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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환·금융위기보다 더 줄였다…은행원 10만명 무너진다

기사입력 : 2017년05월05일 10:50

최종수정 : 2017년05월05일 10:50

"늘리면 산다"에서 "살기 위해 줄인다"로 전환

[뉴스핌=강필성 기자] 은행 분위기가 변했다. 희망직업 1순위로 꼽히고 정년이 보장되는 준공무원 같던 시절은 옛 이야기다. 몇 년째 이어지고 있는 구조조정 한파가 해가 바뀌어도 계속되고 있다. 희망퇴직으로 퇴사하는 숫자가 새로 채용되는 인원을 압도했다. 더 이상 정년을 채우는 건 힘들다는 인식이 일반화됐다. 대신 희망퇴직 이후를 대비하려는 분위기가 팽배하다.

◆ 올해 말 은행원 10만 시대 돌입

금융통계정보시스템에 따르면 국내 은행 임직원은 지난해말 기준 11만4775명이다. 전년 말에 비해 2248명 줄어든 것. 행원만 따지면 같은 기간 1680명이 감소했다. 해외 현지 채용이 늘어난 것을 감안하면 감소치는 더 커진다. 여기에 지난해 4분기 이후 KB국민은행, NH농협은행, SC제일은행, 신한은행 등이 희망퇴직을 진행했다. 이들 은행에서는 올해 3000명가량이 떠나게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이를 포함하면 업계에서는 올해 은행권 감원 규모가 5000명에 육박할 것으로 보고 있다. 연중 추가로 진행될 희망퇴직, 감원을 고려하면 올해 말 은행 임직원의 수는 10만명 중후반대로 접어들 전망이다. 은행 임직원의 수가 10만명대로 내려앉는 것은 2010년 이후 7년 만이다. 10만명 선이 무너지는 것은 시간문제라는 게 업계의 시각이다. 2014년 11만7000명에 달했던 인원이 3년 만에 10% 이상 줄어드는 셈이다.

우리나라 은행 역사를 보면 임직원의 수는 대체로 우상향 곡선을 그려왔다. 고객이 찾아오기 쉬운 접근성을 경쟁력으로 삼다 보니 은행들은 앞다퉈 지점 수를 늘렸다. 은행원도 같이 늘렸다. '지점과 인원을 늘리면 곧 실적으로 이어진다'는 공식이 성립했다.

이 공식이 깨진 것은 국가 차원의 커다란 위기가 발생했을 때다. 1990년대 말 외환위기는 ‘은행도 망한다’는 교훈을 심어줬다. 당시 제일은행이 미국의 사모펀드에 매각됐고 조흥은행이 정부의 공적자금을 지원받아 지방의 충북은행, 강원은행을 흡수했다. 동남, 충청, 경기, 대동, 동화은행에 이어 주택, 서울, 조흥은행 등도 흡수통합됐다. 33개까지 늘었던 은행이 18개로 통폐합되면서 1999년 말 9만7236명에 달했던 임직원이 2001년 말 8만9183명으로 정리됐다.

외환위기의 후유증에서 벗어난 은행은 4년 만에 인원을 늘리기 시작했다. 다시 성장 경쟁이 시작된 것.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졌지만 국내 은행은 큰 타격을 입지 않았다. 2010년 한 해만 2375명이 줄었을 뿐 계속 인원을 늘렸다.

하지만 2014년을 꼭짓점으로 최근 2년 연속 감소세다. 전문가들은 근래의 감원은 이전과 형태나 배경에서 완전히 다르다고 분석한다. 대형 위기나 충격이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성장 방정식'이 종언을 고하고 정반대로 '줄여야 사는'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 ‘비대면거래’ 시대 전통적 금융업의 위기

실제 은행 이익의 질은 최근 몇 년간 꾸준히 악화되는 중이다. 김우진 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지금까지는 임직원의 임금이 아무리 많이 증가해도 은행의 총자산이익률(ROA)이 이를 상회했기 때문에 인위적 구조조정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지만 최근 몇 년간 ROA가 꾸준히 하락하면서 고정비를 줄여야 할 이유가 생겼다”고 분석했다.

ROA(Return On Assets)는 순이익을 실질총자산으로 나눈 수치다. 은행이 자산을 통해 얼마나 이익을 냈는지를 가늠하는 지표로 쓰인다. 국내 은행의 연평균 ROA는 외환위기 때 급락한 이후 꾸준히 회복했지만 2013년을 기점으로 급격하게 하락으로 돌아섰다. 2005년 1.13에 달했던 ROA는 2015년 0.19까지 떨어졌다.

초저금리, 저성장 기조가 가져온 변화다. 이자 수익성의 지표인 순이자마진(NIM) 역시 2005년 2.84에서 지속적으로 하락해 지난해 1~9월 평균 1.81을 기록했다. 전통적 은행의 수익사업인 대출과 예금만으론 성장이 힘들어졌다는 이야기다.

김 선임연구위원은 “이익 성장이 정체되는 상황에서 투자를 줄이기는 어렵고, 매년 상승하는 임금이 가장 큰 고민거리였을 것”이라며 “임금이 호봉제 등으로 인해 경영 성과와 연동되지 않고 직군별 임금 차이가 없다는 점이 현 구조조정의 가장 큰 이유가 됐다”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수익성이 회복되면 은행이 다시 인원을 늘릴까. 이에 대해 금융 전문가들은 회의적이다. 손상호 금융연구원 선임연구원은 “핀테크와 모바일 뱅킹의 발달로 인해 더 이상 일선 영업점의 인력이 예전만큼 필요하지 않게 됐다”며 “IT기술의 발달로 산업이 구조조정되는 상황에서 은행도 예외가 아니다. 은행은 구조적인 개혁의 초입에 서 있다”고 진단했다.

더 이상 대규모 은행원이 필요하지 않은 시대가 다가왔다는 이야기다. 은행원을 통하지 않고 인터넷이나 모바일로 이뤄지는 비대면거래는 전체 은행 거래의 90%에 육박하고 있다. 이쯤 되니 은행도 경쟁적으로 늘려가던 은행 지점을 축소, 통폐합하는 쪽으로 방향을 바꿨다.

금융통계정보시스템에 따르면 국내 은행의 영업지점은 지난 2012년 7687개로 정점을 찍은 후 매년 내리막을 걸어왔다. 지점에서 일하는 직원 수도 줄었다. PC와 스마트폰으로 금융거래를 하는 '비대면거래'의 시대가 열렸다. 전통적인 은행의 의미와 역할도 변하기 시작했다는 얘기다.

손 선임연구위원은 “앞으로는 전통적 의미의 은행원보다는 하이테크, IT기술 인력을 더 필요로 할 것”이라며 “은행이 노동집약적 구조에서 탈피하기 시작했다”고 진단했다.

문제는 새로운 패러다임이 곧 은행의 수익성을 보장해주는 것은 아니다. 감원은 어디까지나 고정비 지출을 아끼자는 궁여지책일 뿐이기 때문이다. 이런 측면에서 최근 은행의 구조조정이 단순히 원가 절감에만 초점을 맞춘다는 비판도 적지 않다.

금융기관의 한 관계자는 “시중은행에서는 인원을 절반으로 줄여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말까지 나오고 있지만 이는 은행의 성장에 도움 되는 일이 아니다”며 “비대면거래 이후 다가올 첨단 IT금융시장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뉴스핌 Newspim] 강필성 기자 (feel@newspi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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