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객이 구토해도 변상 못 받는 경우 많아"
'널뛰기' 변상 금액.... 시민들도 불만
서울시 "행정기관이 시민을 통제할 권한은 없어"
[서울=뉴스핌] 황선중 기자 = 지난 5일 밤 서울 광진구의 한 도로에서 택시기사 김모(59)씨는 거나하게 취해 비틀거리던 20대 대학생 손님을 태웠다가 곤욕을 치렀다. 취기가 오른 손님이 메스꺼움을 견디지 못하고 택시 내부에 '실수'를 하고 만 것.
차 내부 청소 비용과 냄새가 빠질 때까지 영업 못 하는 시간도 고려해 김씨는 조심스레 변상 금액으로 8만원을 요구했다. 그러나 손님은 금액이 과도하다며 거부했고 이윽고 고성까지 오갔다. 경찰 관계자는 "고의로 구토를 한 게 아니라면 경찰도 직접 해결할 도리가 없다"고 설명했다.
김씨는 "택시기사라면 누구나 취객의 구토 때문에 '속앓이' 해봤을 것"이라고 말했다.
택시와 버스 <사진=김학선 기자> |
실제로 지난해 4월 서울개인택시운송사업조합이 소속 기사 685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택시 이용 승객의 부당행위 설문조사'에 따르면 설문대상자의 87.8%인 602명이 최근 3년간 승객에게 1회 이상의 부당행위를 당한 것으로 나타났다.
승객이 술에 취해 잠이 들어버린 경우(주취 수면)가 487건(80.9%)으로 가장 많았고, '구토'는 484건(80.4%)으로 두 번째로 많았다. '음주 소란' 450건(74.8%), '부당한 시비' 276건(45.8%) 등이 뒤를 이었다.
구토한 승객에게 받은 배상 금액은 '5만원 미만'이 329명(68%)으로 가장 많았다. 5만~10만원은 102명(21%), 10만~15만원은 29명(6%)으로 잇따랐다. 반면 15만원 이상 받았다는 택시기사는 24명(5%)에 그쳤다.
조합 관계자는 "구토를 한 손님은 대부분 취객이다 보니 배상을 받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많은 기사들이 자비로 세차하거나 승객에게 소량의 배상금을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전했다.
서울시에서 2015년 개정한 시 택시운송사업 운송약관에는 '차내 구토 등 오물투기로 차량을 오염시킨 경우'에 택시 기사는 승객에게 최대 15만원까지 보상받을 수 있다는 조항이 있다.
이에 대해 조합 관계자는 "법적 강제성이 없어 개선이 필요하다"며 "해당 조항은 15만원이 넘는 부당한 금액을 보상으로 요구하는 택시기사를 제재하기 위해 생긴, 즉 택시기사가 아닌 시민들을 위한 조항"이라고 설명했다.
그때 그때 다를 수밖에 없는 '널뛰기' 변상 가격은 시민들에게도 불만사항이다.
대학생 김모(25)씨는 "피해를 줬다면 당연히 보상해줘야 하겠지만 객관적으로 책정된 금액이 아니기 때문에 찝찝한 느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고 말했다.
택시 내부에 붙어 있는 여객의 배상 책임 안내. 2018.05.17. sunjay@newspim.com |
2차 피해도 종종 발생한다.
지난 10일 서울 서대문구 홍은동에서는 택시에 구토를 한 20대 남성 승객이 되레 60대 택시 기사를 폭행해 중태에 빠뜨린 사건이 발생했다. 당시 만취 상태였던 승객은 기사의 변상 요구에 격분해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알려졌다.
택시기사 정모(61)씨는 "최소 얼마를 받을 수 있다는 규정이라도 있었으면 한다. 그게 없으니 변상을 요구하면 승객은 '덤터기'를 씌운다고 오해한다"고 말했다. 정씨는 또 "그렇다고 취객을 안 태우면 승차거부로 신고당한다"며 "택시기사가 받는 심리적, 정신적 스트레스가 크다"고 하소연했다.
서울시 도로교통본부 관계자는 "차량 내 구토는 많은 택시기사가 호소하는 불만 중 하나"라고 공감하면서도 "행정기관이 시민을 통제할 수는 없다"며 현실적 어려움을 설명했다. 이어 "시민과 택시기사의 입장이 충돌하는 사안이니 조심스럽고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고 말했다.
sunjay@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