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보험금 지급 여부 엇갈린 결론 내놔
[뉴스핌=송주오 기자] ‘허위서류를 이용한 단기수출보험(EFF)도 보험금을 지급해야하는가?‘
시중은행과 무역보험공사(이하 무보) 간 모뉴엘 사기대출 관련 보험금 지급 소송에서 재판부마다 결론을 다르게 내리고 있다. 다른 결론이 나오는 이유는 EFF에 대한 해석이다.
20일 금융권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민사46부(부장판사 이수영)는 지난 17일 무보가 기업은행에 220여억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이는 전체 소송가액 약 970억원 가운데 23%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이에 업계에선 사실상 패소한 것으로 해석한다.
이 사건은 지난 2014년 10월에 발각된 중견가전업체 모뉴엘의 금융사기 사건과 관련된 거다. 모뉴엘은 해외 수입업체와 짜고 허위 수출입 자료로 무역보험공사의 보증을 받아 은행으로부터 대출을 받았다. 이에 관련된 6개 은행은 무보를 상대로 보험금을 지급하라는 소송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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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은과 무보의 소송 결과를 가른 것은 EFF의 인정 범위였다. 재판부는 EFF 약관에 있는 ‘보험사고’에 허위수출 계약은 포함되지 않는다고 해석했다.
EFF란 결제기간 2년 이내의 단기수출 계약 후 수출기업이 선적서류를 근거로 수출채권을 은행에 매각할 때 무보가 보증하는 보험이다. 기업은 수출대금이 들어오기 전에 은행에 수출채권을 매각해 대금을 우선 받고, 은행은 수입업자로부터 받는 구조다. 즉 EFF는 은행이 수입업자로부터 대금을 못 받을 경우를 대비한 보험이다.
문제는 이번 사건이 허위 서류에서 비롯했다는 것. 즉 사기대출을 지급 대상인 보험사고 영역에 포함시킬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수협과 기업은행의 소송을 담당한 재판부는 "허위 수출거래에 대한 보험금 지급 의무가 없다"고 판단했다. 반면 농협은행과 KEB하나은행 소송을 담당한 재판부는 "허위 수출거래도 보험금 지급 대상"이라고 판시했다.
이에 시중은행은 이후 진행될 소송을 놓고 혼란스러워하고 있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EFF는 무보의 보증서를 토대로 이뤄지는 데 재판부마다 인정 범위가 달라 당혹스럽다”며 “은행의 주의의무를 강조하는 판결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앞서 유사사건의 판례를 보면 법원은 은행의 주의의무를 강조하는 경향이 짙다. 지난 2011년 워크아웃(기업회생절차)으로 선박수출이 중단돼 금융권에 약 1조3000억원대의 손해를 입힌 신아에스비(구 SLS조선)이 대표적이다.
당시 대법원은 “원가투입계획서만으로 선수금을 인출한 은행의 과실은 공사에 의해 유발됐다기보다 금융기관으로서 지켜야 할 주의의무를 현저히 위반한 결과”라며 중대한 과실에 해당한다고 판결했다.
이번 소송 역시 무보의 보증서를 바탕으로 대출이 이뤄졌다는 점에서 재판부의 주의의무 지적에서 자유롭지 못한 상황이다. 농협은행의 대리인단은 이런 점에 착안해 은행의 성실한 주의의무 이행을 강조한 동시에 약관에 적시한 ‘수출에 대한 추상적인 개념’의 약점을 파고들어 승소를 이끌어냈다.
시중은행과 무보 간 소송은 항소로 이어질 전망이다. 국민은행과 산업은행은 현재 1심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뉴스핌 Newspim] 송주오 기자 (juoh85@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