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가, 장기 금리 중앙은행 통제 '어불성설'
[뉴욕 = 뉴스핌 황숙혜 특파원] “사실상 정부가 시장을 통제하는 시대가 열렸다.”
일본은행(BOJ)의 통화정책 결과를 지켜본 월가 투자자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중앙은행의 비전통적 통화정책이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는 공감대가 형성된 한편 투자자들 사이에 희망 섞인 의견을 찾기는 어렵다.
소위 ‘헬리콥터 머니’를 앞세운 충격 요법을 내려놓은 것은 기존의 통화정책으로 인플레이션을 되살릴 수 없다는 사실을 스스로 인정한 것으로 풀이된다.
아울러 이번 정책 기조 변경은 마이너스 금리정책(NIRP)의 중장기 폐단을 BOJ가 인식했다는 사실을 엿볼 수 있는 부분이며, 유럽중앙은행(ECB)와 영란은행(BOE)에 시사하는 바가 작지 않다는 분석이다.
일본은행(BOJ) <출처=블룸버그> |
◆ 시장 친화에서 시장 통제로
일본과 미국, 유럽까지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중앙은행이 경기 부양과 함께 무게를 실은 부분은 금융시장의 안정이다.
시장 혼란이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의 금리인상 발목을 잡은 일이 비일비재했고, 상황은 그 밖에 선진국 중앙은행도 마찬가지였다.
21일(현지시각) BOJ의 회의 결과는 중앙은행의 행보가 시장 친화에서 시장 통제로의 전환을 의미한다는 것이 월가의 진단이다.
바클레이즈의 오시쿠보 나오야 채권 전략가는 CNBC와 인터뷰에서 “금융시장이 정부 통제 시대를 맞이한 셈”이라며 “10년물 국채 수익률 목표를 정한 BOJ의 결정에 따라 당분간 시장 변동성은 잠잠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TD 중권의 마젠 이사 애널리스트는 블룸버그와 인터뷰에서 “이번 BOJ 회의 결과 중 가장 핵심은 장기 금리를 중앙은행이 통제하는 새로운 국면을 열어 제친 것”이라며 “일드커브 통제는 흥미로워 보이지만 입증되지 않은 개념”이라고 강조했다.
BOJ의 회의에 앞서 투자자들 사이에 양적완화(QE)부터 마이너스 금리까지 기존의 통화정책이 실물경기 부양과 인플레이션 개선 측면에서 효과를 상실했다는 평가가 꼬리를 물었다.
정책 노선 변경을 예측했던 투자자들은 또 한 차례 전례 없는 카드에 ‘예고된 실패’라는 회의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이와시타 마리 SMBC 니코 프렌드 증권 이코노미스트는 월스트리트저널(WSJ)과 인터뷰에서 “BOJ의 결정에 회의적인 평가를 내리지 않을 수 없다”며 “가지각색의 변수에 의해 움직이는 장기 금리를 중앙은행이 통제하겠다는 발상은 한 마디로 어불성성”이라고 비판했다.
◆ 인플레 못 띄운다
구로다 하루히코 일본은행 총재 <사진=블룸버그> |
BOJ가 인플레이션을 끌어올리지 못했다는 것은 새로운 사실이 아니지만 이번 회의에서 내린 결정은 정책자들의 의지마저 의심하게 한다는 의견이 번지고 있다.
성장률과 인플레이션 상승이 뒷받침되지 않은 한 일드커브를 통제하겠다는 BOJ의 새로운 전략 역시 허탈한 결과를 맞게 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캐나다 CIBC는 이날 투자 보고서에서 “이번 결정은 인플레이션을 만들어 내지 못한다”며 “단기적으로 장기 금리가 정책자들의 의도대로 움직일 수 있지만 실질적인 경제 성장과 인플레이션 없이는 투자자들이 장기물 국채를 사들여 결국 일드커브를 다시 눕힐 것”이라고 내다봤다.
일명 미스터 엔으로 통하는 사카키바라 아이스케 아오야마 가쿠인대학 교수는 CNBC와 인터뷰에서 “구로다 하루히코 BOJ 총재는 단 한 번도 2%의 인플레이션 목표를 달성 가능한 것으로 여기지 않았다”며 “그런데도 그가 목표치를 포기하지 않는 것은 이를 통해 공격적인 통화완화 정책의 정당성을 얻기 위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 중앙은행의 실패..ECB-BOE 시사점은
한 가지 투자자들이 다행스러워 하는 점은 BOJ가 기존의 양적완화(QE) 및 마이너스 금리의 중장기 리스크를 인식했다는 사실이다.
시장 전문가들은 투자자와 정책자 모두 공공연히 인정하는 부분에 대해 ECB와 BOE가 어떤 반응을 보일 것인가에 주목하고 있다.
모간 스탠리의 야마구치 다케시 이코노미스트는 블룸버그와 인터뷰에서 “BOJ가 NIRP의 부정적인 충격을 마침내 인정했다는 점이 이번 회의의 긍정적인 측면”이라며 “이미 마이너스 금리는 실물경제에 심각한 문제를 일으키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고 말했다.
[뉴스핌 Newspim] 황숙혜 뉴욕 특파원 (higrace@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