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최원진 기자= 홍콩 시위 사태가 6개월 가까이 지속되고 있는 가운데 사그라들 기미는커녕 전쟁터를 방불케 하는 상황으로 심화하고 있다. 이를 놓고 미국 연방 의회에서는 '홍콩 인권·민주주의 법안' 가결을 앞두고 있고 호주 대학가에서는 홍콩의 민주화 시위 지지 움직임이 확산하면서 자칫 글로벌 충돌로 이어질까 우려가 확산되고 있다.
18일(현지시간) 이른 오전, 홍콩 이공대에서 시위로 화재가 났다. [사진=로이터 뉴스핌] |
홍콩에서는 지난 6월 '범죄인 인도 법안'(송환법) 에 반대하는 대규모 시위 이래 정국 혼란이 이어지고 있다. 캐리 람 홍콩 행정장관은 송환법을 완전 철회했지만 시위대는 정부가 5가지 요구 사항(△송환법 완전 철회 △ 시위대 '폭도' 규정 철회 △ 경찰의 강경 진압에 대한 독립적 조사 △체포된 시위자의 조건 없는 석방 및 불기소 △행정장관 직선제)을 다 수용해야 한다는 입장을 고집하고 있다.
일부 강경 시위대는 홍콩 이공대, 중문대 등 캠퍼스를 하나의 요새로 두고 화염병, 화살, 심지어 투석기를 제작하며 경찰과 대치하기도 했다. 그야말로 전쟁터인 셈이다. 홍콩 전역에서는 며칠째 휴교령이 내려진 상태다.
현재 홍콩 중문대, 침례대 등 대부분의 대학에서 시위대가 철수한 상태이지만 남은 '최후의 보루'는 홍콩 이공대다. 이곳은 홍콩 내 다른 대학보다도 전략적 요충지로 통한다. 시내 중심부에 위치해 있고 인근에는 인민해방군 기지가 있어서다.
18일(현지시간) 새벽, 최후의 보루가 뚫렸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홍콩 경찰은 이날 오전 5시께 시위대와 대치 끝에 캠퍼스 진입에 성공했다. 현재 이공대 캠퍼스에 점거하고 있는 시위대는 수백명. 이들은 간밤에 이공대로 연결되는 도로들을 바리케이드로 봉쇄했고 경찰은 물대포차와 장갑차, 최루탄 등으로 진입을 시도했다. 시위대는 투석기로 화염병을 던지며 강하게 저항했고 이 과정에서 대학 입구에 화재가 났다. 경찰은 이번 시위 진압을 위해 음향대포까지 처음 동원한 것으로 알려졌다.
18일(현지시간) 홍콩 이공대학교 계단에서 시위대가 의자 등 잔해들로 형성한 바리케이드에 물건을 던지고 있다. bernard0202@newspim.com [사진=로이터 뉴스핌] |
시위 진압에 처음 동원된 것은 음향대포 뿐만이 아니다. 전날인 16일에는 인민해방군 수십명이 거리로 직접 나서 시위대가 차량 통행을 막기 위해 깔아 놓은 벽돌 등 장애물을 치우는 작업을 했다. 도로 청소에 나선 군인 중에는 중국의 최강 대(對)테러 특전부대로 포함돼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홍콩 시위대를 '폭력 범죄 분자'로 규정하고 강경 대응을 지시한 지 하루 만으로, 일각에서는 이번 군 투입이 중국 본토의 적극 개입을 암시하는 것이라고 보고 있다.
비즈니스 허브 홍콩 센트럴뿐만 아니라 대학교에서도 시위대의 요새로 전락하면서 홍콩의 교육은 멈췄다. 홍콩 교육청은 지난 14일 하루 휴교령을 내렸다가 17일까지 기간을 연장했고 18일 하루 또 다시 휴교를 연장했다.
◆ 美하원 이어 상원도 '홍콩 인권·민주주의 법안'
미국 연방 상원이 하원에 이어 홍콩 민주화 시위대에 대한 지지를 보여주는 '홍콩 인권·민주주의 법안' 가결을 앞두고 있다.
블룸버그통신이 익명의 한 상원 보좌관을 인용한 바에 따르면 법안은 이르면 다음 주에 상원에서 통과될 전망이다. 구두 투표란 신속한 법안 처리 절차로 해당 법안이 가결되면 하원에서 이미 통과된 법안과 의견조정 과정을 거친다. 이후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의 서명을 받으면 법안은 즉시 발효된다.
법안 내용은 이렇다. 미 국무부가 홍콩이 미국 법에 따라 경제적 특별 지위를 유지해야 하는지 여부를 최소한 1년에 한 번 이상 인증하도록 요구한다. 또, 홍콩 인권을 침해에 책임이 있는 홍콩 정부 관리들에 대해 제재를 가할 수 있다.
특별 지위란 홍콩을 중국과 별개의 독립 경제 '국가'로 대우하는 것을 뜻한다. 이는 홍콩이 중국과 달리 민주주의 체제란 조건에 제공된 대우로, 만일 미 국무부가 매해 검토를 통해 홍콩에서 '일국양제'(一國兩制·하나의 국가, 두 개의 체제)가 지켜지지 않고 있다고 판단할 경우 미국은 홍콩을 중국과 마찬가지로 관세 대상에 포함시키는 것이 가능하다. 아시아 비즈니스 허브에 큰 타격이 될 수 있는 조치다.
이렇기에 홍콩 사태는 미국과 중국 간 무역갈등에서 빠질 수 없는 주제이기도 하다.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이 홍콩 사태를 무력 진압 없이 원만히 해결하길 바란다는 입장이고 중국은 '내정간섭'이라며 반발하는 분위기다. 중국과 1단계 무역합의 서명을 앞두고 있는 미국이 향후 홍콩 사태 해결을 2단계 합의 조건으로 내걸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중국이 내정간섭에 민감한 만큼 미중 갈등도 악화할 여지가 있다.
◆ 호주 대학가 '홍콩 시위 지지 vs. 중국' 충돌로 얼룩져
호주 대학가에서는 최근 홍콩 시위 사태가 현지 유학생들간의 갈등으로 번지고 있다고 파이낸셜타임스(FT)가 지난 12일 보도했다.
지난 7월 24일 퀸즐랜드 대학에서는 홍콩 민주화를 지지하는 시위가 열렸다. 시위 도중 중국 본토를 지지하는 학생들이 난입하면서 친(親)중파와 반(反)중파간의 난투극으로 이어졌다. 당시 브리즈번 주재 중국 총영사인 슈지에(徐杰)가 시위 주최 측을 "분리주의자" "반중국 활동가"라고 비난, 사태를 악화시켰다.
시위 주최자 중 한 명인 드루 파블로는 슈지에 영사의 발언이 해외 대학가에서의 표현의 자유를 제한한다고 비판했다. 중국 정부와 해외에 있는 정부 당국자들이 중국을 향한 비난을 잠재우려는 노력이 표현의 자유 침해라는 설명이다.
실제로 퀸즐랜드 대학 내에서는 홍콩 시위를 지지하는 '레논 벽'이 설치됐다. 학생들은 포스트잇에 시위 지지 메시지를 남겨 레논 벽에 붙였다. 레논 벽은 1980년대 공산주의 정권에 항의하던 체코의 젊은이들이 비틀즈 멤버 존 레논의 가사를 벽에 낙서하기 시작한 데서 유래됐다. 레논 벽은 즉, 표현의 자유 상징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레논 벽에 부착된 홍콩 시위 지지 메모가 훼손되는 사태가 벌어졌다. FT가 입수한 제보 영상에 따르면 대학 경비원은 메모를 훼손하려는 중국 본토 유학생을 제지하려 했고, 이 학생은 호주 주재 중국 대사에게 자신이 받은 부당한 대우를 고발할 것이라고 항의했다.
호주뿐 아니라 뉴질랜드에서도 비슷한 사건이 터졌다. 퀸즐랜드 사태가 벌어지고 일주일 뒤는 8월초 오클랜드 대학에서는 중국인 유학생들이 홍콩 시위 지지 여학생을 밀어 넘어뜨리게 한 사건이 발생했다. 이후 오클랜드 주재 중국 대사관은 중국 유학생들의 행동이 "마음에서 우러난 애국심"에서 한 행동이라고 칭찬해 공분을 샀다.
'홍콩의 진실을 알리는 학생모임' 소속 학생이 지난 11일 오후 서울 관악구 서울대 중앙도서관 터널에 마련된 '레넌 벽'에 부착할 홍콩 시위 지지 포스트잇을 적고 있다. hwyoon@newspim.com [사진=뉴스핌DB] |
홍콩 시위 사태는 거리에서 뿐 아닌 홍콩 및 해외 대학에까지 확산된 모양새다. 자칫 전 세계적인 대학 운동으로 번질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홍콩 언론인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따르면 이미 미국, 영국, 호주, 독일, 프랑스 등에서 홍콩 지지 시위가 이어지고 있다.
서울 내 주요 대학에서도 홍콩 시위를 지지하는 레논 벽이 설치됐다. 이를 훼손하려는 중국인 유학생들이 늘자 한국 학생들과 중국인 학생들이 마찰을 빚고 있다고 로이터통신이 지난 15일 보도한 바 있다.
로이터와 인터뷰한 김 씨(23)는 한양대에서 레논 벽을 지키려는 한국 학생들과 이를 훼손하려는 중국인 유학생들 간 갈등이 수시간 동안 이어졌다고 알렸다. "그들(중국인 유학생들)은 집단으로 와서 욕을 하고 우리를 죽이겠다고 말했다. 그들은 우리 학생들 사진을 찍어 홍콩을 지지하는 이들이라며 소셜미디어에 사진을 유포했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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