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핌=이보람 기자] '1조원' 기술수출 신화를 쓰며 제약·바이오주 대장주 노릇을 톡톡히 해오던 한미약품의 시장 신뢰가 급격히 추락하고 있다.
독일 베링거인겔하임에 수출했던 표적항암제 '올무티닙'의 계약 무산도 문제지만 이를 시장에 알리는 과정에서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힘든 모습을 보여준 것이 거센 후폭풍을 몰고왔다.
한미약품은 기술수출계약이 종료됐다는 걸 알고도 14시간이 지난 뒤인 지난달 30일 오전 9시 29분 이를 공시했다. 직전일 장 마감 후 미국 제넨텍과 기술수출을 결정했다는 호재성 공시를 내보낸 뒤였기에 한미약품 주가는 급등락을 이어가며 롤러코스터를 탔다. 투자자들의 실망과 손실은 더 커질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회사측은 늑장공시와 관련, 특별한 이유가 없었다고 한다. 거래소 승인 등 절차적 문제로 공시가 늦어졌다는 해명을 내놓기도 했다. 하지만 확인결과, 이번 공시사안은 절차상 한국거래소의 승인 등이 필요없었다. 때문에 금융당국은 30일 개장 직후부터 계약 파기 공시전까지 28분 동안 쏟아져나온 대규모 공매도 물량과 그사이 대주주 및 회사 임직원들의 주식거래 등을 의심하고 조사에 착수한 상태다.
사실 한미약품은 앞서도 시장 질서를 문란케 한 사태를 여러 차례 일으켰다. 현행법상 경영에 참여하는 대주주가 주식과 관련된 계약을 맺은 경우 5일 안에 공시토록 돼 있다. 하지만 한미사이언스 최대주주인 임성기 회장 외 특수관계인 23인은 이들이 보유한 주식을 담보로 질권설정계약을 맺고도 최대 5년 가까이 지난 지난달 9일에서야 공시를 했다. 법을 위반한 사실을 알고 '은근슬쩍' 공시한데 대해 회사측은 "단순 업무 실수"라고 답했다.
해당 공시후 한 달도 안돼 기술수출 계약과 기술수출 파기 계약이 번갈아 나오자, 일각에선 "실제 대출을 얼마나 받았는지 모르지만, 최악의 경우 악재에 따른 주식수 변동을 예상하고 그 시점에 질권설정계약을 공시한 것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한미약품은 지난해 베링거인겔하임과 기술수출 과정에서 미공개정보가 유출, 소속 연구원과 증권사 애널리스트가 실형을 선고 받기도 했다. 해당 계약을 한 달 앞둔 시점에서 주가가 급등, 한국거래소가 조회공시를 요구한 데 대해서도 "주가에 영향을 미친 중요 공시사항이 없다"고 단답으로 끝낸다.
한미약품이 제네릭만으로 크게 성공할 수 없다는 판단하에 연구개발에 몰두, 우리나라 제약·바이오산업의 흐름을 바꾸고 산업 자체의 가치를 끌어올렸다는 것은 칭찬받을 만하다. 하지만 앞서 짚어봤듯 한미약품의 시장 대응은 시가총액 5조원의 회사로서도 너무도 안일했다.
지난해 7월 미공개정보이용에 대한 처벌이 강화되면서 상대적으로 개인투자자들은 공시와 같이 회사측이 공식적으로 제공하는 정보 외에 투자정보를 얻기 힘들어지고 있다. 이번 한미약품 공매도 사태가 수급별 정보 불균형의 한 단면이다. 기관과 개인간 정보격차를 해소하기 위해 기업들이 공시를 통한 기업경영상황 및 정보 전달에 더 신경써야 하는 이유다.
회사의 노력과 함께 금융당국과 한국거래소 역시 제도적 보완이라는 과제가 남겨졌다. 이번 공시시점 논란의 1차적 책임은 회사지만 사실상 공시 자체만으로는 법적 처벌이 불가능하다는 '빈틈'도 발견됐다. 당국의 발빠른 조사와 대응이 필요한 시점이다.
[뉴스핌 Newspim] 이보람 기자 (brlee19@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