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정+통화 카드 다 펼쳤지만 '무용지물'
[시드니= 뉴스핌 권지언 특파원]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새로운 경기 부양 카드를 차례로 모두 공개했다. 하지만 꺼져가는 경기 회복 불씨를 되살리기 위해 가장 중요한 엔화는 '아베노믹스'에 사망선고를 내리는 듯 가파르게 치솟고 있다.
일본은 지난주 일본은행(BOJ)의 통화정책회의와 지난 2일 국무회의를 통해 차례로 통화 완화 및 재정 부양책을 발표했다. 하지만 예상보다 소극적이었던 추가 완화 규모와 겉으로 드러난 수치에 비해 실속은 없다는 평가를 받은 경제 대책은 잇따라 엔화 가치를 끌어 올렸고 달러/엔 환율은 이제 100엔대를 위협하고 있다.
시장은 2012년 말부터 돈 잔치를 시작한 아베 총리의 부양 여력이 이제 바닥을 드러냈다는 평가를 내리며 벌써부터 100엔 붕괴 가능성과 환시 개입 가능성, 이로 인한 환율 전쟁 가능성 등을 언급하고 있다.
◆ "GDP의 1% 미만 규모.. 신규 투입 제한적"
3일 자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재정비한 아베노믹스가 경제 부활을 위해선 여전히 부족하다(Retooled Abenomics still lacks punch for economic revival)"고 평가했다. 신문은 "부양책이 단기 수요를 진작하는 데 치중되어 있고 일본의 중장기 문제를 해결하는데 노력이 부족하다"고 강조했다.
특히 "가계지출을 확대하도록 하는 대책이 불확실하며 이는 돈을 뿌리는 것만으로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과도한 사회보장시스템의 부담과 불공정한 세제를 고쳐 미래에 대한 전망을 개선해야 한다"고 니혼게이자이는 지적했다.
이날 블룸버그통신은 사설을 통해 "일본 국내총생산(GDP)의 1%가 안 되는 이번 부양책은 단기 경기부양효과는 있겠지만, 새로운 것은 전체 액수의 절반 이하"라고 지적했다.
이어 "관건은 일본은행(BOJ)이 얼마라 정부 정책을 지원하는냐에 있는데 현행법상 어디까지 가능할지는 의문"이라고 덧붙였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 <출처=블룸버그통신> |
◆ "돈 잔치 끝"… 달러/엔 100엔 원점
지난주 BOJ 실망감에 달러 대비 5% 가까이 뛰었던 엔화 가치는 2일 공개된 경제 정책에 상승폭을 확대했다.
뉴욕장 한 때 100.68엔까지 밀렸던 달러/엔 환율(엔화 가치와 반대)은 3일 아시아 외환시장에서는 101엔대로 소폭 회복된 상태.
달러/엔 환율이 가장 최근 100엔을 밑돌았을 때는 아베노믹스가 본격화 됐던 2013년으로 지난 3년여 시간 동안 엔저 유도를 위해 공을 들였던 아베 총리의 노력이 수포로 돌아간 셈이다.
달러/엔 환율 추이 (엔화 가치와 반대) <출처=블룸버그> |
새로운 부양 조치들이 발표됐음에도 엔화가 정책 의도와 반대되는 흐름을 보인 데는, 최근 미국 달러화의 자체 약세에 따른 영향도 있다. 연방준비제도의 추가 긴축 시점을 두고 엇갈린 전망들이 나오고 있는 상황에서 예상보다 훨씬 부진했던 2분기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발표되면서 달러에 부담이 된 것이다.
하지만 아베노믹스가 더는 효과를 발휘할 수 없을 것이란 판단이 엔고를 빠르게 부추기고 있다는 분석이 우세하다.
투자전문매체 시킹알파(Seeking Alpha)는 더 이상의 통화 완화는 나오기 어려우며 일각에서는 BOJ가 긴축으로 돌아설 수 있다는 전망까지 나오면서 엔화 가치를 끌어 올리고 있다고 전했다.
앞서 블룸버그와 월스트리트저널(WSJ) 역시 현 통화정책 프레임의 한계와 긴축 가능성이 제기된다고 보도한 바 있다.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브렉시트)와 미국과 중국의 성장 부진 등으로 투자자들 사이에서 안전자산 선호심리가 높아진 점도 대표적 안전자산인 엔화 가치를 지지하는 요인이다.
◆ "환율 100엔 붕괴 시 개입"… 가능할까
일본 엔화 <출처=블룸버그통신> |
시장 참가자들은 앞으로 일본 정부가 쓸 수 있는 부양 옵션보다는 달러/엔 100엔 붕괴 가능성과 그로 인한 일본의 환시 개입, 환율전쟁 점화 가능성 등을 더 신경 쓰는 모습이다.
'미스터 엔'으로 불리는 사카키바라 에이스케 아오야마 가쿠인대학 교수는 이르면 이달 중 달러/엔 환율이 90엔 수준까지 밀릴 수 있으며 일본 정부는 엔화 매도를 통해 개입을 시도할 것으로 내다봤다.
사카키바라 교수는 블룸버그와의 인터뷰에서 “올해 또는 이르면 이달 중 100엔이 붕괴될 가능성이 지극히 높다”며 “일단 100엔이 무너지면 90엔까지 빠르게 내릴 수 있고, 90~95엔 수준에서 환시 개입이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 수준이라면 미국 재무부 역시 달러 약세가 지나치다고 판단해 일본의 환시 개입에 태클을 걸지 않을 것이란 설명이다.
포렉스라이브의 라이언 리틀스톤 통화 애널리스트는 BOJ와 아베가 차례로 카드를 모두 뒤집어 보였고 엔화도 (강세로) 방향을 잡았다면서, 이제는 환율이 바닥을 다지는 시기가 됐다고 분석했다.
그는 일본의 재정 및 통화 부양 공개라는 굵직한 이벤트가 지났고 7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까지 마무리 된 시점에서 달러/엔 환율은 일단 101~104엔 수준에서 안정될 것으로 내다봤다.
시킹알파는 100엔이 붕괴되면 일본 정부가 개입에 나설 것이며 이 때 다른 국가들의 자국통화 평가절하 움직임이 초래돼 시장 변동성이 커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뉴스핌 Newspim] 권지언 시드니 특파원 (kwonjiun@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