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종윤 한국재무설계 대표 "금융유통, 소비자 중심으로 바꾸고 싶어"
[뉴스핌=이지현 기자] 1997년 외환위기 당시 신한은행에 다니던 오종윤(51) 한국재무설계 대표는 동화은행 인수·합병 업무를 맡았다. 피인수 은행을 다니던 친구들에 비해 운이 좋은 편이었다. 하지만 그곳에서 은행원의 한계를 목격했다.
"100세 시대인데 많은 은행원이 40~50대 젊은 나이에 직장을 잃었죠. 나가서 뭘 하나 봤더니 대부분 삼겹살집이나 호프집을 하더라고요." 오 대표는 '전문성 없는 회사원'인 은행원을 포기했다.
"알고 지내는 은행원 있으세요? 없죠. 고객들은 은행을 보고 가지 은행원을 찾아가지 않거든요. 2~3년마다 직무를 순환하니 자기 고객이 없어요. 그때 은행원은 평생직업이 아니라는 걸 알았죠."
오 대표는 10년 가까이 다니던 은행을 그만두고 보험에 발을 들였다. "종신보험은 사망할 때까지 보장을 하잖아요. 살아가는 과정에서 펀드도 들고 예금도 하겠죠. 그걸 잘 관리하면 평생고객을 만들 수 있겠더라고요. 은행을 그만둬야겠다고 생각한 뒤 바로 국제공인재무설계사(CFP) 자격을 땄어요. 그리고 2001년부터 종신보험을 파는 푸르덴셜생명에 입사해 보험설계사로 일했죠."
영업은 수월했다. 은행에서도 늘 영업왕을 차지할 정도로 영업에 일가견이 있었다. 때마침 보험시장이 종신보험으로 넘어가던 시기여서, 한 고객 상담이 끝나기가 무섭게 다른 상담 요청이 들어오곤 했다. 은행원 때보다 두 배가 넘는 소득을 올렸다.
오종윤 한국재무설계 대표 /이형석 기자 leehs@newspim |
◆ 보험만 파는 것에서 재무설계로 방향 전환
딜레마도 찾아왔다. 고객의 평생 자산관리에 관심이 있었던 그에게 단순한 보험 판매는 성에 차지 않았다. "종신보험 외에도 다른 금융상품을 통해 재무설계를 하면 안 되냐고 물었더니, 보험사에서는 보험만 판다며 그게 싫으면 다른 길을 가라고 하더군요. 그때부터 은행·증권·보험으로 나뉘어 있는 우리나라 금융유통업 구조를 바꾸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몇몇 CFP들을 모아서 회사를 차렸죠."
그게 바로 한국재무설계다. 2005년 11월 설립 당시만 해도 재무설계 개념이 생소했다.
"그땐 은퇴 이후의 삶에 사람들이 별로 관심이 없었어요. 하지만 저는 최고의 실버사업은 자산관리업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죠. 지금은 확실히 자산관리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잖아요. 앞으론 더 중요해질 거고요."
오 대표는 스스로를 '일 안 하는 CEO'라고 칭했다. "보험판매대리점 대표인데도 영업보다는 플랫폼 만드는 데 더 집중했어요. 재무설계는 고객의 소득이나 자산 파악부터 시작해서 재무 목표에 대한 솔루션 제공, 자산 모니터링까지 장기적으로 관리해야 합니다. 설계사들 개인의 능력에만 맡기기에는 벅차요. 시스템이 제대로 갖춰져 있어야 제대로 된 재무설계를 할 수 있는 거죠."
몇 년 전부터 보험대리점들 사이에서 설계사 스카우트 경쟁이 치열했지만 오 대표는 리크루팅을 하지 않고 시스템 개발에만 몰두했다. 그 사이 설계사는 200명 규모로 줄었다. 대신 지난해 계획했던 영업지원 시스템을 모두 완성했다.
◆ "재무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플랜을 설계"
"한 프로그램 내에서 고객의 재무목표, 소득, 자산, 현금흐름 등 여러 요소를 분석하고 데이터를 바탕으로 고객에게 가장 필요한 금융상품 및 은퇴플랜을 설계하는 거죠. 또 다른 프로그램에서는 보험·예적금·펀드 등 1800개가 넘는 금융상품 중 고객에게 가장 적합한 상품을 자동으로 비교하고 추천해줘요. 아무리 뛰어난 설계사라도 이렇게 많은 정보를 입력할 수 없으니 전문성을 더 강화할 수 있도록 영업지원 시스템을 만든 겁니다."
올해부터 오 대표는 본격적으로 외형 확장에 나설 계획이다. "영업 지원이 늘어났으니 리크루팅도 한결 수월해지겠죠. 그리고 저희는 닥터인본부·중소기업본부 등 고객군별로 본부를 나누고, 설계사들을 각 본부에 소속시켜 해당 시장에서 설계사들이 전문가가 될 수 있도록 하고 있어요. 자신의 이익만 추구하기보다 고객과 윈윈하며 제대로 재무설계를 해보고 싶다 하시는 분들은 저희 회사에서 일하기 좋을 겁니다."
‘일 안 하는 CEO’라는 말이 무색하게 그의 신경은 온통 회사에 집중돼 있다. "앞으로 한국재무설계가 제대로 된 금융서비스 유통업을 하는 회사가 되면 좋겠어요. 금융업권별로 나뉘어 있는 금융유통 구조를 소비자 중심으로 만드는 데 역할을 하고 싶어요. 앞으로 3~4년은 우리 회사와 설계사, 고객들에게 마음을 더 많이 줘야 하지 않을까요? 한동안은 노는 걸 포기해야겠죠."
[뉴스핌 Newspim] 이지현 기자 (jhlee@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