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가기준 엉터리…부당기업에 면죄부 주는 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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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뉴스핌 최영수 기자] # 삼성전자와 LG전자는 지난 2012년 평판TV와 세탁기, 노트북 등 전자제품 가격담합으로 소비자들에게 막대한 피해를 입히고 총 446억원의 과징금을 부과 받았다. 하지만 이들 기업은 정부로부터 '소비자중심경영(CCM. Customer Centered Management)' 인증을 받았고, 2년마다 실시되는 재인증도 받아 현재까지 자격을 유지하고 있다(표 참조).
2010년 7월 CCM 인증을 받은 GS칼텍스는 같은 해 6개 정유사 가격담합으로 소비자들에게 큰 피해를 입혔다. 2007년 이후 10회의 시정명령과 세 차례의 검찰고발을 당했지만 여전히 '소비자보호 우수기업'으로 인정받고 있다.
농심은 2012년 라면 가격 담합이 적발돼 제재를 받았다. 매일유업과 한국야쿠르트, 롯데제과 등 식품기업들도 마찬가지로 공정위로부터 제재를 받았으나 아무 상관없이 '소비자중심경영' 인증을 유지하고 있다.
소비자민원이 가장 많은 홈쇼핑업체들도 똑같다. 현대홈쇼핑, GS홈쇼핑, CJ오쇼핑, 롯데쇼핑 등도 CCM 인증 이후 수차례 시정명령을 받았고 올해 대규모유통업법 위반으로 사회적인 물의를 일으켰지만 인증자격에는 변동이 없다.
# 담합으로 소비자들에게 피해를 입힌 기업에게 정부가 '소비자중심경영(CCM)' 인증을 해 준 것으로 드러났다.
CCM 인증은 소비자분쟁에 대한 대응시스템을 잘 갖춘 기업을 정부가 인증하는 제도로서 일반적으로 '소비자보호 우수기업'으로 인식된다.
이같은 일은 CCM 인증 기준이 허술하기 때문에 발생했다는 분석이다. 표시광고법, 전자상거래법, 방문판매법, 약관법, 할부거래법 등 5개 소비자관련법을 위반해 징계를 받지 않으면 인증 대상에 포함된다. 하지만 제도 취지를 제대로 살리기 위해서는 담합과 같은 공정거래법 위반 여부도 기준에 포함해야한다는 지적이다.
◆ 소비자보호 우수기업 인정… 총 137개사 인증
▲정재찬 공정거래위원장(왼쪽 세번째)이 지난 24일 CCM 인증기업들과 간담회를 갖고 제도의 활성화를 위해 협력을 당부하고 있다.<사진=공정거래위원회> |
인증기업은 공정위가 부여한 인증마크를 사용할 수 있고 ▲개별 소비자피해 신고사건의 자율처리 권한 ▲소비자관련법 위반시 공표명령 수준 경감 ▲우수기업 포상 등의 인센티브가 부여된다.
CCM 인증은 '공정거래 자율준수프로그램(CP)'과 함께 공정위의 대표적인 소비자정책으로 꼽힌다.
정재찬 공정위원장도 최근 CCM 인증기업들과의 간담회에서 "CCM 확산을 통해 정부는 행정비용을 절감하고 기업은 소비자 불만을 줄이면서 고객만족도를 제고할 수 있다"면서 "소비자도 신뢰할 수 있는 상품을 선택할 수 있게 된다는 점에서 사회적 편익이 매우 크다"고 강조했다.
CCM 인증 절차는 우선 소비자원이 ▲리더십 ▲CCM 체계 ▲CCM 운영 ▲성과관리 등 4개 항목에 대해 평가한다. 그리고 인증심의위원회(위원장:소비자원 부원장)의 심의를 거쳐 인증하게 된다. 인증기업은 2년마다 재인증을 받아야 한다.
◆ 담합 기업도 재인증 문제없어…인증기준 구멍
인증에서 중요한 기준은 표시광고법, 전자상거래법, 방문판매법, 약관법, 할부거래법 등 5개 소비자관련법 위반 여부다. 이들 법을 위반해 공정위로부터 시정명령 이상의 조치를 받지 않으면 인증 대상이 된다.
문제는 소비자피해나 사회적인 파장이 훨씬 큰 담합이나 시장지배적 남용행위로 훨씬 무거운 제재를 받은 기업들도 버젓이 인증기업 명단에 올라 있다는 것. 소비자 입장에서는 '소비자보호 우수기업'이라는 CCM 인증의 실체를 의심할 수 밖에 없다.
평가기준과 재인증 기준이 허술하다 보니 웬만한 불법행위로는 CCM 인증이 취소되지 않는다. 한번 인증을 받으면 불법행위를 많이 해도 인증마크 사용 외에 인센티브를 제한받는 정도다.
그 조차도 위반점수가 200점이 넘어야 하는데, 부당공동행위(담합)와 시장지배적지위남용행위가 각 건당 100점, 불공정거래행위, 재판매가격유지행위, 표시광고법, 전자상거래법, 방문판매법, 약관법, 할부거래법 등 위반행위가 50점이다. 2년 내 담합과 같은 중대한 위반행위가 2건 이상 적발되거나, 소비자관련법 위반행위가 4번 이상 적발되지 않으면 면죄부를 받는 셈이다.
사정이 이런데도 공정위와 소비자원 큰 문제가 없다는 인식이다. 현행 규정상 소비자관련법만 잘 지키면 CCM 인증을 해주도록 되어 있기 때문이다. 인증제도의 자정기능의 거의 상실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공정위 관계자는 "현행 규정상 소비자관련법을 위반하지 않으면 인증을 해주도록 되어 있다"면서 "담합과 같은 공정거래법 위반행위는 CP(공정거래 자율준수프로그램)제도를 통해 평가된다"고 해명했다.
결국 공정위가 CCM 인증제도의 취지를 되살리고, 제도에 대한 소비자들의 신뢰를 회복하려면 인증기준에 대한 대폭적인 손질이 불가피해 보인다.
[뉴스핌 Newspim] 최영수 기자 (dream@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