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만에 시총 2.7조 증발…공매도 거래량 13배 ↑
[뉴스핌=이보람 기자] 한미약품의 공시 시점 논란으로 주가가 급등락하면서 금융당국이 불공정거래 여부에 대한 조사에 착수했다. 한미약품 측은 절차상 시간이 지연됐을 뿐 법적 문제는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한미약품, 호재 뒤 악재 발표…공매도 폭증에 주가급락까지, 개미들만 '울상'
지난달 29일 오후 4시 33분 한미약품은 미국 제넨텍(Genentech)과 경구용 표적 항암제 'HM95573'에 대한 기술이전계약(L/O)을 체결했다고 공시했다. 계약 금액은 계약금 8000만 달러와 단계별 마일스톤(milestone) 8억3000만 달러를 모두 합하면 우리 돈으로 약 1조가 넘는 규모다.
한미약품 주가는 대형 호재가 발표되자 시간외거래에서 5~6% 가량 상승세를 나타냈다. 한미약품은 다음날인 30일 정규장 개장 전부터 상승세를 나타냈고 개장 직후 5% 넘게 뛰었다.
하지만 30분 만에 상황은 반전됐다. 한미약품이 이날 오전 9시 29분, 베링거인겔하임과 내성표적항암신약 '올무티닙(HM61713)'의 기술이전계약이 파기됐다고 공시하면서다. 한미약품은 지난해 7월 독일 제약회사 베링거인겔하임과 올무티닙에 대한 임상개발, 허가, 생산, 상업화를 위한 독점 기술이전 계약을 체결한 바 있다. 계약금 5000만 달러, 마일스톤 6억8000만 달러에 이르는 대규모 기술수출 계약이었다.
해당 공시에 따르면 베링거인겔하임은 "올무티닙의 모든 임상데이터에 대한 재평가 및 폐암혁신치료제의 최근 동향, 폐암치료제에 대한 자사의 비전 등을 고려해 올무티닙의 권리를 한미약품으로 반환키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관련 업계에서는 또다른 글로벌 제약회사 아스트라제네카가 개발중인 경쟁 신약물질 '오시머티닙'에 대한 임상 3상 결과가 먼저 발표돼 시장 선점에 나선 것이 권리 반환에 영향을 끼쳤다고 해석하고 있다. 또 식품의약품안전처'올무티닙'의 임상시험에서 환자 2명의 사망을 동반한 중증피부이상반응 등을 이유로 초기 환자 처방 제한을 결정했다는 소식도 시장에 전해졌다.
이 같은 악재가 연달아 알려되자 장초반 상승세를 나타내던 한미약품 주가도 롤러코스터를 탔다. 30일 악재가 발표되기 전 장중 최고가 65만4000원까지 뛰었던 한미약품은 이날 전일 대비 11만2000원, 18.06% 하락한 50만8000원에 거래를 마감했다. 이번 사태로 시가총액이 하루동안 2조7000억원 증발한 것.
악재가 터지자 공매도 세력도 활개를 쳤다. 이날 한미약품의 공매도 물량은 10만4327주로 집계됐다. 전일 7658주보다 무려 13배 가량 공매도 규모가 급증, 상장 이후 최대치를 기록했다.
결국 한미약품은 공시만 보고 투자한 개미 투자자들이 피해를 봤다는 원성을 피할 수 없게 됐다. 4일 한 포털사이트 종목토론방에는 실제 "왜 그랬어요?", "당장 주식 거래를 정지시켜야 한다", "마치 예전 내츄럴엔도텍을 보는듯 하다", "사기꾼 회사다"라는 비난 의견이 줄을 잇고 있는 상황이다.
전날 대형 호재성 공시에 증권사들도 잇따라 한미약품의 목표주가를 올린 분석보고서를 발표했지만 곧바로 기술계약 파기 소식이 전해지면서 '멘붕(멘탈붕괴)'에 빠졌다는 후문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애널리스트는 "한미약품이 뒷통수를 쳤다"며 "계약이 파기되기 전 당연히 베링거인겔하임측과 충분한 논의를 거쳤을텐데 호재성 공시 뒤에 이를 발표한 의도가 궁금하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이관순 한미약품 대표가 2일 오전 서울 송파구에 있는 한미약품 본사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올무티닙' 논란에 대해 설명하기 앞서 인사 및 사과를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
◆금융당국, 미공개정보 이용 등 불공정거래 조사…"회사측, 절차상 어쩔 수 없었다"
이처럼 한미약품이 투자자들의 비난을 사고 있는 것은 공시 시점 때문이다. 이미 악재를 알고도 호재를 먼저 내놓으면서 이를 믿고 회사에 투자한 투자자들을 '기만'했다는 것이다.
특히 악재성 공시를 개장 전 공시하지 않고 개장후 30분이 지난 시점에 발표하면서 특정 투자자들이 미리 주식을 팔 수 있는 시간을 벌어준 게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된다.
회사측은 절차상 시간 지연이 어쩔 수 없었다는 입장을 내놨다.
공시 시점에 대한 논란과 비난이 거세지자 한미약품은 지난 2일 서울 송파구 본사에서 긴급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날 손지웅 부사장은 "제넨텍과의 계약 체결은 지난달 29일 아침에 통보받았다"며 "관련 규정에 따라 24시간 이내에 공시를 하도록 돼 있기 때문에 공시 시기는 문제가 없다"고 설명했다.
베링거인겔하임의 계약 파기와 관련해선 이관순 대표이사가 "의도적으로 지연 공시를 한 것은 아니고 절차에 따라 승인을 받느라 시간이 걸렸다"며 "베링거인겔하임으로부터 29일 저녁 7시께 계약종료 통보를 받았고 다음날 오전 거래소와 관련 절차를 논의하면서 9시 30분경 공시를 하게됐다"고 해명했다.
회사측에 따르면 계약파기 통보 시점과 공시 시점 사이에는 14시간의 시간차가 발생했다.
계약종료 내용이 단순히 기업 공시담당자에게 맡길 수 없는 중요 사안이라 판단했고 지난해 계약 당시 계약금액과 실제 한미약품이 받은 금액간 차이를 설명하느라 공시가 늦어졌다는 게 회사측 입장이다.
그러나 한국거래소측은 "거래소의 별다른 승인 없이도 기업 공시담당자가 관련 내용을 공시할 수 있었던 상황"이라고 언급, 여전히 논란의 소지가 남아있는 상태다.
이에 금융당국도 신속하게 합동 조사에 착수했다. 지난 2일 금융위원회·금융감독원·한국거래소는 "시장의 혼란을 초래한 한미약품의 공시(수출계약 파기건) 등과 관련, 공시의 적정성 및 미공개정보 이용행위 등 불공정거래 여부에 대해 면밀히 조사하겠다"며 "위법사실이 발견되면 신속히 상응한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공동발표했다.
거래소측 관계자는 "악재성 공시가 나오기 전에 공매도로 부당이익을 챙긴 세력이 있는지 살펴보겠다"고 설명했다.
[뉴스핌 Newspim] 이보람 기자 (brlee19@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