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한·KB·하나·우리·씨티·SC제일 등 경영유의조치
부당금리에도 제재 근거 없어 경고성 조치로 끝나
[서울=뉴스핌] 최유리 기자 = 신한은행, KB국민은행, KEB하나은행, 우리은행 등 주요 시중은행들이 주먹구구식으로 대출금리를 산정한 사실이 적발되면서 금융감독원으로부터 무더기 경영유의조치를 받았다. 대출자의 소득이나 담보를 제대로 반영하지 않고, 자의적인 기준을 적용하는 등 문제가 드러났지만 현행법상 제재 근거가 없어 일종의 경고성 조치로 마무리했다.
20일 금감원은 신한은행, KB국민은행, KEB하나은행, 우리은행 등 국내 시중은행 4곳과 한국씨티은행, SC제일은행 등 외국계 은행 2곳에 대출금리를 불합리하게 산정했다는 이유로 경영유의 조치를 통보했다.
경영유의는 해당 금융사에 주의나 자율적인 개선을 요구하는 조치로 이를 통보받은 곳은 3개월 이내에 지적받은 내용에 대한 대응 방안을 제출해야 한다.
이는 금감원이 지난해 2~3월 9개 국내은행을 대상으로 '대출금리 산정체계' 적정성을 점검한 결과다. 2013년 금리산정 모범규준을 만든 후 처음으로 실시한 금리 테마 검사로 최근 5년간 실태 조사가 포함됐다.
우선 대출을 취급할 때 차주의 담보, 신용등급, 소득 등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우리은행은 가산금리를 부과할 때 차주의 소득을 일부 잘못 입력했고, 신한은행과 국민은행에선 대출만기를 연장할 때 차주의 신용등급이 올라 금리가 낮아져야 함에도 금리가 동일하게 유지되거나 상승하는 경우가 발생했다. 한국씨티은행과 SC제일은행에선 일부 담보대출에 대해 담보가액이 없는 것으로 잘못 등록한 사례가 있었다.
내부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조정해야 하는 금리 항목을 영업점 직원이나 부서장이 임의로 결정하는 등 금리산정에 대한 절차가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경우도 다수였다.
하나은행은 내부위원회에서 심사해야 할 신용프리미엄 항목을 담당 임원의 전결로 결정했다. 신용프리미엄은 차주의 신용등급, 담보종류, 대출만기 등에 따라 발생할 수 있는 예상 손실 비용으로 가산금리의 한 요소다. 신용프리미엄을 조정할 때 일부 기업대출 차주에만 적용하고 가계대출 차주에 대해서는 적용 여부를 검토하지 않았는 등 일관성이 없었다. 일부 영업점에선 직원이 임의로 산정한 최고금리를 부과하기도 했다.
한국씨티은행과 SC제일은행의 경우 내규에 금리산정에 대한 세부 기준이 없어 자의적으로 적용한 사례가 적발됐다. 내규상 가산금리의 한 요소인 유동성 프리미엄에 대해 구체적인 기준이 없고, 가계대출과 기업대출에 상이하게 반영하는 식이었다. 또 월 1회 검토해야 하는 가산금리 요소를 2015년 1월 산출 이후 2018년까지 계속 적용하기도 했다.
금리인하요구권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금리인하요구권은 대출을 받을 당시보다 신용등급이 좋아지거나 소득이 늘었을 때 이자율을 낮춰달라고 요구할 수 있는 권리다.
신한은행, 우리은행, 국민은행은 금리인하권을 수용할 때 인하폭에 대한 합리적인 기준이 없는 사례가 나왔다. 신용등급 상승, 재무상태 개선 등으로 차주의 신용도가 상승했지만 특별한 이유없이 금리 인하폭에 제대로 반영되지 않았다. 아울러 금리인하요구권을 접수·심사한 내용을 제대로 관리하지 않아 적적성을 사후에 점검할 수 없었다.
이 같은 결과에도 경영유의 조치에 그치는 것은 현행 은행법상 제재 근거가 없기 때문이다. 대출금리 모범규준 위반에 해당하지만 은행이 내규 형태로 반영한 자율 규제로 당국은 법규가 아닌 내규 위반을 제재할 수 없다.
금감원 관계자는 "시중은행의 경우 금리와 관련해서 법 위반으로 제재할 근거가 없다"며 "법적 근거가 없다보니 경영유의 조치를 결정하게 됐다"고 말했다.
한편 금융당국은 대출금리 산정내역서에 차주가 제공한 기초정보가 대출심사에 반영됐는지 확인할 수 있고 본부·영업점장이 결정한 금리까지 추가하도록 의무화했다. 또 금리인하요구에 대해 소비자에게 구체적인 사유를 반드시 통보하고, 접수·처리 내역을 보관하도록 규정했다. 아울러 대출금리 부당산정 행위를 불공정 영업행위로 추가해 제재가 가능하도록 한 은행법 시행령 개정안을 내달부터 시행한다.
yrchoi@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