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접 재정투입 1/4로 제한하되 겉으로 규모 키워
[뉴스핌=이고은 기자]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지난 27일 후쿠오카 연설에서 '깜짝' 발표한 28조엔 규모 부양책은 꺼져가는 아베노믹스에 새 숨을 불어넣기 위한 특단책이었다.
재원이 한정적인 상황에서 시장을 안심시키기 위해 정부에 의한 직접 현금 투입은 4분의 1 이하로 제한하면서 총 규모는 예상보다 크게 늘리는 방법을 썼다.
공영방송을 통하지 않은 이례적인 발표 방법을 두고서는 오는 29일 일본은행(BOJ)의 금리 결정을 앞두고 마이너스 금리 확대가 아닌 국채 매입 쪽으로 BOJ를 압박하기 위해서란 분석이 나온다.
◆ 아베노믹스 긴급 수혈 '28조엔'
<사진=블룸버그> |
28일 자 니혼게이자이신문은 28조엔 경제 부양책에 아베가 '올인(가지고 있던 돈을 한판에 전부 거는 일)' 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총 28조엔 중 정부의 재정지출만 13조엔에 달한다. 약 6조엔은 현금으로 직접 투입하고 나머지 약 6조엔은 재정 투자 및 융자로 기업 등에 제공한다. 내각은 해당 부양책을 다음주 중 승인할 것으로 예상된다.
저소득층 개인에게는 1만5000엔이 급여로 지급된다. 아베노믹스가 소비자지출을 촉진시키는데 실패했다는 비판에 대응하기 위해서다. 주민세가 면제되는 약 2200만명의 국민이 대상이 될 것으로 추산된다. 1인 가구의 경우는 연간 소득 100만엔을 경계선으로 그 이하에 지급된다.
집권 자민당은 당초 인당 1만엔을 지급하려고 시도했으나, 연립정부를 구성하고 있는 공명당의 요청에 따라 1만5000엔으로 합의했다.
공공지출 확대를 통해 나고야-오사카를 잇는 리니어 주오 신칸센 고속열차의 개통 시기를 8년 앞당기겠다는 아베 총리의 계획도 해당 부양책으로 가시권 안에 들었다.
보육 및 간호 업계 종사자의 임금을 인상해 민간 가처분 소득을 늘리는 안도 포함됐다.
◆ "일단 살리고 보자"... 창조적 타협안
아베 총리는 2018년 9월 사임을 앞두고 있으며 소비세는 2019년 8%에서 10% 인상될 것으로 예정되어 있다. 아베 정부는 그 전까지 디플레이션을 억제하고 경제를 되살려야 하는 상황이다. 성공 여부는 이번 부양책이 아베노믹스에 새 숨을 불어넣을 수 있느냐에 달려있다.
일본의 공공부채가 1000조엔이 넘는 상황에서 정부 재원에는 한계가 있었다. 아베 정부가 대규모 부양책을 포기할 경우 시장의 신뢰는 급격히 꺾일 수 있었다.
신문은 아베가 이런 상황을 염두에 두고 '창의적인' 방법을 택했다고 평가했다. 총 부양책 규모는 일본 사상 3번째로 큰 규모인 28조엔에 달하지만, 중앙정부 및 지방정부에 의한 직접적인 현금 투입은 총 규모의 4분의 1 이하로 설정한 것이다.
해당 부양책은 올해 두번째 추경 예산부터 투입이 시작될 것으로 보인다. 추경 예산은 즉각적인 경제부양 효과가 있는 인프라 프로젝트와 재난 방지에 초점을 두고 있다.
실업보험에서 보험료를 0.2%포인트(p) 인하하고 보육 및 간호 업계에 혜택을 부여하는 안은 2017년 예산안에 포함될 것으로 보인다.
아베는 28조엔 부양책을 통한 경제 개선 노력을 지속할 것을 시사하면서, 단기적인 조치가 아닌 구조 개혁을 요구하는 장기 프로젝트가 될 것이라고 예고했다. 그러나 신문은 부양책에 많은 구식 공공 프로젝트와 효과가 직접적으로 나타나지 않는 장기 프로그램이 포함되어 있다고 지적했다.
가장 큰 문제는 재정이 한정된 상황에서 정부가 어떤 예산 단계를 빼올 것이냐다. 노무라 증권의 니시카와 마사히로는 "28조엔 부양책은 확실히 관심을 끌었지만, 시장은 성장률 상승을 더 찾고 있다"고 말했다.
27일 달러/엔 추이 <자료=블룸버그> |
◆ 이례적인 발표 방식... BOJ 압박 의중
이날 블룸버그통신은 전날 아베의 재정 패키지 발표가 전형적인 부양책 발표와는 달랐다고 보도했다. 공영방송 NHK가 고교야구 챔피언십을 방영하고 있는 도중에 아베 총리는 후쿠오카에서 열린 강연에서 28조엔 부양책을 언급했다. 여러 채널에서 동시 생중계로 발표했던 이전의 부양책 발표와 차이가 크다.
이 일반적이지 않은 방법으로 인해 일반 대중에게는 동시노출이 제한됐지만, 아베가 기존보다 앞당겨 재정프로그램을 공표함으로써 29일 BOJ의 통화정책 결정을 앞두고 하루히코 구로다 일본은행(BOJ) 총재에게 압력을 행사한 것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HSBC 홀딩스의 프레데릭 뉴먼 아시아 전문 수석 연구원은 "아베의 '재정 패키지'라는 공이 구로다의 코트로 던져졌다"면서 "일본은행 정책 발표에 압력이 가해지고 있다"고 평가했다.
이날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익명의 정부 관계자를 인용, 일본 정부는 BOJ가 국채를 추가 매입해야 한다고 보는 입장이라고 전했다.
이 정부 관계자에 따르면 일본 정부는 BOJ가 마이너스 금리를 확대하는 데에 반대하고 있으며, 주식 매입만으로는 불충분하고 국채 매입을 확대해야 한다고 BOJ 측에 압박하고 있다.
또 CNBC뉴스는 아베의 대규모 재정부양책 약속이 사실은 BOJ가 그에 걸맞는 완화정책을 내놓으라는 압박이 되는 셈이라는 전문가 분석을 소개했다.
웨스트팩은행의 로버트 레니 글로벌외환전략가는 "구로다 총재가 아베 총리의 제안에 대해 고민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BOJ가 자산매입 범위를 확대하고 상장주식펀드(ETF) 매입 규모를 두 배로 늘리고 나아가 마이너스금리 대출도 확대할 가능성이 있다"고 예상했다.
한편, BOJ가 이미 일본 정부 발행국채의 1/3을 사들인 데다가 내년이 되면 더 이상 사들일 국채도 사라질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에 자산매입 규모를 더 확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란 관측도 있다. HSBC는 이런 판단 하에 BOJ가 마이너스 금리폭을 0.1%포인트 정도 더 낮출 수있을 것이란 관측을 내놓았다.
중앙은행이 직접 돈을 찍어 이를 투입함으로써 재정적자를 줄이는 '헬리콥터 머니' 정책이 도입될 것이란 관측이 나돌았지만 구로다 총재는 이러한 정책 도입 가능성을 일축했다.
[뉴스핌 Newspim] 이고은 기자 (goeun@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