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기사 최신뉴스 GAM
KYD 디데이
문화·연예 문화·연예일반

[조용준의 콘비벤시아 스페인] 알람브라의 추억①

기사입력 : 2019년06월05일 10:39

최종수정 : 2019년06월05일 14:18

많은 사람들이 스페인을 찾는다. 저마다 이유는 다르다. 그저 이국적 풍광이 좋아서일 수도 있고, 산티아고 순례자의 길에 이끌릴 수도 있다. 스페인의 음식과 플라멩코, 투우도 매력적이다. 그런데 우리는 과연 스페인을 얼마나 알고 가는 것일까. 우리는 지금 스페인이 '혼혈의 나라'라는 사실을 곧잘 망각한다. 스페인이야말로 기독교와 이슬람 문화의 혼혈로 이뤄진 나라다. 이 사실을 무시한 채 들여다보는 스페인은 겉껍데기일 따름이다. 스페인 문화의 기저에 있는 '콘비벤시아', 즉 관용과 화합의 정신을 모른다면, 사실상 올바른 스페인 읽기는 실패한 것이다. 콘비벤시아 스페인. 그 기층문화의 세계로 걸어들어가보자.

스페인 여성 듀오 바카라(Baccara)를 기억하는 이들이 있을지 모르겠다. 1976년 마드리드에서 결성된 이 듀오의 노래를 처음 접한 것은 고3이던 1978년이었다. 가정과 학교와 사회가 혼연일체돼 입시 만능주의의 가치관에 매몰된 총력체제에서 개개인의 어떠한 개성과 감수성도 억눌렸던 시절이었다.

그러한 1970년대 말의 암울한 시대적 상황과 검정 교복으로 상징되는 엄격한 규율에 꽁꽁 묶여 있던 혈기왕성한 고등학생들에게 어느 날 갑자기 등장한 미녀 듀오 바카라는 정말, 일종의 메시아와도 같았다. 그것도 엄청나게 관능적인 메시아. 적어도 내게는 그랬다.

우연히 길거리 전파상에서 흘러나오는 그들의 노래 '그래요, 나는 부기 춤을 출 수 있어요(Yes Sir, I can Boogie)'를 처음 들었을 때 내 심장은 벌렁거리면서 터질 것 만 같았다. 노래를 듣는 것만으로도 얼굴은 붉게 물들어 호흡이 가빠졌다.

그것은 충격이었다. 오디세이를 유혹하는 바다의 요정 세이렌이 따로 없었다.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전혀 인지 불가의 영역이었음에도 마치 절정으로 치닫는 여성의 신음을 연상시키는 고혹적 소리가 노래의 도입부에서 흘러나왔을 때 정신이 아뜩해지지 않을 수 없었다. 그것은 태어나 처음으로 접한, 목소리에 의한 관능의 세계였다.

어떻게 1970년대 말에 그런 노래가 엄격한 심의의 벽을 통과할 수 있었을까. 그 정확한 배경이야 알 길이 없지만, 나는 홀린 듯 그 노래가 실린 테이프를 사서 듣고 또 들었다. 그렇게 이제 막 20대가 되려는 젊은 내 청춘을 순식간에 사로잡은 바카라의 두 번째 노래가 바로 '그라나다'였다.

“그라나다, 띠에라 엔상그렌타다 엔 타르데스 데 토로스(Granada, tierra ensangrentada en tardes de toros. 그라나다, 그곳은 투우장의 피로 붉게 물드는 땅)”

“무헤르 께 콘세르바 엘 엠브르호 데 로스 오호스 모로스 데 수엔노 레벨데 이 히타나 (mujer que conserva el embrujo de los ojos moros De sueño rebelde y gitana. 무어 여인 같은 눈을 가진 반항적인 매력의 집시 같은 당신)”

쿠비에르타 데 플로레스 이 베소 투 보카 데 그라나 후고사 만자나 께 메 아블라 데 아모레스 (cubierta de flores y beso tu boca de grana jugosa manzana que me habla de amores. 사과처럼 달콤한 사랑을 속삭이는, 꽃으로 뒤덮인 듯한 당신의 입술에 키스를…)”

아이러니하게도 그라나다를 세상에 널린 노래 '그라나다'는 현지를 한 번도 가보지 못한 멕시코 작곡가의 작품이다. 일평생 그라나다 동경한 아구스틴 라라가 스페인 민요를 바탕으로 1932년에 작곡했다.

이런 탄생 배경에도 노래는 유명 성악가뿐 아니라 프랑크 시나트라 등 수많은 대중가수들에게 사랑받는 애창곡이 됐다. 도밍고, 파바로티, 카레라스 등 3대 테너가 모두 이 노래를 불렀다. 1990년 이탈리아월드컵 전야제에서 호세 카레라스가, 1994년 미국월드컵 전야제에서 플라시도 도밍고가, 1998년 프랑스월드컵 전야제 때는 루치아노 파바로티가 불러 진기록을 만들었다.

물론 1970년대 말 고등학생이었던 나는 이 노래에 대한 사전 상식이 있었을 리 만무했다. 그저 바카라의 흥겨운 댄스곡 '그라나다'에 심취해, 정말 그라나다는 어떤 곳일까, 그곳에 있다는 알람브라 궁전은 어떤 모습일까 상상의 나래를 펼치곤 했다.

알람브라 헤네랄리페 여름궁전에서 바라본 인근의 풍경 [사진=조용준]

고교 졸업 이후 거의 15년 만에 꿈을 성취해 그라나다에 처음 도착하던 날, 나를 기다리는 안달루시아 여인은 물론 없었다. 그러나 아리따운 무어 여인의 눈을 닮은 아가씨가 기다리지 않아도 그라나다의 밤은 황홀하고 좋았다. 알람브라 자체가 그 누구보다 어여쁜 여인이니까.

너무나 낭만적인 헤네날리페 여름궁전에는 더위가 들어설 자리가 없다. [사진=조용준]

알람브라 궁전은 현재 두 개만이 온전하게 남아 있는 중세 무슬림 궁전이라 그 가치가 더 빛난다. 나머지 하나는 터키 이스탄불에 있는 오스만 왕조의 톱카피(Topkapi) 궁전이다.

붉은 벽돌의 성채 알카사바로 들어가는 입구 [사진=조용준]

알람브라는 ‘붉은 성채’란 아랍어(al-qual'at al-hamra)에서 유래했다. 9세기에 지어진 작은 성터 위에 요새와 성, 시장 등이 13~14세기에 걸쳐 새로 덧붙여진 형태다. 따라서 알람브라는 침략에 대비한 성벽 요새인 알카사바(Alcazaba), 헤네랄리페 여름궁전, 나스리에스 궁전, 카롤레스 5세 궁전, 그리고 작은 마을이 결합된 복합체다. 면적이 약 14만2000㎡에 달하는 만큼 돌아보는데 많은 시간이 걸린다.

'붉은 성채'에 대해 언급한 가장 오래된 기록은 우마야드(Umayyad) 왕조(661~750)의 일파로 7번째 코르도바(Cordoba) 에미르(영주)였던 압둘라 이븐 무함마드(Abdullah ibn Muhammad, 재위 888~912) 시절에 등장한다. 9세기 때의 일이다.

기독교 왕과의 전투에서 크게 패한 코르도바의 이 영주는 엘비라(Elvira), 곧 지금의 그라나다로 피신했는데, 그 때 지역 특유의 점토 벽돌로 지어 색이 붉게 된 작은 성이 알람브라였다. 당시의 알람브라는 적의 공격을 충분히 방어할 능력이 되지 않을 만큼 작은 규모였다. 그 후 이 성은 11세기까지 잊혔다가 유대인 주거민을 보호할 목적으로 지리드(Zirid) 왕국의 바디스(Bādīs) 왕에 의해 개축됐다. 알람브라가 오늘날 규모로 변모하기 시작한 것은 나스리드(Nasrid) 왕조(1232~1492) 때였다.


조용준 digibobos@hanmail.net

작가 겸 문화탐사 저널리스트. 전 동아일보 기자, <주간동아> 편집장. <유럽 도자기 여행> 시리즈, <펍, 영국의 스토리를 마시다> 등 다수 저서 출간

[뉴스핌 베스트 기사]

사진
이화영, 대법서 징역 7년8개월 확정 [서울=뉴스핌] 홍석희 기자 = 쌍방울 그룹에서 수억원대 뇌물을 받고, 800만 달러를 북한에 송금한 혐의로 기소된 이화영 전 경기도 평화부지사가 징역 7년 8개월을 확정 받았다. 대법원 2부(주심 박영재 대법관)는 5일 오전 특정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위반(뇌물) 등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이 전 부지사에게 징역 7년 8개월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쌍방울 그룹에서 수억원대 뇌물을 받고, 800만 달러를 북한에 송금한 혐의로 기소된 이화영 전 경기도 평화부지사가 징역 7년 8개월을 확정 받았다. 사진은 이 전 지사가 지난해 10월 2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열린 박상용 수원지검 부부장검사에 대한 탄핵소추 사건 조사 관련 청문회에서 정청래 법사위원장 질의에 답변하는 모습. [사진=뉴스핌 DB] 이 전 부지사는 이재명 대통령이 경기지사이던 2019년, 쌍방울로 하여금 도지사 방북 비용 300만 달러와 북한 스마트팜 사업 비용 500만 달러 등 총 800만 달러를 북한 측에 보내도록 한 혐의로 기소됐다. 경기도 평화부지사, 경기도 산하기관인 킨텍스 대표로 재직 중 쌍방울로부터 법인카드와 차량 등 3억3400여만 원의 정치자금을 제공받은 혐의도 받았다. 검찰은 이중 2억5900여만 원에 대해 뇌물 혐의를 적용했다. 1심은 이 전 부지사의 혐의 대부분을 유죄로 판단해 정치자금법 위반 징역 1년 6개월, 특가법상뇌물 및 외국환거래법 위반 등 징역 8년을 합해 총 징역 9년 6개월을 선고했다. 1심 재판부는 쌍방울이 경기도 스마트팜 사업비(500만 달러)와 당시 경기지사였던 이 대통령의 방북비용(300만 달러)을 대납하려 했다는 검찰 측 판단을 모두 받아들였다. 다만 검찰이 공소사실에 적시한 총 800만 달러 중 394만 달러만 해외로 밀반출된 불법 자금으로 인정했다. 2심은 1심 판결을 파기하고, 징역 7년 8개월 및 벌금 2억5000만원, 추징 3억2595만 원으로 감형했다. 구체적으로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에 대해서는 징역 8개월을, 특가법상뇌물 및 외국환거래법 위반 등 혐의에 대해서는 징역 7년을 각각 주문했다. 1심 형량과 비교해 1년 10개월이 감형됐다. 2신 재판부는 1심과 마찬가지로 검찰이 기소한 대북송금 800만 달러 가운데 394만 달러만 북한 측에 밀반출됐다며 유죄로 판단했다. 특히 이 중 200만 달러는 김 전 회장이 이재명 당시 경기지사의 방북비용으로 대납한 것이라고 봤다. 다만 "뇌물죄, 정치자금법 위반죄 범행 후 공무원 또는 정치인으로서 부정한 행위까지 나아가지는 않은 점, 스마트팜은 인도적 지원 사업이었고 남북간 평화조성을 위한 남북교류협력사업의 추진이라는 정책적 목적도 있는 점, 김성태가 쌍방울그룹의 대북사업 추진 등 이익을 도모한 사정도 있고 피고인이 김성태에게 비용 대납을 강요한 사정은 없는 점 등을 유리한 양형으로 고려했다"고 감형 이유를 설명했다. 검찰과 이 전 부지사 측 모두 판결에 불복해 상고했으나 대법원은 양 측의 주장을 모두 받아들이지 않았다. 대법원은 "원심의 유죄 부분 판단에 필요한 심리를 다하지 않은 채 논리와 경험의 법칙을 위반해 자유심증주의 한계를 벗어나거나 검사의 사전면담 등이 이루어진 증인의 법정진술의 신빙성 판단, 유죄의 인정에 필요한 증명의 정도, 뇌물수수죄에서 직무관련성, 대가성, 뇌물귀속 주체와 고의, 정치자금 부정수수죄에서 정치자금과 고의 등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는 등으로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없다"고 판시했다. hong90@newspim.com 2025-06-05 10:45
사진
외교부 장관 김현종·조현 거론 [서울=뉴스핌] 지혜진 기자= 인수위원회 없이 출범하는 새 정부는 민생 회복과 함께 대미 관세 협상 등 외교·안보 문제도 시급하다. 미국 법원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주요국을 대상으로 부과한 상호관세 효력을 정지시켰지만 여전히 통상 환경의 불확실성이 가신 것은 아니다. 지난 4일 당선된 이재명 대통령은 "국익 중심의 실용 외교" 강조해왔다. 민주당 공약집을 보면 통상환경의 변화와 경제안보 중요성에 대응하기 위해 주요 20개국(G20)·주요 7개국(G7) 등의 적극 참여를 통해 글로벌 현안 적극 대응하고 2025 경주 APEC 성공적 개최를 위한 외교역량을 강화할 것을 약속했다. 신남방·신북방 정책을 계승 발전해 글로벌 사우스와 권역별 협력을 심화하고 핵심소재·연료광물의 공급망(GVC) 안정화를 위한 통상협력 강화도 약속했다. (왼쪽부터) 김현종 더불어민주당 선대위 외교안보특보, 위성락 민주당 의원, 조현 선대위 국익중심실용외교위 공동위원장, 안규백 의원. [사진=뉴스핌DB] 북핵 대응으로는 한국형 탄도미사일 성능과 한국형미사일방어체계(KAMD)를 고도화를 내세웠다. 핵무장이나 핵잠재력 확보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북핵 대응의 기본 원칙은 한·미 확장억제 강화'라는 기존의 기조를 이어갈 것으로 예상된다. 국방 분야에서는 국방 문민화를 비롯해 군 정보기관 개혁, 육·해·공군 참모총장 인사청문회 도입 등을 내세웠다. 이 대통령은 취임 첫날 국가안보실장에 위성락 민주당 의원을 임명했다. 주러시아 대사를 지낸 외교관 출신인 위 의원은 '이재명 후보 외교안보보좌관'으로 임명돼 활동했다. 이번 대선에서는 민주당 선대위 산하 '동북아평화협력위원회' 좌장을 맡았다. 외교부 장관 후보군으로는 조현 전 외교부 1차관과 김현종 전 청와대 국가안보실 2차장이 언급된다. 조 전 차관은 선대위에서 국익중심실용외교위원회 상임공동위원장을 맡았다. 위 의원과 외무고시 13기 동기로 유엔대사, 외교부 다자외교조정관, 외교부 국제기구국장 등을 역임했다. 김 전 차장은 대선 기간에도 '이재명 후보 외교안보보좌관' 자격으로 백악관 고위 당국자들과 만나 한미동맹과 한미일 3국 협력을 강화해야 한다는 이 후보의 입장을 전달하기도 했다. 국방부 장관 자리에는 군 출신이 아닌 5선의 안규백 민주당 의원이 유력하다. 이 대통령은 후보 때부터 군에 대한 '문민 통제'를 강조해 왔다. heyjin@newspim.com 2025-06-05 06:00
안다쇼핑
Top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