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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선후보 확정] '노무현 비서실장'에서 '대세 주자'로 우뚝 서다

기사입력 : 2017년04월03일 19:46

최종수정 : 2017년04월03일 20:34

피란민 아들, 연탄배달…유신반대 시위로 제적·수감
'노무현 그림자'→국회의원·당대표·대선후보

[뉴스핌=이윤애 기자] # "'리틀 000', '000의 비서실장'은 절대 1인자가 되지 못한다."

이는 정치권에서 격언 아닌 격언으로 인정받는 말이다. 애초 누군가에 기대 정치적 자산을 쌓은 이는 독립 브랜드로 자립하기도, 의미 있는 성취를 일구기도 어렵다는 얘기다. 실제 주군을 모시던 장수 중에 1인자, 그것도 대통령의 자리에 오른 인물은 적어도 국내에선 없었다. 하지만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는 이 같은 편견에 과감하게 맞섰고 2017년 지금, '문재인 대세론'을 만들었다. 

 "저 문재인이 대세다, 이런 말을 많이들 하는데 실제로 확인해보니까 제가 대세 맞습니다."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는 지난 1월 설 민심 청취 후 기자간담회에서 이 같이 말했다. 지난 19대 총선에 뛰어들며 "끝내 피하고 싶었던 그 길을 걷기 시작했다", "운명같은 것이 나를 지금의 자리로 이끌어 온 것 같다"고 소극적이던 문 전 대표가 변한 건 이때부터였을까.

문 전 대표는 스스로 가장 준비된 후보, 도덕적 흠결이 없는 후보, 대세라고 자신한다. 지난해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를 목도하며 국민들이 '이게 나라냐'고 자괴감을 표하자 "정권교체를 통해 구시대와 구체제의 적폐를 청산하고 새로운 대한민국을 위한 국가대개조를 이룰 수 있다"며 '준비된 대통령' 이미지로 승부걸기 시작했다.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비서실장은 2017년 그 그림자를 벗고 대세론의 주인공, 민주당의 대선후보로 거듭났다. 

◆ 가난한 피난민 출신…"지금의 가치관, 가난이 내게 준 선물"

문 전 대표는 1953년 1월 24일 경상남도 거제군 명진리 허름한 시골 농가에서 태어났다. 한국전쟁을 피해 남으로 자유를 찾아 온 부모님이 처음 정착한 곳이었다. 피난민 가족에게 가난은 천형과 같았다. 아버지가 호남 이곳저곳으로 장사를 나서면 집안 생계를 책임져야 했던 어머니는 연탄을 배달했다. 어머니가 힘겹게 끄는 연탄리어카를 뒤에서 미는 일은 장남인 문 전 대표의 몫이었다. 누구보다 가난했지만 결코 낙담하거나 실망하지 않았다. 그는 자서전 '운명'에서 어린 시절 가난에 대해 이렇게 말하고 있다. "지금의 내 가치관은 오히려 가난 때문에 내 속에 자리 잡은 것이다. 아마도 가난을 버티게 한 나의 자존심이었을지 모르겠다"

그는 가정 형편 때문에 1972년 재수 끝에 4년 장학금을 주는 경희대 법대에 수석으로 입학했다. 그해 10월 유신이 선포됐고, 그의 인생에서 변곡점으로 작용했다. 유신 반대 시위를 주도하다 구속 수감되고, 학교에서도 제적당했다. 강제징집 돼 특전사에 복무했다. 전역 후인 1980년 '서울의 봄'으로 대규모 시위가 연일 이어졌고, 문 전 대표는 거침없이 거리투쟁에 나섰고 또 다시 구속됐다. 그는 철창 안에서 제22회 사법고시 합격 소식을 들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과 만남…"운명이 나를 이끌어 온 것 같다"

그는 1982년 사법연수원을 차석으로 수료했지만 학창시절 시위전력 때문에 판사 임용에서 탈락했다. 좌절하고 번민하던 시절, 운명처럼 '변호사 노무현'을 만나 평생의 동지로 선택했다. 30년 인연의 시작이다. 두 사람은 부산에서 인권변호사 생활을 함께 했고, 이후 노 전 대통령의 정치행보에 따라 한몸처럼 움직였다.

2002년 대선에선 부산 선대위원장을 맡았고 청와대 민정수석비서관, 시민사회수석비서관, 비서실장을 역임했다. 노 전 대통령 탄핵소추 당시엔 탄핵심판 간사 변호인을, 2009년 서거 당시에는 '국민장 장의위원회' 상임집행위원장을 맡았다. 그는 "수많은 별명 중에 노무현 그림자라는 별명이 가장 좋다"고 고백한다.

그러나 '운명'은 그를 가만두지 않았다. 문 전 대표는 2012년 "끝내 피하고 싶었던 그 길을 걷기 시작했다"며 부산 사상구에서 19대 총선에 뛰어들었다. 과거 정치 입문 제의를 여러 차례 받았지만 모두 거절할 정도로 정치에 관심이 없었다. 그는 "노무현은 지키지 못했지만 노무현 정신만은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 MB(이명박) 정권을 심판하고 부산의 운명을 바꾸겠다"며 출사표를 던졌다. 그는 자신의 책에 "운명같은 것이 나를 지금의 자리로 이끌어 온 것 같다"고 적었다.

문 전 대표는 이어 정치신인으로 현실 정치인이 된지 두 달 만에 정치인 최고의 목표 대통령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100만 국민이 참여한 민주당 국민경선에서 정치신인임에도 불구하고 13번 모두 1등을 차지하며 대통령 후보가 됐다. 하지만 대선 결과 1469만표(득표율 48.0%)로 야권 대선후보 역대 최고 득표수를 얻고도, 1577만표(51.6%)를 얻은 박근혜 당시 후보에게 충격적으로 패하고 말았다. 16대 노무현 전 대통령은 1201만표(48.91%), 17대 이명박 전 대통령은 1149만표(48.7%)의 득표율로 당선됐다. 대선 패배 책임론과 호남의 '심판' 논란이 꼬리표처럼 따라다녔다.

◆ 문재인 "무너진 대한민국을 바로 세우겠다"

문 전 대표가 '대세'가 된 것은 지난해 말 불거진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의 과정에서였다. 현 정부에 대한 실망감을 정권교체에 대한 열망으로 이어졌다. 문 전 대표는 촛불민심이 '이게 나라냐'고 자괴감을 표할 때 매주 촛불집회에 참석해 "무너진 대한민국을 바로 세우겠다"고 약속했다. 상식이 상식이 되고 당연한 것이 당연한 사회, 정의가 눈으로 보이고 소리로 들리며 피부로 느껴지는 사회, 실패해도 재기할 수 있고 성공할 때까지 도전할 수 있는 사회로 만들겠다고 강조했다.

지난 대선에서 검증을 마친, 도덕성에 흠결없는 원칙주의자라는 이미지가 말의 힘을 보탰다. 또한 매머드급 인재영입으로 인수위원회가 없어도 국정 공백 없이 국정운영을 해낼 수 있다고 자신했다.

결국 문 전 대표의 호소는 국민의 마음을 움직였고, 지지율이 고공행진을 시작했다. 탄탄한 대세론의 주인공이 된 그는 민주당 경선에서 압도적인 승리로 민주당 대선후보가 됐다.

[뉴스핌 Newspim] 이윤애 기자(yunyun@newspi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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