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기사 최신뉴스 GAM 라씨로
KYD 디데이

[조용준의 콘비벤시아 스페인] 새 연재를 시작하며

기사입력 : 2019년05월10일 08:00

최종수정 : 2019년05월10일 10:05

많은 사람들이 스페인을 찾는다. 저마다 이유는 다르다. 그저 이국적 풍광이 좋아서일 수도 있고, 산티아고 순례자의 길에 이끌릴 수도 있다. 스페인의 음식과 플라멩코, 투우도 매력적이다. 그런데 우리는 과연 스페인을 얼마나 알고 가는 것일까. 우리는 지금 스페인이 '혼혈의 나라'라는 사실을 곧잘 망각한다. 스페인이야말로 기독교와 이슬람 문화의 혼혈로 이뤄진 나라다. 이 사실을 무시한 채 들여다보는 스페인은 겉껍데기일 따름이다. 스페인 문화의 기저에 있는 '콘비벤시아', 즉 관용과 화합의 정신을 모른다면, 사실상 올바른 스페인 읽기는 실패한 것이다. 콘비벤시아 스페인. 그 기층문화의 세계로 걸어들어가보자.

오스트리아 비엔나 태생으로 나중 프랑스 국적을 얻은 루돌프 에른스트(1854~1932)라는 화가가 있다. 전문적인 미술사가 이외에는 이 화가를 알고 있는 사람이 별로 없을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인기 있는 화풍이나 특정 유파와도 거리가 멀기에, 주목을 받은 적도 거의 없다.

그러나 서구에서는 다르다. 고흐나 모네처럼 대가의 반열로 취급하지는 않지만, ‘독특하고 인상적인’ 화가로 나름의 대접을 한다. ‘오리엔탈리스트(Orientalist)’라는 유파로 분류도 한다. ‘오리엔탈리스트’는 굳이 번역하자면 ‘동방파’라고나 할까.

19세기 서구에서 널리 유행한 ‘오리엔탈리스트 아트(Orientalist art)’는 예술가들이 직접 근동이나 중동의 도시와 주거지에 머물며 경험한 일상을 담은 작품들이 주류를 이룬다.

에른스트가 서구 화단에서 명성을 얻기 시작한 것은 1885년 그의 나이 31세 때였다. 중동과 터키, 모로코, 이집트, 스페인 등지를 여행하고 돌아와 풍경을 담은 그림들이 일약 대중의 관심을 끈 것이었다.

에른스트의 그림 '아랍의 현자(賢者)'

일단 그림 하나를 먼저 보도록 하자. 이 작품은 에른스트가 1886년에 그린 '아랍의 현자(The Arab Sage)'라는 그림이다. 말굽 모양의 아치가 있는 전형적인 이슬람 건축 양식에, 역시 가장 이슬람적인 아라베스크 문양의 타일을 배경으로 나이 많은 한 현인(賢人)이 양탄자에 앉아 무엇인가 이야기하고 있다. 그림을 보기만 해도 페르시아나 중동, 북아프리카의 냄새가 물씬 풍긴다.

에른스트의 그림 덕택에 오늘날 우리는 19세기 중반 중동 지방과 스페인 등의 궁전 주변이나 거리 풍경을 마치 그 시대 그 장소에 가본 것처럼 쉽게 알 수 있게 됐다. 이처럼 그림에는 사회학적 혹은 고고학적 의미들이 내재돼 있다.

에른스트가 가진 탁월한 역량의 하나는 이국적인(동양적인) 판타지를 구현해내기 위해 그 지역만의 토속 공예품을 오브제로 잘 결합시켰다는 사실이다. 그는 작품 속에서 알람브라 궁전 모습을 바탕으로 상상한 것이 분명한 무어 풍 궁전에 개인적으로 모은 수집품을 반복적으로 장식했다.

에른스트의 그림 '저녁 기도'

에른스트의 그림 하나를 더 보도록 하자. '저녁 기도'라는 이 그림은 매우 독특한 기둥이 늘어선 사원에서 이슬람교도가 기도하는 장면을 묘사하고 있다. 이슬람 사원이 으레 그렇듯 벽의 하단부는 타일로 장식돼 있다. 이 그림에서 시선을 끄는 것은 기둥이다.

이슬람 건축의 가장 뚜렷한 특징 중 하나인 말굽 모양 아치를 이루는 기둥은 무데하르(Mudejar) 양식 건축의 전형적인 모습 가운데 하나다.

그럼 무데하르 양식이란 어떤 것인가. 그게 바로 앞으로 계속 반복돼 나올 주제의 하나다. 먼저 간단히 말하자면 기독교 세계의 가장 전형적인 성당 건축 양식, 즉 고딕이나 로마네스크 양식에 이슬람 무어 양식이 결합된 혼혈이 바로 무데하르다. 이에 대해서는 귀가 따갑게 계속 얘기할 것이니 여기서는 이만 하도록 하자.

위의 그림 속 배경은 지금도 실제 볼 수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것은 이슬람 마스지드(모스크)가 아니라 가톨릭 성당에서다. 마드리드 인근 톨레도(Toledo)에 있는 ‘순결한 성모 마리아(Santa Maria La Blanca) 성당’이 그 모델이다. 그림 속 배경과 이 성당의 기둥, 벽장식 등은 조금도 어김없이 똑같다.

톨레도(Toledo)에 있는 ‘순결한 산타 마리아 성당’의 독특한 기둥과 장식 [사진=조용준 작가]

그러나 에른스트가 이 그림을 그렸을 때는 이미 기독교 세력의 레콩키스타(국토회복운동)가 완성돼 무어인이 이베리아 반도에서 축출되고 한참 지난 다음이다. 따라서 이처럼 터번을 두른 아랍인들이 이 예배당에서 알라를 향해 예배를 드리는 모습을 봤을 가능성은 전혀 없다. 그러므로 이 그림은 그가 톨레도에서 보고 그린 예배당 스케치에 허구를 덧붙인 것이다. 다시 말해 에른스트의 상상 속 장면을 위해 무데하르 양식의 톨레도 한 예배당 모습을 빌려왔다.

이 같은 일이 가능해진 것은 ‘순결한 성모 마리아 성당’ 건축의 뿌리가 북아프리카 모로코에 거점을 뒀던 무어인들의 알모하드(Almohad) 왕조에서 뻗어 나온 것이기 때문이다.

오리엔트에 대한 낭만적 경향의 옹호자로서의 화가들은 유진 드라크루와(1798~1863)를 비롯해 장 레옹 제롬(1824~1904), 세오도르 샤세리오(1819~1856), 알렉상드르 가브리엘 드캥(1803~1860), 윌리엄 홀맨 헌트(1827~1910) 등이 있다. 또한 이런 경향은 20세기 화가 르노아르, 마티스, 클레, 칸딘스키 등의 작품에도 이어졌다. 특히 마티스는 하렘의 여인을 대상으로 한 여러 장의 그림을 그렸다.

그러면 이들 오리엔탈리스트 화가들의 오리엔트에 대한 이국취미를 가장 직접적으로 촉발시킨 곳은 어디였을까. 그곳은 바로 같은 유럽에 있어 가장 가기 쉬운 스페인이었다. 프랑스와 바로 붙어 있지만 서유럽과는 풍광이 너무나 다른, 무려 700년 이상 북아프리카 무어인들의 지배를 받는 동안 독특하고 독창적이며 단절된 진화를 해온 ‘유럽 속의 갈라파고스 섬’과도 같은 스페인.

그라나다(Granada)와 세비야(Seville), 코르도바(Cordoba)의 이슬람 왕궁을 보면서 문화적, 감성적 충격을 받은 이들은 이베리아 반도에 전해진 이슬람 문화의 뿌리를 찾아 북아프리카와 중동, 터키 등지로 여행 혹은 상상력의 범위를 넓혔다.

에른스트의 오리엔트 첫 여행도 바로 1885년 그라나다 알람브라 궁전에서부터 시작됐다. 그것은 스페인 미국 대사관에서 일하던 외교관이자 미국 작가 워싱턴 어빙(1783~1859)이 에른스트보다 54년 앞선 1831년 세비야에서 노새를 타고 그라나다를 향해 여행을 떠난 것과 비슷하다. 19세기 서구에서 열병처럼 번진 알람브라에 대한 전설은 ‘버려진 폐허’에서 ‘오리엔탈의 미적 가치’를 발견하고 이를 찬양해 복원 여론을 형성한 워싱턴 어빙으로부터 비롯됐다.

이 이야기는 앞으로 스페인 무데하르라고 하는 건축 양식, 그리고 ‘콘비벤시아(관용)’라고 하는 기독교 문화와 이슬람 문화의 혼혈에 초점이 맞춰져 진행될 것이다. 톨레도의 ‘순결한 성모 마리아 성당’ 역시 이러한 혼혈이 아니었다면, 나오지 못했을 걸작이다.

무데하르와 콘비벤시아는 이제껏 거의 알려지지 않았던 ‘새로운 스페인’을 알려줄 것이다. 많은 이들이 스페인을 찾고 있지만, 스페인의 진면목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한다. 가우디와 투우, 빠에야와 타파스, 플라멩코, 고야와 벨라스케즈를 안다고 스페인을 아는 것은 아니다. 자, 이제부터 스페인 ‘일상의 고고학 여행’을 떠나보도록 하자.

조용준 digibobos@hanmail.net

작가 겸 문화탐사 저널리스트. 전 동아일보 기자, <주간동아> 편집장. <유럽 도자기 여행> 시리즈, <펍, 영국의 스토리를 마시다> 등 다수 저서 출간

CES 2025 참관단 모집

[뉴스핌 베스트 기사]

사진
신세계면세점, 희망퇴직...임원 급여 20% 반납 [서울=뉴스핌] 조민교 기자 = 실적 부진을 겪는 신세계면세점이 희망퇴직, 임원 급여 반납 등 고강도 비용 절감에 착수했다. 15일 면세업계에 따르면 신세계면세점을 운영하는 신세계디에프는 이날부터 오는 29일까지 희망퇴직 신청을 받는다고 사내 게시판에 공지했다. 신세계면세점 명동점 [사진=신세계면세점] 대상은 근속 5년 이상 사원이다. 근속 10년 미만은 기본급의 24개월 치를, 10년 이상은 36개월 치를 지급하는 조건이다. 이와 별도로 다음 달 급여에 해당하는 전직 지원금을 준다. 신세계디에프가 희망퇴직 프로그램을 시행하는 것은 2015년 창사 이래 처음이다. 신세계디에프 관계자는 "코로나19에 이어 중국의 경기 둔화, 고환율, 소비 트렌드 변화 등의 어려운 여건 속에 경영 체질을 개선하고 효율성을 높여 지속 성장의 동력을 마련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임원 급여도 반납한다. 유신열 대표이사를 포함한 임원 7∼8명은 이번 달부터 급여 20%를 반납하기로 했다. 임원 급여 반납은 지난 2020년에 이어 이번이 두 번째다. 유 대표는 희망퇴직 공지와 함께 사내 게시판에 올린 글을 통해 "경영 상황이 점점 악화해 우리의 생존 자체를 심각하게 위협받는 상황"이라며 "비효율 사업과 조직을 통폐합하는 인적 쇄신은 경영 구조 개선의 시작점이자 더는 지체할 수 없는 시급한 과제"라고 했다. 이어 "영업구조 변화에 맞는 효율적인 조직으로 거듭나기 위해 필연적으로 인력 축소를 검토할 수밖에 없었고 무거운 마음으로 창사 이래 처음으로 희망퇴직을 시행하게 됐다"며 "뼈를 깎는 노력으로 지금의 어려운 환경을 극복하고 재도약할 기회를 만들 것"이라고 강조했다. 국내 면세사업이 극심한 침체를 겪으면서 신세계면세점 실적은악화 일로를 걷고 있다. 올해 3분기는 영업손실이 162억원으로 적자 전환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영업이익이 295억원 줄어든 수치다. mkyo@newspim.com 2024-11-15 15:10
사진
법원, 연세대 논술 시험 효력 정지 인용 [서울=뉴스핌] 신수용 기자 = 연세대학교 논술 시험 문제 유출 논란과 관련해 법원이 수험생들의 손을 들었다. 서울서부지법 제21민사부(부장판사 전보성)는 15일 수험생 18명 등 총 34명이 연세대를 상대로 제기한 논술 시험 효력 정지 가처분 신청에 대해 인용 결정을 내렸다. 2025학년도 연세대 수시모집 자연계열 논술시험 도중 한 고사장에서 시험지가 일찍 배부돼 문제 사전 유출 논란이 불거지고 있다. 사진은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학교 신촌캠퍼스의 모습. [사진=뉴스핌DB] 가처분 신청이 인용되면 해당 전형은 집단 소송 결과가 확정되기 전까지 입시 절차가 중단된다. 이번 결정으로 논란을 빚은 연세대 수시모집 자연 계열 논술 시험은 본안 소송의 판결 선고가 이어질 때까지 합격자 발표 등 그 후속 절차의 진행이 중지될 전망이다. 연세대 논술 시험 문제 유출 논란은 감독관의 실수로 시험지가 1시간 일찍 배부되며 불거졌다. 감독관은 뒤늦게 시험지를 회수했지만 이 과정에서 수험생이 촬영한 것으로 보이는 자연 계열 시험 문제지와 인문 계열 시험의 연습 답안 사진이 온라인 커뮤니티에 공유됐다. 시험 도중에 문항 오류도 발견돼 시험 시간도 연장됐다. 앞서 수험생들과 학부모는 연세대를 상대로 논술 시험 효력 정지 가처분 신청 등을 서울서부지법에 지난달 21일 접수해 같은 달 29일 첫 재판을 진행했다. aaa22@newspim.com 2024-11-15 15:03
안다쇼핑
Top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