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아리랑’은 조정래 작가의 12권 분량 동명 대하소설을 뮤지컬로 옮긴 작품이다.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파란의 시대를 살았던 민초의 삶과 애환, 투쟁의 역사를 그린다. 침략부터 해방기까지 다뤘던 방대한 원작소설과 달리 뮤지컬 ‘아리랑’의 시간적 배경은 20년대 말까지다. 소설 속 수백 명의 등장인물은 감골댁 가족사를 중심으로 재편됐다.
쓰라린 시대, 극의 주축을 이루는 7명 인물의 삶이 민족의 아픔을 대변한다. 감골댁은 빚 20원에 큰아들 영근을 하와이 역부로 팔고, 딸 수국이 일본앞잡이 백남일에 유린당하는 것을 지켜봐야 했다. 득보는 사랑하는 수국의 비극에 절규하며 백남일을 찌르고, 옥비는 그런 오빠를 옥살이에서 해방시키고자 일본 감찰국장 고마다의 첩이 된다. 양반 송수익을 위시한 독립군들의 처절한 사투와 나라 잃은 비애, 먼 타국에서 노예 같은 삶을 살면서 끊임 없이 고향과 가족을 그리워하는 영근의 비참한 삶이 교차돼 시대의 아픔을 표현한다.
LED 영상은 별이 총총히 뜬 밤하늘이나 거대한 감옥 창살과 같이 구현하기 어려운 무대장치를 대신 묘사하는 데서 한 단계 더 나아간다. 갑자기 꽃이 만개하거나 불꽃이 터지는 등의 연출로 인물의 감정이나 무대 분위기를 표현한다. 이는 어색함 없이 작품에 녹아 들어 몰입과 감동을 배가시킨다. 영상과 무대의 경계가 허물어진 독창적인 장면장면이 종합무대예술의 새로운 가능성을 엿보게 한다.
한편, 무대 곳곳에서 발견되는 전통과 현대의 조화는 ‘아리랑’을 설명하는 주요 키워드라 할만하다. 뮤지컬넘버와 판소리의 조화, 한국적 아름다움을 잃지 않은 무대와 LED 및 조명의 조화가 돋보인다. 특히 판소리의 경우 국립창극단 단원 이소연이 옥비 역으로 분해 풍성한 한국의 멋을 전한다.
참혹하고 쓰라린 정서의 해학적 표현 역시 인상적이다. 자칫 신파로 치달을 수 있는 이야기가 세련된 형태로 전달된다. 이 같은 장점이 도드라진 장면은 단연 작품의 피날레다. 마지막 장면은 처형장에 선 송수익을 비춘다.
긴장이 고조된 처형장. 송수익을 구하려는 독립군이 상여꾼으로 변장해 등장하고, 일본군과 총격전을 벌이기 시작한다. 이 와중에 양치성은 일본군에게 버림받아 죽고, 수국과 득보도 이 자리에서 죽음을 맞이한다.
마침내 전투가 끝나고, 생존자들은 죽은 득보와 수국을 상여에 싣고 목적지를 알 수 없는 발걸음을 옮긴다. 독립군과 일본군, 산 자와 죽은 자가 서로를 보듬으며 어우러진다. 아리랑에 맞춰 덩실덩실 어깨춤을 추는 이들의 모습 너머로, 하와이에 있는 영근은 아들을 낳아 득수라고 이름을 짓고 샌달우드나무를 당산나무 삼아 절을 올린다. 이렇게 비극의 역사와 희망의 미래를 동시에 시사한 ‘아리랑’이 먹먹한 감동을 가슴 한 켠에 아로새긴다.
그간 주로 라이선스 및 해외 오리지널 작품으로 관객들을 만났던 신시컴퍼니가 지난 2007년 ‘댄싱섀도우’ 이후 8년 만에 내놓는 창작뮤지컬이다. 약 3년에 걸쳐 기획·제작된 ‘아리랑’은 프로듀서 박명성, 극본·연출에 고선웅, 작·편곡에 김대성, 안무 김현, 음악감독 오민영, 무대디자인 박동우, 조명디자인 사이먼 코더(Simon Corder), 영상디자인 고주원 등이 함께 한다.
“(언젠가는)호시절 오겠제”를 부르는 무대 위 담담한 읊조림 혹은, 비통한 절규가 그야 말로 호시절을 누리고 있는 모두의 가슴에 오랜 여운을 남긴다. 뮤지컬 ‘아리랑’은 오는 9월 5일까지 LG아트센터에서 공연을 이어간다. 만 7세 이상 관람가. 6만~13만 원.
[뉴스핌 Newspim] 글 장윤원 기자(yunwon@newspim.com)·사진 신시컴퍼니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