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기 80% 이상 ‘바이러스’ 발병
세균 죽이는 ‘항생제’ 소용 없어
“항생제, 고열 등 상태 심각할때”
[뉴스핌=황유미 기자] #직장인 강모(여·30)씨는 일주일 전 목이 붓고 기침이 시작돼 동네 병원을 찾았다. 항생제가 포함된 약 3일치를 처방받고 복용했으나 낫지 않자 동네 다른 이비인후과를 갔다.
그러나 이 이비인후과 의사는 항생제를 빼고 처방했다. 몸이 아픈데도 더 약하게 약을 지어준다고 생각한 강씨는 의사에게 "왜 항생제를 빼느냐"고 물었다.
의사는 "바이러스성 감기와 세균성 감기가 있다. 그런데 강씨는 바이러스성 감기로 보인다. 항생제가 소용이 없고 오히려 몸에 안좋을 수 있기 때문에 우선 항생제를 빼고 처방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비인후과에서 처방받은 약을 통해 증상이 완화된 강씨는 "쓸 데 없이 항생제를 먹을 뻔했다"며 "앞으로 약 처방전을 유심히 살피거나 감기 증상에 대해 의사와 충분히 의논을 해야겠다고 느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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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
감기의 계절이 돌아왔다. 발열, 인후통, 두통 등의 증상으로 병원을 찾는 이들이 증가하는 가운데, '감기약'으로 오인받는 항생제 오남용에 대한 주의가 필요한 시점이다.
상부 호흡기계 감염인 '감기'는 사람에게 나타나는 가장 흔한 급성질환 중 하나다. 재채기, 코막힘, 인후통, 기침, 미열, 근육통 등이 동반된다.
감기라고 하면 '급성 비인두염'을 지칭하는 경우가 많다. 이 경우 80% 이상이 바이러스에 의해 발병한다. 따라서 대부분 감기는 세균에 의한 감염을 치료하는 항생제를 사용하지 않아도 된다.
그러나 많은 국민들은 감기 치료에 항생제 복용이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강씨처럼 의사에게 항생제 처방을 요구하는 경우도 잇따른 것으로 나타났다.
보건복지부와 질병관리본부의 '2017 항생제 내성 인식도 조사 결과'(성인 1000명 대상)에 따르면 '항생제 복용이 감기치료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는 비율은 56.4%였다.
의사 864명을 대상으로 한 항생제 사용에 대한 인식 및 행태 조사에서는 감기로 병원을 찾은 환자 중 항생제 처방을 원하는 비율이 5점 척도에서 3.33점으로 높게 나타나기도 했다.
항생제가 필요하지 않은 경우에도 항생제를 처방하는 빈도는 10점 척도에서 4.36점이다.
문제는 항생제 오·남용에는 부작용이 따른다는 점이다. 가장 일반적으로는 내성균이 생긴다. 세균이 돌연변이를 일으켜 해당 항생제에 대한 내성을 갖게 되면 더 강력한 항생제에만 반응을 일으켜 약을 남용하게 하는 악순환으로 이어질 수 있다.
또 속이 미식거리는 등의 위장장애가 나타나거나 위·대장의 유익한 균을 죽여서 설사를 일으키는 경우도 발생할 수 있다.
한 소아과 전문의는 "항균제(항생제)는 세균을 죽이고 항바이러스제가 바이러스를 죽이기 때문에 감기에는 사실 항생제를 안쓰는 게 맞다"며 "감기에 쓰이는 약은 콧물을 줄이는 약, 가래를 묽히고 가래 배출을 돕는 약 등 증상을 조절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세균에 의한 감염은 바이러스성보다 증상이 심하다"며 "보통 열이 많이 나거나 편도가 많이 붓고 농이 생기는 경우가 세균성일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질병관리본부 역시 '성인 급성 상기도 감염 항생제 사용지침' 발표하고 병원에 항생제 처방 자제를 권고하고 있다.
해당 지침에 따르면 급성 인두편도염의 경우 ▲체온이 38℃를 넘는가 ▲기침이 없는가 ▲통증을 동반한 전방 경부 림프절 종대(부어오르는 것)가 있는가 등의 요건 중 3가지 이상을 충족시켰을 때 항생제 처방을 해야 한다.
감기 환자의 경우 의사와 증상에 대한 충분한 상담을 통해 약을 처방받고 고열이 동반되거나 증상이 심각할 경우에만 항생제가 필요하다는 것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
이정권 삼성서울병원 가정의학과 교수 역시 삼성서울병원 공식블로그 칼럼을 통해 "환자들은 항생제 효과를 잘못알고 처방을 요구하고 있으며 의사들은 잘 낫지 않으면 근거 없이 2차 세균감염을 걱정하기도 하고 환자의 기대를 저버리지 못하는 이유로 항생제가 흔히 처방된다"며 "감기에는 항생제가 필요 없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뉴스핌 Newspim] 황유미 기자 (hume@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