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우조선 옥포, 빈공간 없이 가득한 야드…'허울'
삼성重 출입통제…장외집회가 야드 분위기 대변
[거제 = 전민준 기자] 날씨는 화창했다. 구름 한 점 없는 하늘 아래 거제조선소는 평화로워 보였다. 웅장한 위용을 갖춰가는 선박과 플랜트 구조물, 그리고 그 속에서 분주히 움직이는 작업자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가까이 다가서서 보니 그들의 표정은 침울했고 동료와 이야기 할 때 들리는 목소리에도 생기가 없었다. 우중중한 분위기가 거제조선소에 성큼 다가온 것이다.
한 때 전 세계 조선업 최대거점이라고 불리었던 거제조선소에는 구조조정의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제조선소 근로자들은 반드시 세계 1위 조선소의 영광을 되찾을 것이라는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있었다.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 전경<사진=전민준 기자> |
◆ 폭풍전야 대우조선해양
23일 오전 거제시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 차를 타고 정문을 지나자마자 구조조정을 반대하는 현수막이 곳곳에 걸려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또, 한편에서는 노동조합원들이 붉은 머리띠를 두르고 부산히 움직이고 있었는데 그들의 얼굴에서는 비장함마저 느껴졌다. 조선업 특별고용지원업종 지정을 앞두고 이기권 고용노동부장관이 24일 현장 방문할 예정이었으니 더 심각하게 느껴졌는지도 모른다.
그곳을 지나 약 5분 정도 이동하니 일렬로 늘어선 거대한 작업장들이 눈에 들어왔다. 철판을 자르거나 잘린 철판을 조립해 선박블록을 만드는 곳이었다.
작업장 안에서는 쇠를 가공하는 기계소리가 가득하고 용접 불꽃이 곳곳에서 튀고 있었다. 작업자 한 사람에게 조선소 분위기에 대해 묻자 "일과시간 내 작업에는 큰 변화가 없다"며 "하지만 당장 닥쳐올 인력감축이나 신규수주 절벽 때문에 걱정이 크다"고 전했다.
정문 앞에 걸려있는 구조조정을 반대하는 현수막<사진=전민준 기자> |
실제 옥포조선소 야드 전체에는 선박이나 대형 블록들이 들어차 있어 빈 공간을 찾기 어려울 정도로 선박 건조가 한창이었다. 그건 도크도 마찬가지였다.
부유식 생산저장설비(FPSO), 드릴십(Drillship), 잭업리그(Jack-Up RIG)를 비롯하여 상선 LNG운반선, 초대형원유운반선, 초대형컨테이너선 등 종류도 다양했다.
작업이 한창인 이유는 일단 이미 수주한 배를 납기 내에 차질 없이 넘겨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추가수주가 없을 경우 내후년부터 야드는 텅텅 비게 되고 일찌감치 인력부터 줄여나갈 가능성이 상당히 크다.
현재 대우조선해양의 수주잔량은 133척(상선 99척, 해양 16척)이다. 안전모를 눌러쓴 현장의 근로자들은 이마에는 땀이 흘러내리지만, 웃을 수 없는 것이 옥포조선소의 현실이다.
조선용 후판 가공 작업장<사진=전민준 기자> |
◆ 삼성重, 원칙 없는 구조조정 수용불가
같은 날 오후 3시 도착한 곳은 삼성중공업 거제조선소. 외부인 출입이 금지돼 있어 홍보부서 직원 안내로 조선소를 둘러싼 울타리를 둘러봤다.
울타리 틈 사이로 보이는 도크에는 대우조선 옥포조선소와 마찬가지로 대형 선박들 건조가 한창이었다. 삼성중공업 관계자는 "올 들어 잔업과 특근이 많이 들어든 게 사실"이라며 "특히 다른 경쟁사보다 강도 높은 구조조정안이 발표되면서 현장에서 불만과 불안감이 극에 달했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침울한 분위기는 '삼성노동자와 가족이 함께하는 구조조정 철폐를 위한 결의대회'가 대변해 주었다. 삼성중공업 노동자협의회는 이날 오후 6시 거제시 장평동 디큐브백화점 앞에서 소속 근로자와 가족 등 500여명과 함께 거제지역에서 첫 장외집회에서 개최했다.
변성준 노협 위원장은 "5년 동안 적자도 단 한 차례였고, 수주잔량도 국내 2위로 양호하다"며 "하지만 다른 회사보다 구조조정 강도가 훨씬 큰 것은 용납할 수 없다"고 말했다. 올 5월 말 기준 삼성중공업 거제조선소의 수주잔량 81척이다.
삼성중공업 노협은 이번 주 중으로 소속 근로자 6000명을 대상으로 파업 찬반투표를 실시하고, 조만간 상경투쟁까지 불사할 방침이다.
삼성중공업 거제조선소 전경<사진=전민준 기자> |
◆ 조선소 인근 상권·부동산 타격, 하반기가 더 걱정
조선업에 대한 구조조정 여파는 조선소 밖에서도 확실히 실감할 수 있었다.
삼성중공업 직원들이 주요 고객인 장평동 상권은 이날 오후 9시가 되자 불이 대부분 꺼졌다. 이곳에서 10년째 식당을 운영하는 박모씨는 "작년보다 매출이 20% 이상 줄었다. 민감한 시기이다 보니까 더 움츠려드는 경향도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대리운전기사 김모씨도 "예전보다 손님이 많이 줄어들었다"며 "번화가로 알려진 고현동이나 장평동으로 들어오는 손님들이 크게 줄어든 것이 사실"이라고 전했다.
인근 부동산 시세도 추락하고 있다. 이튿날 오전 7시 장평동 일대 부동산과 원룸을 둘러봤다. 장평동에서 원룸을 운영하는 한 건물주는 "원룸 매물 소화에 장기간 소요된다"며 "1~2개월 이상 공실 나는 경우가 태반이다"고 말했다. 거제시청 관계자도 "올 1월 이후 거래물량은 급감해 전월세 선호현상이 뚜렷해졌다"며 "아파트 가격도 최근 10개월간 전국 2.5% 상승했지만 거제시는 2.5% 하락할 정도로 사정이 나빠졌다"고 설명했다.
오후 9시가 되자 한산해진 거제시 장평동 상권<사진=전민준 기자> |
하지만 조선업 불황에 따른 여파보다 '카더라통신'이 지역경제를 흔들었다는 의견도 있었다. 또 다른 거제시청 관계자는 "경쟁적·부정적 보도가 조선업에 대한 금융권 대출 및 연장 기피, 소비심리를 위축해 지역경제 전반에 부작용을 일으켰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하지만 6월 이후에는 지역경제가 구조조정이 본격화 되면서 크게 침체될 것으로 본다"고 우려를 표했다.
[뉴스핌 Newspim] 전민준 기자(minjun84@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