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거스타 내셔널 위민스 아마추어’ 최종일 로페즈·소렌스탐·오초아와 함께 시타
[미국=뉴스핌] 김경수 특파원= “지금까지 오거스타 내셔널GC에서 여자 선수들이 플레이할 기회가 없었는데, 오늘 이 자리가 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아요.그만큼 오거스타 내셔널GC가 여자골프에 관심이 많다는 증거인데, 세계 여자 아마추어 골프의 미래에 큰 힘이 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또 세계 골프 유망주들에게 꿈을 심어줄 것으로 믿습니다.”
남자골프 메이저대회 마스터스 골프 토너먼트가 열리는 미국 조지아주 오거스타 내셔널GC에 6일(현지시간) 세계 여자골프의 전설 네 명이 한 자리에 모였다. 낸시 로페즈(62·미국) 아니카 소렌스탐(49·스웨덴) 박세리(37) 로레나 오초아(37·멕시코)는 올해 신설된 ‘오거스타 내셔널 위민스 아마추어’(ANWA) 최종라운드에 앞서 특별 게스트로 초청돼 시타(퍼스트 티 세리머니)를 하고, 참가 선수들을 격려했다.
네 명은 모두 세계골프 명예의 전당에 이름을 올린 선수들이다. 그들은 미국LPGA투어에서 로페즈가 48승(메이저대회 3승 포함), 소렌스탐이 72승(메이저 10승), 박세리가 25승(메이저 5승), 오초가 27승(메이저 2승)을 거뒀다. 모두 합치면 172승이요, 메이저대회만 20승에 달한다. ‘전설’이라는 말이 전혀 무색하지 않다.
박세리가 6일(현지시간) 미국 조지아주 오거스타 내셔널GC에서 열린 '오거스타 내셔널 위민스 아마추어' 세리머니에서 시타 직전에 손을 들어 답례하고 있다. 그 뒤로 함께 시타한 로레나 오초아, 낸시 로페즈, 아니카 소렌스탐이 보인다. [사진=오거스타 내셔널GC] |
세계 골프 역사의 일부가 된 이날 행사에서 박세리는 가장 먼저 티샷을 했다. 볼은 드로성 구질이 되면서 페어웨이에 낙하한 후 얕은 러프(세컨드 컷)에 멈췄다. 그 다음으로 오초아, 로페즈, 소렌스탐이 티샷을 했다. 박세리의 볼이 가장 멀리 나갔다.
박세리는 “오늘 행사를 앞두고 긴장하고 걱정도 많이 했다. 은퇴 후 클럽을 잡지 않았고, 볼을 친 것은 거의 1년만이다. 시타에 앞서 드라이빙 레인지에서 볼 10개 정도를 쳐봤다. 클럽을 가져오지도 않아 오거스타 내셔널GC측에서 내준 클럽으로 쳤는데 여자대회에 이렇게 많은 갤러리들이 많이 와서 놀랐다”고 소감을 말했다. 오거스타 내셔널GC측은 이날 입장한 갤러리를 2만여명으로 추산했다.
모두 72명이 출전한 ANWA에 한국선수는 두 명이 참가했다. 그 가운데 전지원(미국 앨라배마대3)은 2라운드 후 탈락했고, 국가상비군 권서연(18·대전여방통고)만 최종라운드에 나섰다.
박세리는 “첫 대회에 한국 선수가 출전한 것은 굉장히 큰 의미가 있다. 선수 본인 뿐 아니라 한국 골프를 알리는데도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고 뜻을 부여했다.
오거스타 내셔널GC는 1933년 개장한 이래 줄곧 남성 회원 위주의 폐쇄적인 운영을 해오다가 불과 7년 전에야 여자 회원을 받아들였다. 그런 곳에서 여자 아마추어 골프대회를 연 것은 골프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할만한 결정이었다.
박세리는 “이 대회가 일찍 생겼더라면, 내가 아마추어 신분이었을 때 생겼더라면 하는 욕심과 아쉬움이 교차한다. 그러나 역사적인 자리에 내가 함께 한 것만 해도 큰 영광이다. 또 예전 투어 시절로 돌아간 듯한 느낌도 든다.”고 말했다.
박세리는 미국LPGA투어 신인 시절이던 지난 2000년 미국골프기자협회(GWAA)가 주는 상을 오거스타 내셔널GC에서 받은 적이 있다. GWAA는 매년 남녀 골퍼 한 명씩을 수상자로 지명하고 ‘마스터스 위크’에 시상한다. 한국에서는 박세리 외에도 신지애와 박인비가 이 상을 받은 적이 있다.
박세리는 그 당시 오거스타 내셔널GC에서 라운드할 기회가 있었으나 다른 일정과 겹쳐 못했다고 한다. 이번에도 오거스타 내셔널GC로부터 “언제든지 라운드할 수 있다”는 기별을 받았으나 라운드할 기회를 잡지 못했다. 미국에 진출한 한국 여자골퍼들의 오거스타 내셔널GC 라운드 여부에 대해 그는 “박지은은 몰라도, 내가 아는 한 한국 여자 선수들이 오거스타 내셔널GC에서 라운드했다는 소리를 듣지 못했다”고 했다.
그런 의미에서 권서연이 전날 오거스타 내셔널GC에서 연습라운드를 한데 이어 이날 대회 최종라운드를 치른 것은 한국 골프 역사에도 밑줄을 그을만하다. “어제 서연이가 연습라운드한 것을 봤어요. 대회에 출전한 선수이다 보니 잘 하고 싶은 부담감이 있을 겁니다. 그러나 이번 대회는 특별한 대회이므로 다른 대회에서는 느낄 수 없는 소중한 경험을 많이 쌓으라고 말했어요. 한 걸음 더 나아가 즐기면서 라운드하라고도 했지요.”
이 대회를 위해 지난 3일 오거스타에 온 박세리는 시타 행사를 마친 후 곧 한국으로 향했다. 박세리는 한국에서 와인 사업과 함께 프로·주니어 대회 호스트를 하고 코스 설계도 준비중이며 방송해설을 하는 등 분주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오거스타 내셔널GC의 클럽하우스를 벗어나는 그의 뒷모습에서 한국 골프의 든든한 미래를 보는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