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김선미 기자 = 사우디아라비아(‘사우디’) 출신 언론인이 사우디 왕실 최고위층의 지시로 암살됐다는 주장이 일파만파 확산되고 있는 가운데, 미국 워싱턴포스트(WP)가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 왕세자의 잔인한 독주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부추긴 것이라고 비난했다.
WP는 2년 전만 해도 미국의 맹방인 사우디 왕실이 워싱턴에 거주하며 WP에 주기적으로 기고하던 저명한 언론인을 납치해 살해하는 것은 물론이고 또 다른 미국의 동맹이자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회원국인 터키 땅에서 그러한 암살 작전을 수행하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터키 수사당국의 주장처럼 사우디 왕실이 사우디 출신 언론인 자말 카쇼기(60)의 암살을 지시한 것이라면, 이는 사우디의 실권자인 빈 살만 왕세자(33)가 야심 많고 가차 없는 지도자로 부상하는 과정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맹목적인 지지를 기반 삼아 미국이 언제든 뒷배를 봐줄 것이란 자신감을 갖게 됐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사진=로이터 뉴스핌] |
버락 오바마 전 행정부는 이란 핵협정에 반대하고 예멘에서 무차별적 공습으로 수천명의 민간인 사망자를 낸 사우디 왕실과 거리를 뒀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하자마자 사우디와의 관계 회복에 나섰다. 트럼프 대통령은 첫 해외 순방국으로 캐나다와 멕시코를 제쳐 놓고 사우디부터 찾았다. 그리고 빈 살만 왕세자의 충성 맹세와 대규모 무기 구매 약속에 현혹돼 그를 맹목적으로 신뢰하게 됐다고 WP는 지적했다.
빈 살만 왕세자가 운전할 권리를 울부짖는 여성들을 포함해 수백 명의 자유주의 운동가들을 투옥했으며 2017년 다수의 기업인과 왕족을 가둬 놓고 이들의 재산을 대대적으로 강탈했음에도 불구하고, 역대 미 대통령들과 달리 트럼프 대통령은 사우디 왕실의 인권 문제를 전혀 거론하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살만 국왕과 빈 살만 왕세자를 깊이 신뢰한다. 이들은 자신들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정확히 알고 있다”고 두둔했다.
빈 살만 왕세자가 지난해 3월 워싱턴을 방문했을 때도 트럼프 대통령은 그를 백악관으로 환대하며 인권에 대해서는 한 마디도 하지 않고 오직 돈 얘기만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우리는 서로를 이해한다. 전례없이 긴밀한 관계가 됐다”며 사우디가 미국산 무기를 대량 구매하기로 약속했다는 점만 강조했다.
WP는 트럼프 대통령의 이러한 맹목적 신뢰를 바탕으로 빈 살만 왕세자가 미국과의 관계 악화를 우려하지 않고 마음 놓고 정적 숙청에 나설 수 있게 됐다고 지적했다.
카쇼기 실종 및 피살 의혹에 대해서도 트럼프 대통령과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은 실종 후 6일이 지나서야 언급하면서, 사우디를 비난하는 발언이 아니라 우려를 표명하고 조사를 촉구하는 데 그쳤다.
하지만 미 의회는 사우디에 대해 보다 날 선 입장을 보이고 있다. 공화당 중진 밥 코커 상원의원(테네시)을 비롯한 공화당 의원들과 크리스 머피 상원의원(코네티컷)을 위시한 민주당 의원들은 언론인에 대한 공격이 가져올 파장에 대해 경고했다.
머피 의원은 트위터를 통해 “사우디 왕실이 카쇼기 암살의 배후라는 터키 당국의 주장이 사실로 드러나면, 미국과 사우디와의 관계가 근본적으로 결렬될 것”이라고 엄포를 놓았다.
터키 이스탄불 주재 사우디아라비아 영사관 앞에서 인권 운동가들이 실종된 언론인 자말 카쇼기의 사진을 들고 항의하고 있다. [사진=로이터 뉴스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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