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박종인 상무 = 이제 몇 시간 지나면 해가 바뀝니다. 2019년이 시작됩니다.
새해 맞는 기분, 어떠신가요? 가슴이 두근거리시나요? 머리가 지끈거리신가요?
희망이 많을수록 전자에 가깝고, 반대일수록 후자 쪽 아닐까 싶습니다.
새 것에 대한 기대와 희망을 말하기 앞서 놓고 가는 것들, 정리하는 게 순서겠지요.
2018년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일까요?
먼저 언론 평가 두 가지, 소개합니다.
먼저 외국입니다. 미국 이야기인데요. 구태여 멀리 간 건 우리와 관련이 있어서 입니다.
◆ 미국인이 꼽은 올해 1위 뉴스는?
‘뉴스핌’ 권지언 기자가 27일 내보낸 기사 보겠습니다. 「미국인들 “올해의 탑뉴스는 지난 6월 북미 정상회담”」입니다.
미 의회 전문매체 더힐(The Hill) 등이 조사해 26일(현지시각) 공개한 서베이 결과, 응답자의 22%가 ‘북미 정상회담’을 올해의 뉴스로 꼽았다네요.
2위는 ‘러시아의 미 대선개입에 관한 로버트 뮬러 특검 수사’(18%), 3위는 ‘불법 이민자 가족분리 정책’(17%) 입니다.
기사에 소개된 논평이 흥미롭네요.
“북미 정상회담 이후에도 중요한 이벤트들이 있었던 걸 감안하면 많은 미국인들이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만남을 '올해의 뉴스'로 꼽았다는 게 서프라이즈”라고 했군요. 공화당 여론조사 요원 짐 호바트(Jim Hobart)의 평가입니다.
그의 말처럼 4위(11월 중간선거, 16%)와 5위(7월 브렛 캐배노 대법관 지명, 15%)에 오른 묵직한 이슈도 북미 정상회담 이후 발생한 뉴스입니다.
이 대목에서 생각나는 게 있는데요. 문재인 대통령의 지지율입니다.
남북, 북미 정상회담 등에 힘입어 한때 80%를 넘나들던 지지율이 반년도 안 돼 40% 중반으로 떨어졌지요. 집권 후 처음으로 ‘부정적 평가’가 ‘긍정’을 앞서는 ‘데드 크로스(dead cross)’가 나타났습니다.
여론조사업체인 리얼미터는 ▲비위 혐의로 수사를 받고 있는 김태우 전 청와대 특감반원의 첩보보고서 유출 ▲청와대 특별감찰관실 압수수색 사태 ▲김정호 민주당 의원의 ‘공항갑질’ 논란 ▲법정 주휴일 최저임금 산정 포함 논란 등이 악재라고 분석했군요. “여론조사 기간에 있었던 남북철도·도로 연결은 지지율에 큰 영향을 주지 못했다”고 덧붙였습니다.
우리 국민들에겐 ‘흘러간 옛 노래’를 미국은 오래 간직한다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젊은 미국인들이 북미정상회담에 큰 의미를 두고 있다는 조사결과도 흥미롭습니다.
18∼34세 유권자의 31%가 북미정상회담을 꼽은 반면 35∼49세는 이민자 가족분리 정책을 더 우선했다고 합니다.
세대간 의견차는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한국갤럽의 2018년 12월 통합 여론조사(성인남녀 3007명) 결과, 20~40대에서는 '문재인 대통령이 잘하고 있다'는 답변이 더 많았습니다. 20대 51%, 30대 58%, 40대 54% 등입니다.
반면 50대 이상은 '못하고 있다'가 더 많네요. 50대는 ‘잘하고 있다’ 40%, ‘못하고 있다’ 53%, 60대 이상은 33%, 54%였습니다.
◆ 젊은 층일수록 문재인 대통령 지지?
이 조사결과를 놓고 “젊을수록 진보”라고 할 수 있을까요?
더 뜯어보면 꼭 그렇지는 않습니다. 아주 특이한, 눈여겨보지 않으면 놓치기 쉬운 숫자 하나가 숨어있습니다. 무엇일까요?
남녀로 나눠보면 20대 남성의 지지율은 41%(‘못하고 있다’ 45%), 여성은 63%(‘못하고 있다’ 23%)입니다.
20~40대 가운데 유독 20대 남성만 ‘못하고 있다’가 높은 것입니다. 20대 남녀 지지율 격차도 아주 큽니다.
20대 남성들 사이에 지금 무슨 일이 있는 것일까요?
문재인 대통령을 향한 것인지, 아니면 정책에 대한 비판인지 가늠하기 힘들지만, 20대 남성의 불만은 색다른 현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지지율은 변하기 마련이지만 20대 남성의 동향을 예의 주시해야겠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물론 섣불리 예단했다가는 큰 코 다치기 십상이니 조심해야 합니다.
◆ ‘어깨의 짐은 무거운데 갈 길은 멀기만 하구나’
두 번째 언론 평가는 교수신문(kyosu.net)이 내놓은 ‘올해의 사자성어’입니다.
교수신문은 매년 전국 대학교수들에게 설문조사를 하여 그 해를 상징하는 사자성어를 뽑아 발표하고 있지요. 올해는 ‘任重道遠’(임중도원)이 선정됐습니다.
응답자의 38.8%가 택했군요. 『논어(論語)』에 있는 말로 ‘짐은 무겁고 갈 길은 멀다’는 뜻이라고 하네요.
전호근 경희대 교수(철학과)는 “문재인 정부가 추진 중인 한반도 평화 구상과 각종 국내정책이 뜻대로 이뤄지려면 해결해야 할 난제가 많은데, 굳센 의지로 잘 해결해가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추천했다”고 합니다.
2위는 ‘구름만 가득 끼어 있고 비는 내리지 않는다’는 ‘密雲不雨’(밀운불우)가 차지했는데 고성빈 제주대 교수(정치외교학과)는 “남북정상회담, 북미정상회담, 소득주도 성장 등 중대한 변화가 있었지만 구체적인 열매가 열리지 않고 희망적 전망에만 머무는 아쉬운 상황이 지속되고 있다”고 했다네요.
문 대통령 집권 1년차인 지난해 사자성어는 무엇이었는지 혹 기억하십니까?
파사현정(破邪顯正)이었습니다. “적폐청산이 ‘파사(破邪)’에 머물지 말고 ‘현정(顯正)’으로까지 나아갔으면 한다”는 최재목 영남대 교수(철학과)의 지적이 가슴에 와 닿는군요.
◆ DJ정부와 노무현 정부에 대한 교수 평가는?
‘대통령 지지율’과 ‘올해의 사자성어’를 보면서 교수 집단이 언론보다 더 긴 호흡으로 살고 있구나 생각했습니다.
하루 단위로, 주 단위로, 그리고 월 단위 지지율에 일희일비하는 언론에 비해 대학은 그래도 1년 단위로 매듭을 지어가는구나 하고 말입니다.
그래서 내친 김에 김대중 정부 때부터 지금까지 교수들이 뽑은 올해의 사자성어의 변천사를 살펴보았습니다.
교수신문은 2001년부터 ‘사자성어’를 발표했는데요.
2001년은 김대중 대통령(임기 1998.2~2003.2) 집권 4년차로 미국 9.11테러가 있었던 해입니다. 국내에서는 조선·중앙·동아일보 등에 대한 세무조사가 본격화된 해이기도 합니다. 2001년의 사자성어는 ‘오리무중’이었고요, 2002년은 ‘이합집산’이었습니다.
노무현 정부(2003.2~2008.2) 시절을 보겠습니다.
1년차인 2003년은 우왕좌왕이고요, 2004년은 당동벌이(黨同伐異).
당동벌이는 ‘같은 무리와는 당을 만들고 다른 자는 공격한다’는 뜻입니다.
2004년에는 대통령 탄핵, 수도 이전, 국가보안법 폐지안·언론관계법·사립학교법 개정안·과거사규명법 등을 둘러싼 여야 대립이 심했지요.
1년 내내 지속된 정쟁과 경제 불황 등을 빗댄 ‘지리멸렬(支離滅裂)’과 ‘이전투구(泥田鬪狗)’도 2004년 사자성어 목록에 올랐군요. ‘2004년 최악의 사건’으로는 ‘대통령 탄핵’을 꼽았습니다.
3년차인 2005년은 '상화하택'(上火下澤)입니다. ‘위에는 불, 아래는 물’이란 뜻이네요.
통상 불은 위로 올라가려 하고, 물은 내려가는 성향을 가진 것처럼 서로 이반(離反)하고 분열한다는 의미입니다. 진보와 보수 간 이념논쟁이 치열했고, 행정중심복합도시 건설을 둘러싼 지역갈등, 사립학교법 국회통과를 둘러싼 갈등 등이 심했다고 교수신문은 논평했습니다.
'양두구육'(羊頭狗肉.양 머리를 대문 앞에 달아놓고 개고기를 판다)이 2위, 정제되지 못한 말이 난무한다는 '설망어검'(舌芒於劍), 상대방의 작은 허물을 찾아 비난한다는 '취모멱자'(吹毛覓疵) 등도 순위에 올랐습니다.
2006년은 ‘하늘에 구름만 빽빽하고 비가 되어 내리지 못하는 상태’를 뜻하는 ‘밀운불우(密雲不雨)’가 선정됐습니다.
주역에 나오는 말로, 여건은 조성되었으나 일이 성사되지 않아 답답함과 불만이 폭발할 것 같은 상황을 나타낸다고 합니다. 교수신문은 ‘체증에 걸린 듯 풀리지 않는 한국의 정치와 경제 상황’을 선정 배경으로 꼽았습니다. 또 치솟는 부동산 가격, 충분한 사회적 합의 없이 진행돼 갈등만 불러일으키고 있는 한미 FTA협상 등이 국민들에게 답답함만 안겨줬다고 지적했네요.
아울러 북한의 핵실험으로 결과적으로 한반도 평화 정착이 더 어렵게 된 점은 답답함을 넘어 불안감을 주고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어설픈 개혁으로 나라가 흔들렸음을 의미하는 ‘교각살우(矯角殺牛)’, 모순이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는 ‘만사휴의(萬事休矣)’가 뒤를 이었고, 개혁하는 데 있어 미흡한 전략과 전술로 강고한 기득권층과 맞서려는 행태를 묘사한 ‘당랑거철(螳螂拒轍)’도 언급됐군요. ‘2006년 안타까운 일’로는 ‘북한 핵실험’이 1위로 선정됐네요.
노무현 정부 마지막 해이자, 연말 대선에서 이명박 후보가 대통령으로 당선된 2007년은 ‘자기를 속이고 남을 속인다’는 ‘자기기인(自欺欺人)’이 선정됐습니다.
“남을 속이는 것은 곧 자신을 속이는 것인데, 이것은 자신을 속이는 것이 심해진 것이다”라는 뜻을 가진 자기기인은 『주자어류』를 비롯해서 불경에 자주 등장하는 말이라고 합니다.
안대회 성균관대 교수(한문학)는 “자기기인은 인간의 도에 넘친 욕망이 분출돼 나타나는 행동”이라면서 “사회저명 인사들의 학력위조, 대학총장과 교수들의 논문표절, 유력 정치인들과 대기업의 도덕 불감증 등 자기기인 사건을 많이 접했다”고 말했군요.
이어 난제가 가득한 형국을 묘사한 ‘산중수복(山重水複)’, 의혹의 실체가 밝혀지면서 치부가 드러난다는 ‘수락석출(水落石出)’, 대통령 선거에서 눈뜨고 볼 수 없는 사건들이 이어졌다는 뜻의 ‘목불인견(目不忍見)’이 순위에 올랐군요.
이상 살펴 본 것처럼 김대중, 노무현 등 진보정권에 대한 대학교수들의 평가는 그리 후하지 않습니다. 날카롭고 비판적이지요. 언론 평가보다 더 혹독합니다.
※ 만약 문재인 정부가 ‘사자성어 평가’에 관심을 갖는다면 2006년을 거울삼을 것을 강력 추천합니다.
◆ MB정부 5년의 사자성어는?
이제 보수정권인 이명박 정부 5년과 박근혜 정부 4년을 살펴보겠습니다.
이명박 1년차인 2008년에는 ‘병을 숨기면서 의사에게 보이지 않는다’는 ‘호질기의(護疾忌醫)’가 올해의 사자성어로 뽑혔습니다.
김풍기 강원대 교수(고전비평,국어교육학)는 “정치·경제적으로 참 어려운 해를 보내면서 정치권은 국민들의 비판과 충고를 겸허히 받아들이려는 자세가 부족했다”면서 “문제가 더 커지기 전에 얼른 귀를 열고 국민과 전문가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는 경고의 의미”라고 추천 이유를 밝혔군요.
교수신문은 응답자들이 미국산 쇠고기 파문, 촛불시위, 미국발 금융위기 등을 처리하는 정부의 대응방식을 ‘호질기의’에 빗대 비판했다고 논평했습니다.
김종철 연세대 교수(법학)는 “2008년은 정부출범과 뒤이은 촛불시위, 금융위기로 대표되는데 정치, 경제, 사회 지도층이 상황에 맞은 진단과 전망을 내놓지 못했다”면서 “사익을 우선하거나 무능력한 모습을 보이면서 본질을 간파하지 못하고 미봉과 임기응변으로 대응한 것이 문제를 키웠다”고 지적했고 김정래 부산교대 교수(유아교육학)는 “이명박 정부는 실용을 내세우면서도 국가기강을 다시 세울 대책을 내지 못하고, 이에 대한 충고를 이념 대결로 치부하고 있다”고 ‘호질기의’ 선정 이유를 밝혔군요.
또 구승회 성균관대 교수(의학)는 “자신을 낮추고 남의 말을 듣는 자세가 부족하고, 자신의 능력에 대한 맹신이 올 한 해 우리사회에서 나타나는 문제점이었는데 호질기의가 이를 잘 요약하고 있다”고 말했다고 교수신문은 전하고 있습니다.
이어 금융위기를 비유한 ‘토붕와해(土崩瓦解)’, 일을 서두르면 도리어 이루지 못한다는 ‘욕속부달(欲速不達)’, 나뭇잎 하나로 눈을 가린다는 ‘일엽장목(一葉障目)’, 엎친 데 덮친 격이라는 ‘설상가상(雪上加霜)’ 등이 순위에 올랐군요,
2년차인 2009년에는 ‘샛길과 굽은 길’이라는 ‘旁岐曲逕’(방기곡경)이 선정됐습니다.
'방기곡경'은 일을 정당하고 순탄하게 하지 않고 그릇된 수단을 써서 억지로 하는 것을 비유하는 말입니다.
조선 유학자 율곡 이이가 『동호문답』에서 군자와 소인을 구분하는 법을 설명하면서 ‘소인배는 제왕의 귀를 막아 제 이익을 도모하기 위해 ‘방기곡경’의 행태를 자행한다’고 말한 데서 비롯됐다고 합니다.
서로 옳다고 하지만 중도를 얻지 못한다는 ‘중강부중(重剛不中)’, 소모적인 논쟁을 거듭한다는 ‘갑론을박(甲論乙駁)’이 뒤를 이었네요.
3년차인 2010년은 ‘머리는 숨겼으나 꼬리는 숨기지 못했다’는 뜻의 ‘장두노미(藏頭露尾)’입니다.
진실을 숨기려 하지만 거짓의 실마리는 이미 드러나 있다, 또는 속으로 감추면서 들통 날까봐 전전긍긍하는 태도 등을 빗댄 말이기도 합니다.
교수신문은 “공정한 사회를 표방하지만 정작 이명박 정부는 불공정한 행태를 반복하는 이중성을 보이고 있다”는 김기봉 경기대 교수의 선정 사유와 “올해는 천안함 침몰, 민간인 사찰, 검찰의 편파 수사 등 의혹이 남는 사건들이 유독 많았다. 반대 여론이 많은 한미 FTA타결도 잘한 일이라고 강변하는 모습은 장두노미의 의미와 맞아 떨어진다”는 안철현 경성대 교수의 발언도 함께 소개하고 있네요.
2011년은 엄이도종(掩耳盜鐘)입니다. ‘자기 귀를 막고 종을 훔친다’는 뜻으로 나쁜 일을 하고 남의 비난을 듣기 싫어 귀를 막지만 소용이 없음을 의미한다고 합니다.
김풍기 강원대 교수(국어교육과)는 “각종 의혹에 대해 국민들이 납득할 만한 설명이 거의 없다. 여론의 향배에 관계없이 자신들의 생각만 발표하고 나면 그뿐이었다. 소통할 의지도, 능력도 없다”고 추천 이유를 밝혔다고 합니다.
조명래 단국대 교수는 “독단적으로 처리해 놓고 자화자찬으로 정당화하면서 국민의 불만에 전혀 유념하지 않는다”고 지적했고 최민숙 이화여대 교수는 “대통령 측근 비리, 내곡동 사저 부지 불법매입, 한미 FTA 비준동의안 날치기 등 바람 잘 날 없다. 모든 것이 소통부재에서 연유한다고 생각한다”라고 밝혔군요.
이외에도 이리에게 양을 기르게 하는 격이란 뜻으로 탐욕스럽고 포학한 관리가 백성을 착취하는 일을 비유하는 ‘여랑목양(如狼牧羊)'과 갈림길이 많아 잃어버린 양을 찾지 못한다는 ‘다기망양(多岐亡羊)’이 목록에 올랐습니다.
MB정부 마지막 해인 2012년의 사자성어는 '세상이 모두 탁해 홀로 깨어 있기 힘들다’는 뜻의 거세개탁(擧世皆濁)으로 초나라 충신 굴원의 「어부사(漁父辭)」에 있는 말입니다.
윤평중 한신대 교수(철학)는 “바른 목소리를 내야 할 지식인과 교수들마저 정치참여를 빌미로 이리저리 떼거리로 몰려다니면서 파당적 언행을 일삼는다. 진영논리와 당파적 견강부회가 넘쳐나 세상이 더욱 어지럽고 혼탁해진다. 이명박 정부의 공공성 붕괴, 공무원 사회의 부패도 급격히 악화되고 있지만 해법과 출구는 눈에 띄지 않는다”고 추천이유를 밝혔다고 합니다.
또 윤민중 충남대 교수(화학)는 “개인 및 집단이기주의가 팽배해 좌우가 갈리고 세대갈등, 계층불신 등으로 사회가 붕괴되고 있다”고 했고,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MB정부 끝자락에서 모든 윤리와 도덕이 붕괴되고 편법과 탈법이 판을 치는 세상이 돼버렸다. 검찰이나 법원은 법을 남용하고 오용함으로써 정의를 우롱했고, 대통령은 내곡동 부지문제 등 스스로 탐욕의 화신이었음을 보여줬다”고 선정이유를 밝혔다고 합니다.
◆ 박근혜 정부 첫 해부터 부정적 평가
박근혜 정부 첫 해인 2013년의 사자성어는 ‘순리를 거슬러 행동한다’는 도행역시(倒行逆施)가 선정되었군요.
잘못된 길을 고집하거나 시대착오로 나쁜 일을 꾀하는 것을 비유하는 말이라고 합니다.
도행역시를 추천한 육영수 중앙대 교수(서양사)는 “박근혜 정부의 출현 이후 국민들의 기대와는 달리 역사의 수레바퀴를 퇴행적으로 후퇴시키는 정책·인사가 고집되는 것을 염려하고 경계한다”라고 추천 이유를 밝혔군요.
“새 정부 일처리 방식이 유신시대를 떠올릴 정도로 정치를 후퇴시키고 있다”고 응답한 최낙렬 금오공대 교수협의회장(물리학과)을 비롯하여 “한국 최초의 여성대통령, 부녀대통령으로 새로운 시대에 새로운 리더십을 기대했지만, 오히려 과거의 답답했던 시대로 회귀하는 모습을 보였다”(김선욱 숭실대 철학과 교수), “대선 공약을 헌신짝처럼 버렸다”(서관모 충북대 교수회장), “경제민주주의를 통한 복지사회 구현이란 공약으로 당선됐지만, 공약들은 파기되고 민주주의의 후퇴와 공안통치 및 양극화 심화 쪽으로 가고 있다”(강재규 인제대 법학과 교수) 등 교수신문이 전한 교수들의 비판이 신랄하군요.
급기야 집권 2년차인 2014년에는 지록위마(指鹿爲馬)라는 사자성어까지 등장했습니다.
‘사슴을 가리켜 말이라고 한다’는 뜻으로 「사기」에서 간신 조고가 황제에게 사슴을 말이라고 고하면서 진실과 거짓을 조작하고 속인데서 유래하는 말입니다. 2014년은 세월호가 침몰한 가슴 아픈 해이기도 합니다.
곽복선 경성대 교수(중국통상학과)는 “2014년은 수많은 사슴이 말로 바뀐 한 해였다. 온갖 거짓이 진실인양 우리 사회를 강타했다. 사회 어느 구석에서도 말의 진짜 모습은 볼 수 없었다”고 추천 이유를 밝혔네요. 구사회 선문대 교수(국어국문학과)도 “세월호 참사, 정윤회의 국정 개입 사건 등을 보면 정부가 사건 본질을 호도하고 있다”고 지적했군요.
지록위마와 함께 ‘삭족적리(削足適履)’가 선정됐는데 발을 깎아 신발에 맞춘다는 뜻입니다. 남기탁 강원대 교수(국어국문학과)는 “선거용 공약, 전시행정 등을 위해 동원된 많은 정책이 억지로 꿰맞추는 방식”이라며 추천 이유를 밝혔고 박태성 부산외대 교수(러시아 중앙아시아학부)는 “원칙 부재의 우리 사회를 가장 잘 반영한 말”이라고 평가했군요.
세월호의 아픔을 표현한 ‘지통재심(至痛在心)’과 ‘참불인도(慘不忍睹)’도 눈에 띄는군요. 지통재심은 ‘지극한 아픔이 마음에 있다’는 뜻으로, 효종이 청에 패전해 당한 수모를 씻지 못해 표현한 말이라고 하고요, 참불인도는 ‘세상에 이런 참혹한 일은 없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합니다.
박근혜 대통령 3년차인 2015년의 사자성어는 혼용무도(昏庸無道)입니다.
혼용무도는 나라 상황이 마치 암흑에 뒤덮인 것처럼 온통 어지럽다는 뜻입니다. 혼용은 어리석고 무능한 군주를 가리키는 혼군과 용군이 합쳐진 말로, 각박해진 사회분위기의 책임을 군주, 다시 말해 지도자에게 묻고 있다는 게 교수신문의 해석입니다.
이어 촛불집회가 광화문에 등장하는 2016년의 사자성어는 군주민수(君舟民水)입니다.
“백성은 물, 임금은 배이니, 강물의 힘으로 배를 뜨게 하지만 강물이 화가 나면 배를 뒤집을 수도 있다”는 뜻이라고 합니다. 교수들의 예언대로 결국 군주는 전복되고 말았습니다.
◆ 건강한 보수의 출현을 기대하며
저는 2018년이 뜻있는 한 해였다고 생각합니다. 이유는 크게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6월12일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과 4월27일, 5월26일, 9월18~20일 등 세 차례의 남북정상회담입니다.
정치적 이벤트를 손에 땀을 쥐고 바라보기는 처음이었던 것 같습니다.
두 번째는 6월13일 치러진 지방선거를 통해 다시 한 번 입증된 ‘보수의 몰락’입니다.
바야흐로 새해 2019년은 정치의 계절을 알리는 해입니다. 벌써 조짐을 보이고 있지요.
2020년 21대 총선을 앞두고 군웅할거와 이합집산이 시작됐습니다.
이 과정에서 건강한 보수의 출현을 기대합니다.
한 인터뷰를 보니 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이 6·13 지방선거에 대해 “보수의 궤멸이란 말에 동의하지 않는다. 이는 자유한국당의 몰락이고 궤멸일 뿐이다”라고 했더군요. “정말로 보수적인 가치를 존중하는 사람들은 자유한국당을 보수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라며 이같이 밝혔다고 합니다.
그는 “지금 젊은이들이 자기 나라를 ‘헬 조선’이라고 하는 마당에 자유한국당은 그런 고민조차 하는 일이 없엇다”라며 “국민에게 그런 문제의식을 보여준 일이 없고, 해결책도 제시하지 못했다. 그런데 국민이 그런 세력을 신뢰하겠느냐”고 했더군요.
윤 전 장관은 이어 “이명박, 박근혜 두 전직 대통령의 만행이 드러났다. 그것이 무능과 부패가 아니면 뭐라 변명하겠느냐”면서 “박정희 신화가 이제 끝났다는 것을 의미한다. 완전히 시대가 바뀐 것이다. 국가를 운영하는 원리 또한 달라져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말이죠, 윤 전 장관의 이 같은 질타에 귀 기울여야 하는 것은 비단 자유한국당만은 아닌 것으로 보입니다. 집권세력인 더불어민주당도 이 비판에서 결코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당이야 뭐가 됐든 2018년의 비옥한 자양분을 토대로 2019년에는 이 땅에도 건강한 보수의 새싹이 피어나길 염원합니다.
새가 잘 날기 위해서는 좌와 우, 양 날개 모두 필요하니까요.
[뉴스핌 Newspim] 박종인 상무(in@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