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P 뜻'이라며 협박 수준의 퇴진 압력 행사
CJ 문화콘텐츠가 밉보여? 연관설 모락모락
[뉴스핌=강필성 기자] 청와대가 대기업의 오너에게 퇴진을 압박했다는 녹취가 MBN을 통해 공개되면서 파장이 일고 있다. 지금까지 청와대가 대기업을 압박해 수백억원의 기부금을 받아갔다는 의혹을 제기됐지만 사기업의 인사에까지 직접적인 영향력을 행사한 정황이 드러난 것은 처음이다.
이번 녹취는 청와대가 VIP(대통령)의 뜻이라며 이미경 CJ그룹 부회장의 퇴진을 요구하는 것이 핵심이다. 이 부회장은 이재현 CJ그룹 회장의 누나다.
이미경 CJ그룹 부회장. <사진=CJ> |
4일 CJ그룹과 관련업계, 정관계 등에 따르면 이 녹취가 누구에 의해 녹음됐고, 어떤 경로로 유출됐는지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파악 되지 않았다.
다만, 소문은 적지 않았다는 것이 그룹 내부의 전언이다. 앞서 CJ 내부에서도 이 부회장이 박근혜 대통령의 미움을 샀고, 이 때문에 CJ에 대한 수사나 재판 과정에서 불이익을 봤다는 소문은 적지 않았다고 한다.
CJ 관계자는 “이렇게 직접적이고 노골적인 요구가 있었다는 것은 처음 알게 됐다”며 “누가 녹음했고 유출했는지에 대해서는 내부에서도 파악 중이다”라고 말했다.
실제 이번에 공개된 녹취의 내용은 상당히 노골적이다. 청와대 관계자로 추정되는 인물은 “너무 늦으면 진짜 저희가 난리가 난다. 지금도 늦었을지도 모른다”며 “그냥 쉬라는데 그 이상 뭐가 더 필요하냐”고 강압적으로 말한다.
현재 이 녹취에 등장한 대화의 인물은 청와대 관계자의 경우 조원동 전 경제수석비서관이 거론되고 있고, CJ쪽은 손경식 CJ그룹 회장으로 추정되고 있다.
녹취 내용에서는 청와대가 이 부회장의 퇴진을 요구한 이유가 분명하지는 않다. 때문에 재계에서는 CJ의 문화사업이 박근혜 정부에 밉보이는 상황이 있었을 것이란 정도로 추측하는 중이다.
이 부회장은 CJ 문화사업의 선봉에 섰던 경영자다. K콘 등의 한류 콘텐츠의 해외 공연을 비롯해 각종 영화 사업에도 이 부회장이 직·간접적으로 참여했다.
이런 맥락에서 CJ 계열사의 코미디프로그램인 ‘SNL코리아’ 등을 통해 박근혜 대통령을 희화화하거나, 영화 ‘광해’를 본 문재인 당시 민주당 의원이 눈물을 흘리는 장면이 화제가 되는 상황 등이 이 부회장의 퇴진 압박 원인이 됐으리라는 해석도 나온다.
이 녹취가 이뤄진 2013년 말 개봉한 영화 ‘변호인’ 역시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변호사 시절을 다루기도 했다. 당시 일부 극우단체는 CJ그룹을 향해 '좌파영화 제작사'라고 낙인 찍기까지 했을 정도다.
실제 청와대는 문화·예술 사업에 대한 영향력을 예의 주시했던 것으로 보인다. 현 정권에서 만든 것으로 추정된 문화·예술인 블랙리스트에는 총 9473명의 인사가 이름을 올리고 있다.
그렇다고 CJ그룹이 청와대의 이런 주문을 즉각 수용했던 것은 아니다. 녹취에 따르면 CJ는 청와대의 요구에 대해 “부회장님이 외압에 굴복하지 않겠다고…”라며 확약을 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는 오래가지 못했다. 이재현 회장의 배임·횡령 구속에 이어 결국 이듬해 이 부회장은 건강검진을 받기 위해 미국으로 출국했다. 이후 간혹 국내에 들어올 때도 있지만 주로 미국에 머물며 CJ그룹 경영과는 거리를 두는 중이다.
아울러 CJ그룹은 2014년 말 박 대통령의 비선실세로 통하는 차은택 CF감독이 추진한 ‘문화창조융합벨트’ 사업에 참여 1조4000억원을 투자하기로 했고 미르·K스포츠재단에 13억원을 기부했다. 이후 징역이 선고됐던 이 회장은 지난 8월 광복절에 사면됐다.
[뉴스핌 Newspim] 강필성 기자 (feel@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