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이 작품에 대해 들었을 때, ‘어라, 야구 뮤지컬이면 내가 해야지’라는 생각을 저도 모르게 했어요(웃음). 그렇게 내심 욕심을 부렸는데, 연습 시작하고 3주 정도 지나서 ‘해보지 않겠느냐’ 제안이 들어왔죠. 얼마나 기뻤는지 몰라요.”
합류 시기는 여타 배우들보다 늦었지만, 누구보다 먼저 작품에 적응했다. 민우혁은 스무 살, 인대가 끊어지는 부상을 계기로 유니폼을 벗을 때까지 10대 학창시절을 야구 선수로 활약했다. 그 때문일까. 야구 뮤지컬을 만난 그는 무대 위에서 그야 말로 훨훨 날아다니면서 묵혀왔던 실력을 제대로 발휘하고 있다.
“스포츠를 다룬 뮤지컬은 흔치 않은데, 특히 야구는 국내 최초로 시도하는 거잖아요. 보통 뮤지컬이라면 안무나 동선이 치밀하게 짜여 있고 조명에 맞춘 움직임이 있을 수 있지만, 우리 뮤지컬에서는 그런 게 거의 없어요. 감정과 움직임, 역동성이 두드러진 것이 스포츠인 만큼 저희 배우들의 움직임도 매회 다르죠. 무엇보다 역동적으로 보여야 하기까요. 짜인 대로만 움직이면 자연스럽지 못하거든요.”
비교적 자유로운 움직임은 극에 리얼한 활력을 불어넣었지만, 그날그날 움직임이 다르다 보니 실수가 나올 확률도 높아졌다. 특히, 공연 초반 배우들이 진짜 야구공을 주고받으며 경기 장면을 표현했던 지라 실수는 더 많았다.
“지금은 공을 던지고 받는 모션만 취하지만, 처음 실제 공으로 할 때에는 공이 객석으로 튕겨가기도 했어요. 그런 난감한 실수들이 있었죠(웃음). 티는 잘 안 나겠지만, 그런 실수를 줄이기 위해 던지는 것도 굉장히 연습을 많이 했어요.”
야구 선수를 연기하는 배우들은 배역에 완전히 녹아들기 위해 코치로부터 레슨을 받고 자세를 교정받으며 작품을 준비했다. 그 중에서도 민우혁은 “선수 시절 경험이 큰 도움이 됐다. 저와 같이 김건덕 역을 하는 두 배우(강태을, 안재영)가 가장 부러워 했던 부분이 바로 그거였다”며 좋아한다.
“전 안무로 받아들이기 보단 시합 전 몸 푸는 개념으로 이해했어요. 그런 점에서 안무 감독님이 정말 연구를 많이 하시고 안무를 짰다는 게 느껴졌죠. 연출님이나 안무감독님이 정말 감사하게도 저의 의견을 많이 물어봐주셨거든요. 이번 작품은 제가 할 수 있는 부분이 많았던 것 같아요.”
“이승엽 선수는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잖아요. 성품까지 이슈가 될 정도니까요. 하지만 김건덕 선수는 솔직히 들어 본 적이 없거든요. 그래서 처음에는 이승엽 역할을 연기하면 더 편하겠다는 생각도 들었고, 김건덕 선수에 대한 자료도 굉장히 많이 찾기 시작했죠(웃음). 저의 김건덕 캐릭터가 실제 인물과 비슷한 면도 있고 다른 면도 있을 거예요. 중요한 건, 김건덕 코치님을 비롯한 관객이 이 작품을 보고, 학창시절을 떠올리면서 공감하고 힐링이 되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민우혁이 야구선수 출신이기에 어느 정도 유리한 것은 사실이지만, 김건덕이란 캐릭터가 그에게 쉽기만 하다는 뜻은 아니다. “퇴장이 거의 없어서 공연할 때면 물 마실 시간도 없다. 공연 1회 할 때마다 목이 쉰다”고 말할 정도니 배우의 고충이 가히 짐작된다. 더군다나 중반 이후부터는 건덕의 모든 넘버가 부르기 어려운 고음역대로, 배우로서는 굉장한 에너지를 소모하게 된다. 그럼에도 볼 수밖에 없고, 한번 보면 또 보고 싶은 ‘너에게 빛의 속도로 간다’의 매력은 무엇일까.
“막연하게 두 야구선수의 경쟁이나 우정, 남자들의 이야기도 아니고, 단순히 아버지와 아들의 갈등도 아니에요. 효정이 건덕에게 하는 마지막 대사 중에 이런 게 있어요. ‘너 빛의 속도를 넘어선 것 같다. 생각이 바뀌는 속도’라고요. 전 효정의 그 대사에 정말 많은 공감을 했거든요. 건덕은 그때까지 자신의 불행을 모두 남 탓 하면서 부정했지만, 아버지가 남긴 스크랩북을 보면서 많이 울고 ‘그래, 이게 내 모습이지. 이제 지금의 날 인정해야지’라는 말을 해요. 그리고 ‘나 코치 해보는 게 어떨까’라고 선언하죠. 그간 그렇게도 삶을 부정했던 건덕이 생각 하나 딱 바꿨을 뿐인데 행복과 꿈을 찾는 순간인 거예요. 세상에 힘들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모두가 다 힘든 세상을 열심히 살아가는 건데, 그렇게 생각 하나 딱 바꾸면 그 안에서 행복을 찾을 수 있어요. 그런 것들을 얻어갈 수 있는 작품입니다.”
평소에도 운동을 즐긴다는 민우혁은 한때 볼링에 푹 빠진 나머지 프로선수가 되려 했다. 프로선수가 되면 돈을 벌면서 좋아하는 것도 계속 할 수 있어서였다. 그래서 한 1년 정도를 정말 열심히 해서 진짜 프로 볼링선수가 됐다. 등산을 즐기고 골프치는 것도 좋아한다는 그는 현재 연예인야구단 폴라베어스 멤버이기도 하다.
“사실 야구단에서 이승엽 선수와 같이 뛰고 있거든요(웃음). ‘너에게 빛의 속도로 간다’의 첫 장면이 경기에서 우승하는 신인데, 그 때 쓰고 있는 모자가 이승엽 선수가 쓰던 거예요.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우승 당시 실제 이승엽 선수가 썼던 모자인데, 부탁했더니 흔쾌히 벗어서 사인해 줬어요. 처음에는 다른 배우들에게 자랑하려고 썼는데(웃음), 첫공 때 모자에 사인과 함께 적힌 글귀를 봤어요. ‘노력은 결코 배신하지 않는다’는 이승엽 선수의 명대사요. 그 때 큰 충격을 받고 그 글귀를 대사에도 추가해 넣기도 했죠. 매 공연 전에 그 글귀를 가만히 보다 보면 마음에 깊게 새겨지는 느낌이 들어요. 지금은 매회 그 글귀를 보면서 스스로에게 기도하고, ‘진짜’를 보여주자는 생각으로 무대에 서고 있습니다.”
서른 둘의 한창때(?)지만 이미 일찌감치 품절남의 대열에 들어선 민우혁은 지난 2012년 LPG 멤버 세미와 웨딩마치로 화제가 됐다. 올초에는 건강한 아들을 낳아 한 아이의 아빠가 된 민우혁. 이제야 이야기지만, 막 일을 시작하는 단계의 남자 배우에게 있어 결혼은 주위의 우려를 살 만한 것이었다.
“솔직히 결혼에 대해 반대하시는 분들이 더 많았어요. 실제로 결혼하고 떠난 팬들이 꽤 되고. 하지만 결혼은 제게 잘된 거라고 생각해요. 개인적으로뿐 아니라 일에 있어서도 좋은 방향으로 흘렀죠. 지금 팬들이 진짜 팬이란 생각도 들고요(웃음). 결혼을 안 했다면 아마 지금도 볼링치고 있었을 걸요?”
주위 사람들에게 또, 관객과 팬들에게 ‘한결 같은 배우’가 되고 싶다는 민우혁은 인터뷰를 마무리하며 자신이 생각하는 초심에 대해 진지한 이야기도 들려줬다.
“오랜만에 친구들 만났을 때에도 ‘넌 어떻게 그대로냐’는 말을 들었을 때 되게 좋아요. 외모적인 부분을 말하는 게 아니라 내면적으로 변함 없다는 의미로요. ‘내가 날 잘 지키고 있구나’란 생각에 뿌듯합니다. 앞으로도 신인 때의 마음, 지금의 마음을 잊지 않고 초심을 기억하고 싶어요.”
[뉴스핌 Newspim] 글 장윤원 기자(yunwon@newspim.com)·사진 이형석 기자(leehs@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