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이명박·박근혜 ‘특활비 뇌물 사건’ 줄줄이 무죄 판결
뇌물죄 핵심은 ‘대가성’…의심 없을 정도로 입증 가능해야
[서울=뉴스핌] 고홍주 기자 = 이명박 전 대통령이 국가정보원장들로부터 특수활동비 4억원을 수수하는 데 관여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김백준 전 청와대 총무기획관의 지난달 말 선고 공판.
재판 뒤 “미치겠다, 진짜.” 서울중앙지법 320호를 나서는 검사의 입에서 탄식이 흘러나왔다. MB 정부 시절 청와대가 국정원 특수활동비를 수수하는 데 관여한 혐의로 기소된 김 전 총무기획관이 뇌물 혐의 무죄를 선고 받고 나서다.
앞서 박근혜 전 대통령의 관련 재판에서 특활비는 뇌물이 아니라는 판결이 줄줄이 난 데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특활비 사건의 첫 선고에서도 같은 결과가 나와 검찰로서는 난감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서울=뉴스핌] 사진공동취재단 = 국가정보원에서 특수활동비를 상납받고 옛 새누리당의 선거 공천 과정에 개입한 혐의로 기소된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1심 선고가 20일 오후 서울 서초동 법원종합청사 형사대법정 417호에서 열리고 있다. 왼쪽부터 이승엽 판사, 재판장 성창호 부장판사, 강명중 판사. 2018.07.20 |
◆ ‘깜깜이 예산’ 오명..특활비가 뭐길래?
특수활동비는 정보 및 사건수사, 혹은 이에 준하는 국정 수행활동을 하는 데 있어 직접적으로 소요되는 경비를 말한다. 원칙적으로는 영수증 등 사용 증빙자료를 요하지만 안보 등 밝혀졌을 때 중대한 이익을 해하는 활동 등은 이를 생략할 수 있다. 이 때문에 ‘깜깜이 예산’이라는 오명을 안기도 했다.
특활비는 정부 부처 어느 곳에나 다 편성되지만 극도의 보안과 기밀을 요구하는 국가정보원은 모든 예산이 특활비로 편성된다. 때문에 국정원 예산이 어느 정도인지, 어떻게 집행되는지는 소수의 사람들만 알 수 있다. 박 전 대통령의 재판 초에 검찰은 이 특활비가 무엇인지 설명하는 데만 상당한 시간을 쏟았다.
특이한 것은 국정원 특활비 중 국정원장 몫으로 연간 40억원 정도가 편성돼 있다는 점이다. 이를 특수사업비라고 부르는데, 이 특수사업비가 바로 법원에서 줄줄이 무죄를 받아 논란이 됐던 국정원 특활비 뇌물 사건의 원천이다. 국정원장의 특수사업비는 특활비보다 더 높은 보안을 유지해야 하기 때문에 증빙자료를 제출할 필요가 없다. 깜깜이 예산의 깜깜이 예산인 셈이다.
◆ 특활비는 왜 뇌물이 될 수 없을까…핵심은 ‘대가성’
왜 법원은 특활비를 뇌물로 보지 않았을까. 핵심은 대가성에 있다. 통상적으로 뇌물죄가 성립되려면 그에 따른 대가로 오간 것이 있어야 하고, 돈을 주고받은 사람들 사이에 그 돈이 뇌물이라는 인식이 있어야 한다. 하지만 법원은 국정원장들이 자신들의 특사비를 청와대에 상납하는 데 있어 대가를 받는다는 인식이 없었고, 실제로 대가로 주어진 것도 없다는 입장이다.
특활비 사건의 최초 판례인 남재준·이병기·이병호 전 국정원장들 재판부인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2부(성창호 부장판사)는 “직무와 관련한 대가로 지급한 것이란 점이 충분히 입증됐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해 특정경제가중처벌법상 뇌물공여죄를 무죄로 판단했다.
법원은 정호성·이재만·안봉근 전 청와대 비서관들과 뇌물 수수의 당사자인 박 전 대통령에게도 그대로 적용됐다. 재판부는 “국정원장들이 직무수행 등 각종 편의를 기대하고 뇌물을 제공했다는 건 다소 막연하고 추상적일뿐 아니라 현실적인 뇌물 동기로 수긍하기 어렵다”면서 “특활비를 지급하기 시작할 때부터 대통령에게 도움을 받을 구체적 현안이 있었다는 증거도 부족하다고 판단된다”고 판시했다.
김백준 전 기획관 사건의 선고 공판에서도 마찬가지 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김성호·원세훈 국정원장들은 자금을 전달하는 것에 대해 청와대 또는 상급기관에 대한 당연한 예산 지원으로 여겼을 가능성 높다”며 “임명에 대한 보답의 의미나 직 유지, 현안과 관련한 각종 편의제공을 기대하고 지원했다고 하는 건 추상적이고 막연한 추측”이라고 밝혔다.
[서울=뉴스핌] 이윤청 기자 = 110억 원대 뇌물수수와 다스 횡령 등의 혐의로 구속 기소된 이명박 전 대통령이 10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12차 공판에 출석하기 위해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2018.07.10 deepblue@newspim.com |
◆ MB의 유죄 가능성은?
이 전 대통령은 현재 김성호 전 국정원장과 원세훈 전 국정원장에게 특활비를 수수한 혐의를 받고 있다. 이 전 대통령은 검찰 조사 당시엔 수수 사실 모두를 부인했으나 기소 후에는 원 전 원장 당시 받은 2억여원에 대해서는 수수 사실을 인정하고 있다.
검찰은 당시 시민단체 사찰이나 천안함 사건 등으로 원장직 유지가 어려웠던 원 전 원장이 직을 유지할 목적으로 청와대에 돈을 전달했다고 보고 있다.
하지만 이 전 대통령 측은 박근혜 청와대 특활비 사건과 마찬가지로 뇌물이 아니라는 점을 입증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지난달 27일 이 전 대통령의 변호인단은 “보훈단체에 대한 지원은 역대 모든 정부에서 이뤄졌던 일”이라며 “결론적으로 원 전 원장이 자신의 지위를 유지할 목적으로 뇌물을 전한 것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강신업 법무법인 하나 변호사(전 대한변호사협회 공보이사)는 “법에서의 대가성이라는 것은 보다 구체적이어야 한다”며 “검찰은 어쨌든 이익을 얻었다고 보고 있지만, 그냥 돈을 받고 편의 봐주고 직을 유지하게 해줬다는 건 추상적이다. 법원에서는 이미 국정원장으로 재직 중인데 이를 대가로 볼 수는 없다고 판결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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