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방부 "북핵·미사일에 협력 필요" vs 야권·시민단체 "부적절"
[뉴스핌=이영태 기자] 정부가 '최순실 게이트'로 100만명 이상의 시민들이 촛불집회를 벌이고 있는 국정혼란기를 틈타 14일 일본 도쿄에서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에 가서명할 예정이다. 1945년 광복 이후 일본과의 첫 군사협정인 GSOMIA 체결을 둘러싼 논란이 가열되고 있다.
국방부는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선 일본의 첨단정보를 활용할 수 있는 GSOMIA가 꼭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특히 북한이 올 들어 4·5차 핵실험을 실시하고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을 포함한 탄도미사일을 잇달아 발사하면서 북핵·미사일 대응을 위한 한일 간 군사정보 공유 필요성이 더욱 커졌다는 설명이다. 군은 GSOMIA가 체결되면 일본의 우수한 정보수집 능력을 활용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사드저지전국행동과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 회원들이 지난 9일 서울 용산구 국방부 정문 앞에서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 체결 중단을 촉구하는 집회를 갖고 있다.<사진=뉴시스> |
반면 야권과 시민단체들은 과거사와 독도 문제 등에 대한 진지한 반성이 없는 일본과의 군사협력은 부적절하며 시기상조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또한 일본 정부가 추진중인 전쟁을 할 수 있는 '보통국가화'를 식민통치의 대상이었던 한국이 앞서서 지원할 수는 없다고 비판한다.
더구나 정부가 지난달 27일 일본과의 GSOMIA 체결 협상 재개를 발표한 지 불과 18일 만에 가서명을 추진할 정도로 서두르자 최순실 씨 국정농단 파문으로 국민과 언론의 이목이 분산된 틈을 이용해 국민들의 공감대를 얻기 어려운 한일 간 군사협정을 밀어붙이는 것 아니냐는 의혹까지 커져가고 있다.
문상균 국방부 대변인은 지난 11일 브리핑에서 "한일 양측이 다음 주쯤 GSOMIA 체결을 위한 3차 실무협의를 열고 가서명을 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가서명 후에는 법제처의 심사 → 차관회의 → 국무회의 의결의 과정을 거쳐 협정문 사인 순으로 절차를 밟게 된다.
기본적인 논의는 한일 군 당국 간 진행해왔지만 협정문을 만드는 과정부터는 외교의 영역으로 넘어가 외교부가 협정 체결을 주도한다. 법제처는 이 과정에서 실정법상 문제는 없는지 법리적인 검토를 하게된다. 현재 속도라면 모든 과정을 거치는 데까지 불과 한 달 정도가 소요될 전망이다.
지난달 27일 한국 정부의 GSOMIA 논의 재개 발표 이후 양국은 지난 1일 도쿄에서, 지난 9일 서울에서 두 차례에 걸친 과장급 실무협의를 개최했다. 14일 열릴 예정인 3차 실무협의는 가서명을 위한 요식절차인 것으로 보인다.
한일 군 당국이 협정 체결을 서두르는 이유는 양국의 이해관계가 잘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다. 일본은 다음달 초 개최를 목표로 추진 중인 한·중·일 정상회의 전에 협정 체결을 마무리짓겠다는 입장이다. 한국 정부도 '최순실 게이트'를 이용해 일본과의 군사협정에 비판적인 여론을 비켜갈 수 있다는 판단이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국방부는 4년 전 이명박 정부 당시 '밀실추진'에 대한 비판으로 한일 간 GSOMIA 체결 논의가 중단된 이후 논의 재개의 전제 조건으로 국민공감대 형성 등 주변 여건의 성숙도를 내세워왔다.
그러나 정부와 군 당국은 GSOMIA 체결 추진을 발표한 이후 단 한 차례의 공청회도 열지 않는 등 국민여론 수렴 과정을 거치지 않고 있다. 이에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 정의당 야3당은 지난 9일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 중단촉구 결의안을 공동발의한 상태다.
지난 8일 국회에서 열린 국방위 전체회의에서도 지금 이 시점에 협정체결을 서두르는 배경에 대한 질타가 쏟아졌지만 한민구 국방부 장관은 명확한 답변을 하지 못했다. 이철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여론조사와 국방위 의견, 언론평가 등 모두가 (GSOMIA 체결에) 부정적인데 어떤 근거로 여건이 성숙됐다고 판단했느냐"고 따져물었다.
한 장관은 "국민의 이해와 설득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답변 외에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지에 대해선 구체적인 답변을 하지 못했다.
이 같은 논란에도 불구하고 국방부와 외교부 등 정부는 절차상 문제는 없다며 협정 체결을 강행할 방침이다. 문 대변인은 "업무 운영규정에 따라서 (한일 간) 가서명 이전이라도 사전심사 가능하다는 의견을 받았다"며 "법제처의 충분한 심사를 위해서 사전심사 의뢰를 요청한 것 뿐"이라고 말했다.
외교부도 안전보장에 관한 조약에 대해서는 국회가 비준 동의권을 갖지만, GSOMIA는 '협정'인 까닭에 국회 비준이 필요 없다는 입장이다.
조준혁 외교부 대변인은 "(GSOMIA는) 청와대 국가안전보장회의(NSC)를 중심으로 관련부처 간 협의를 통해서 추진되고 있다고 알고 있다"며 "현재까지 GSOMIA 체결이 국회 비준 동의를 받은 사례는 없다"고 말했다.
조 대변인은 '밀실협상'이 아니냐는 지적에는 "밀실로 하는 것은 전혀 아니고, 최대한 투명성을 확보해 가면서, 또 국방부를 중심으로 공론화 과정을 거쳐 가면서 추진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답했다.
◆ 4년 전 중단됐던 GSOMIA 협상, 체결 가능성은?
실제 체결이 이뤄질지 여부는 현재로선 미지수다. 야권에선 국민감정을 고려하지 않은 채 협정 체결을 추진할 경우 한민구 국방부 장관의 해임건의까지 검토한다는 입장이다. 윤호중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의장은 "국민과 야당 의사를 무시한 채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 논의를 계속해간다면 야3당은 국방부 장관에 대해 해임건의도 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일각에선 일본과의 GSOMIA가 체결될 경우 한국이 미국의 미사일방어(MD) 체계에 편입되는 것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하고 있다. 이미 미국의 MD 체계에 편입된 일본과 군사정보를 공유하게 되면 한국 군도 자연스럽게 미 MD에 포함될 것이란 논리다. '아시아 재균형' 정책을 추진 중인 미국이 한미일 3각 공조 강화를 위해 그간 한일 양측에 GSOMIA 체결 필요성을 줄기차게 강조하며 압박을 해온 것도 이런 관측에 힘을 실어준다.
국방부 관계자는 "미 MD 체계 참여는 미사일 공동연구와 개발, 생산, 배치, 운용 및 연습, 훈련 등 전 분야에서의 협력을 의미하는 데 우린 이럴 계획이 없다"며 "GSOMIA는 MD와 전혀 별개의 사안"이라고 반박했다.
그러나 국민의당 박지원 비상대책위원장 겸 원내대표는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로 북한·중국·러시아와 한국·미국·일본 간 신냉전 블록이 형성되는 이 시점에 이 협정은 냉전블록이 만들어지는 걸 더욱 가속할 것"이라며 협상 중단을 촉구했다.
[뉴스핌 Newspim] 이영태 기자 (medialyt@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