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억 종잣돈으로 10여년 만에 수십억원 벌어
4차산업보다 오히려 1차산업에 '관심'
"분산투자 중요...한 종목 비중 10% 넘지 않아"
[뉴스핌=김양섭 기자] "우리의 앎은 한계가 있고 미래는 예측할 수 없다. 틀려도 되는 투자를 하라."
3억원가량의 종잣돈으로 10년 만에 주식 자산을 수십억원대로 불려 투자자문사를 설립한 박성진 투핸즈투자자문 부사장(CIO)의 투자철학이다. 그는 맞으면 '대박'이 나고 틀려도 망하지는 않는 투자를 추구한다. 그가 생각하는 ‘대박’ 개념도 소위 말하는 10~20배 터지는 종목을 말하는 게 아니다. ‘3년에 2배’ 정도가 그가 추구하는 대박이자 목표다.
박성진 투핸즈투자자문 CIO /김학선 기자 yooksa@ |
◆ ‘안전 마진’ 확보가 가장 중요...1차산업에 '관심'
'안전 마진(Margin of Safety)'은 미국의 전설적인 투자자이자 가치투자 창시자로 불리는 '벤자민 그레이엄(Benjamin Graham)'이 만든 용어다. 변덕스러운 주가가 그 기업의 본질 가치보다 훨씬 싼 경우 그 갭(gap)만큼 일단 마진이 확보된다는 개념으로 해석된다. 80년 전 나온 개념이지만 지금도 가치투자를 추구하는 투자자들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고 있다.
박 부사장은 "내가 하는 얘기들은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다. 이미 수많은 주식투자 대가가 한 얘기들"이라고 전제를 달았다. 다만 "사람들이 안전 마진을 많이 얘기하지만 왜 그렇게 벤자민 그레이엄이 안전 마진을 강조했는지는 제대로 깨닫지 못하는 것 같다"며 "그 개념이 나오게 된 배경에는 인간의 지식은 한계가 있고 미래는 알 수 없기 때문이라는 인식이 깔려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시장을 예측하려고 하지 않는다. 노력해도 알 수 없는 영역이기 때문이다. 예측할 수 없는 영역에 많은 에너지를 투자하지 않겠다는 의미다. 박 부사장은 현재 투자자문사의 최고투자책임자(CIO)를 맡고 있다. 운용자산 규모는 600억원대. 1억원 이상 고객만 받고 있는데 1억~2억원대의 소액 고객들이 많은 편이라고 했다. 그는 "우리와 투자철학을 공유할 수 있는 분들만 고객으로 받는다"고 했다. 기관투자자의 자금은 운용하지 않고 있다. 그는 "대체로 연기금 등 큰 기관들은 성과보수를 주지 않고 투자에도 제한이 많다"면서 "외형 확대를 하는 데는 좋지만 우리의 투자철학과는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다"고 전했다.
그는 7~8년 정도 전업투자자 생활을 하다가 현재 대표이사를 맡고 있는 조영석 대표와 손을 잡고 지난 2014년 말 투핸즈투자자문을 만들었다. 모객을 위한 광고나 마케팅은 전혀 하지 않는단다. "120~130명 되는 고객 대부분은 우리를 직간접적으로 아는 분들이 소개해줬다. 고객이 따라와 주지 않으면 투자철학을 실천하기 어렵다. 우리 목표는 '최고의 수익'보다는 바른 투자철학을 갖고 바른 투자를 해서 꾸준히 수익을 내는 것이다."
그는 "운용자산 수익률은 고객별로, 진입시점별로 다르지만 초기 고객의 경우 첫해 28%, 이듬해 4%, 그 다음해 16% 수준"이라고 답했다. 그의 개인 자산 역시 대부분 주식이며 고객 자산과 함께 운용 중이다. 그는 "내 계좌도 우리 회사의 고객계좌 가운데 하나로 똑같이 운용하고 있다"고 했다. 고객 이탈률은 '1년에 두세 명 정도'라고 한다. 목표수익률에 대해 "연 15~20% 정도를 합리적인 목표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기본적으로 그가 보는 투자 예상기간은 3년 이상이다. 최근엔 종목 찾기가 과거보다 어려워 기준을 '3년에 2배'에서 '4~5년에 2배' 정도로 낮춰 잡았다.
그가 안전 마진과 함께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분산투자'다. 우리의 앎은 한계가 있고 미래는 예측할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인다면 자신이 생각한 안전 마진 역시 틀릴 수 있기에 분산투자는 안전 마진의 필연적 결과라고 설명한다. 그는 "포트폴리오에서 한 종목이 10%를 넘는 경우는 없다"고 했다. 대체로 그는 한 포트폴리오에 20~30여 개 종목을 담는다.
최근 주식시장에서 4차산업에 대한 관심이 높지만 박 부사장은 오히려 '1차산업'에 주목하고 있다. 그는 "4차산업 관련주들이 성장성 프리미엄에 높은 가격이 형성되고 있는데, 그게 계획대로 된다 해도 내 기준에서 보면 대부분 너무 높은 가격"이라고 말했다. 그는 1차산업 가운데서도 돈육 회사, 참치 관련 회사 등에 관심이 많다. 그는 "1차산업은 대체로 사이클이 굉장히 심한 업종인데 이제 어느 정도 좋아지는 상황이 된 것으로 보고 있다"고 했다. 특히 돈육의 경우는 육계(닭)처럼 산업화되는 과정의 초입에 있다고 그는 판단했다.
◆ 사내정치 싫어...돌파구로 '전업투자자'
그는 전업투자자로 살기 전 수년간 회사 생활과 주식투자를 병행했다. 섣불리 회사를 그만두지 않은 것이다. 조금씩 개인 시간을 확보하면서 천천히 전업투자자의 길로 들어서는 전략을 취했다.
그의 첫 사회생활 역시 주식과는 거리가 멀었다. IT 관련 솔루션 회사였다. 당시 주식투자는 그에게 '패가망신, 도박' 등의 단어가 떠오르는 영역이었다. 다만 '월급쟁이로는 미래가 없구나'라는 막연한 생각은 있었다. 그러다 직급이 오르니 사내 정치가 보이기 시작했다고 한다. 사내 정치가 너무 견디기 힘들고 싫었고 직장생활이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 대안으로 찾은 게 '학교'였다. 교수가 되면 자유롭게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에서다. 직장 5년 차 때 파트타임으로 박사 과정을 했다. 그런데 가까이서 교수 생활을 들여다보니 '교수도 하나의 직업일 뿐'이라는 걸 느꼈단다.
장래에 대해 이런저런 고민을 하던 중 우연히 주식투자 관련 일을 하는 친척 얘기를 듣게 됐다. 박 부사장이 당시 받던 월급도 적은 편은 아니었지만 그 친척 연봉과 비교하면 자릿수가 달랐다. 그에겐 '신세계'였던 것이다. 이를 계기로 주식투자에 대한 관심이 부쩍 높아졌고, 2000년대 초 공모주 투자 열풍이 불던 때 주식을 시작했다.
대부분 성공적이었다. 친구의 도움을 받아 차트매매에도 뛰어들었다. 처음엔 잘되는 것 같더니 금액이 커지니 문제가 생겼다. "이건 아니다"라고 결론 낸 뒤 끊임없이 주식투자 '방법론'을 연구했다. 당시 국내에도 '가치투자' 열풍이 불기 시작했다. 그는 가치투자 관련 책들을 닥치는 대로 읽었다. 그리고 학습한 대로 실전투자에 나섰다. 가치투자는 그의 성격과도 잘 맞았다. 재미도 있고 해보니 실제로 투자성과도 좋았다. 수백만원이 수천만원으로 불어났다. 자신감이 생겼고 때마침 목돈도 생겼다. 아내가 수년 전 전세를 끼고 사뒀던 아파트 값이 올라 적지 않은 차익이 생겼다. 이 일부를 주식투자 종잣돈으로 활용했다. 투자금액이 커졌는데도 수익률은 여전히 좋았다. 아내에게 성과를 보여주고 자본을 추가로 확보했다. 박사 과정을 그만두고 2004년부터 본격적으로 주식투자에 나섰다. 때마침 시작된 대세상승장에서 그의 주식자산은 빠르게 늘었다. 그는 "2003년부터 시작해서 연평균 40% 초반의 수익이 난 것 같다"고 추산했다.
그 역시 대부분 투자자들이 고통을 겪었던 2008년에는 손실을 봤다. 다만 그는 이때 주식을 손절(추가 손실을 막기 위해 손실을 확정하고 파는 것)하지 않았다. 싼 주식이 더 싸진 상황이었지만 주식 보유 비중이 거의 100%라서 추가하지는 못했고, 조금 덜 떨어진 종목을 팔고 많이 떨어진 종목을 사는 식으로 포트폴리오 조정을 했다. 그는 "시장의 급등과 급락 시점을 맞추는 건 인간의 예측능력 밖의 일"이라고 했다. 2009년부터 주식시장이 빠르게 회복되면서 보유했던 주식들은 모두 큰 수익을 보고 팔 수 있었다. 그렇게 2008년의 어려움도 빠르게 극복됐다.
사실 그에겐 큰 실패가 없었다. 그는 "이미 주식투자 초기에 수백만원 수준에서 실패를 겪어봤기 때문"이라고 했다. 차트매매 당시를 말하는 것이다. 그는 "그때 만약 차트투자가 성공했으면 계속 그렇게 투자했을 텐데, 초반 실패가 오히려 행운이었다"고 강조했다.
▲박성진 부사장 프로필
1969년 출생
1990년 고려대 경영학과 졸업
1993년 KAIST 경영과학 석사
2000년 KAIST 경영공학 박사 수료
2003년~2006년 광운대 경영정보학과 겸임교수
2014년~현재 투핸즈투자자문 부사장(CIO)
박성진 투핸즈투자자문 CIO /김학선 기자 yooksa@ |
[뉴스핌 Newspim] 김양섭 기자 (ssup825@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