황각규 롯데지주 대표이사, 송용덕 롯데지주 대표이사가 각각 담당한다.
신 명예회장 임종을 앞두고 일본에서 출장 중이던 신동빈 회장도 급히 이날 귀국해 고인의 마지막을 지켰다. 신 회장과 함께 신동주 전 부회장, 신영자 이사장, 신유미 씨 등 4남매도 모두 모인 가운데 신 명예회장은 영면에 들었다. 그룹 내 주요 임원진들도 자리를 지켰다.
롯데 신격호 명예회장, 롯데제과 공장을 순시하는 모습(연도 미상). [사진=롯데]2020.01.19 hj0308@newspim.com |
◆껌사업으로 재계 5위 일궈낸 신화...'샤롯데' 주역 신격호
신격호 명예회장은 1922년에 5남5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일본에서 껌사업을 시작으로 주식회사 롯데를 설립했다. 이후 국내에 롯데알미늄 설립을 시작으로 사업을 키워 재계 5위 롯데그룹을 일궈냈다.
회사 이름 '롯데'는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에 나오는 여주인공 '샤롯데'에서 따왔다. 신격호 명예회장은 롯데가 샤롯데처럼 사랑받는 기업이 되기를 바라면서 직접 만들었다.
롯데호텔 설립 추진 회의를 진행 중인 신격호 명예회장(연도미상). [사진=롯데] 2020.01.19 hj0308@newspim.com |
롯데는 껌에 이어 초콜릿, 캔디, 비스킷 등 사업 영역을 넓혔고, 일본 굴지의 종합 제과기업으로 입지를 굳혔다. 롯데는 1959년 롯데상사, 1961년 롯데부동산, 1967년 롯데아도, 1968년 롯데물산, 주식회사 훼밀리 등 사업을 다각화하며 일본 10대 기업으로 성장했다.
일본에서 자리를 잡은 신 명예회장은 1966년 롯데알미늄과 1967년 롯데 제과를 설립했다. 국내에서 사업은 승승장구했다. 음료, 빙과 회사를 인수하고 관광, 금융, 건설, 석유화학 등 사업으로 진출했다.
롯데그룹은 1980년 고속 성장기를 거쳤고 2017년 초에는 신격호 명예회장의 숙원사업이었던 롯데월드타워도 개장했다. 신 명예회장은 이미 1987년 "잠실에 초고층 빌딩을 짓겠다"며 대지를 매입했고 결국 이를 30년 만에 이뤄낸 것이다.
지난 2011년 6월 롯데월드타워 건립 현장을 찾은 신격호 총괄회장. [사진=롯데] 2020.01.19 hj0308@newspim.com |
◆형제의 난 발발...재계 1세대 시대 막 내려
슬하에 4남매를 두고 있는 신격호 명예회장은 고심했다. 일본 사업은 장남인 신동주 전 롯데홀딩스 부회장에게 한국 사업은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에게 물려주고자 했지만 2015년 7월 형제 간 분쟁이 벌어졌다. 이 과정에서 신 명예회장도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다.
2016년 호텔롯데 대표와 롯데제과 사내이사에서 물러나면서 이듬해인 2017년에는 롯데쇼핑·롯데건설(3월), 롯데자이언츠(5월), 일본 롯데홀딩스(6월), 롯데알미늄(8월) 줄줄이 이사직을 내려놓았다.
경영권 분쟁과 함께 수감 위기에 처하는 등 수난을 겪은 신 명예회장은 결국 법원의 판단에 따라 사단법인 선을 한정후견인(법정대리인)으로 지정받기에 이르렀다.
신 명예회장은 경영비리 혐의로 2017년 12월 징역 4년 및 벌금 35억원을 선고받았으나 건강상의 이유로 법정 구속은 면했다.
이후 2018년 6월 법원 결정에 따라 서울 잠실 롯데월드타워 레지던스에서 소공동 롯데호텔로 거처를 옮긴 이후 건강이 악화했고 입원과 퇴원을 반복했고 19일 영면에 들었다.
빈소는 서울아산병원에 마련됐으며 발인은 22일 오전 6시다. 발인 후 22일 오전 7시 서울 롯데월드몰 8층 롯데콘서트홀에서 영결식이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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