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개사 항소심과 동떨어진 결정…5년간 신규사업진출 불가
금융투자업계 안팎에선 삼성증권의 이 같은 결정을 두고 쉽게 납득할 수 없다는 반응이다. 법원 판결에 따른 제약이지만 향후 경영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안에 대해 추가 반론 없이 지나치게 소극적으로 대응했다는 것. 비슷한 처지의 여타 증권사와 비교하더라도 확연한 온도차이를 보인다.
일각에선 삼성이 현재 구축하고 있는 자산관리(WM) 영역에서 지나치게 안정적 성장만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냐는 관측도 있다.
◆ 5개사 "예측 불가능한 시장 변화, 3심도 불사할 것"
지난달 1일 서울남부지방법원은 채권수익률을 사전 합의해 한국거래소에 제출한 혐의를 인정, 대우증권과 유안타증권, NH투자증권, 한국투자증권, 현대증권에 대해 각각 5000만원, 삼성증권에 대해 3000만원의 벌금형을 선고했다.
자본시장법에 따르면 공정거래법상 증권사가 벌금형을 선고받은 경우 해당 증권사는 3년간 신규 금융투자사업자 인가를 취득하지 못하고 5년간 대주주로서 다른 금융투자업자에 대한 인수 자격을 상실하게 된다.
삼성증권을 제외한 5개사는 즉각 항소 절차를 진행했다. 소수의 실무자가 벌인 '과실' 대비 지나친 처벌이라는 주장이다. 이번 사안의 경우 실무자가 위법성을 인지하지 못했다는 점이 감안돼 처벌되지 않았고 부당한 이득을 목적으로 한 것이 아닌 만큼 증권사의 관리 감독 책임을 묻기 어렵다는 반론도 가능하다.
더구나 당장 M&A 등에 족쇄가 채워질 경우 사업 영역 확장이나 이익 창출을 위한 시도에 치명적인 타격이 될 수 있어 시간벌기용으로라도 항소의 필요성은 절실하다. 대부분 증권사들은 2심은 물론 3심까지도 불사하겠다는 입장이다.
A증권사 사장은 "향후 5년간 어떤 일이 일어날지 예상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이번 결정은 상당한 충격"이라며 "M&A 등 향후 신규 사업 진출에 차질이 생길 수 있다는 현실적 부분을 감안한다면 이같은 처벌은 과한 측면이 있다"고 아쉬워했다.
이어 "향후 핀테크나 인터넷 은행 등 사업 영역을 확장하는 데 있어 제약이 생길 수 있어 일단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서라도 끝까지 가볼 생각"이라고 덧붙였다.
B증권사 임원은 "증권사에서 이런 사례가 발생하는 경우 관리 감독에 대한 책임이 논란이 되는데 그 기준이 없어 다툼의 여지가 있다"며 "실무자가 위법성에 대한 의식 없이 일어난 일로 회사가 5년간 새로운 사업에 차질을 빚는다는 것은 너무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번 처벌 대상에 오른 증권사들이 모두 대형사들인데 시장 환경의 변화를 예측할 수 없는 상황에서 벌금형이 그대로 확정된다면 증권업계로서도 영향이 없을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C증권사 소송 담당 관계자도 "여러 사안이 있지만 항소에 나서는 기본적인 이유는 충분히 무죄를 주장할 만하다는 자체적 판단이 있기 때문"이라며 "나름대로 정해진 가이드라인을 따랐다는 정황 등을 감안한다면 억울한 측면이 있기 때문에 항소할 만한 사안으로 본다"고 설명했다.
◆ 삼성證, 잡음 내지 말자는 자체 판단?
하지만 유독 삼성증권만이 여타 증권사와는 달리 1심 판결을 그대로 인정했다. 삼성은 이번 판결에서 타사 대비 2000만원 적은 벌금형을 받았다.
그러나 이는 담합 기간에 따른 차이에 따른 벌금 규모의 차이일 뿐 "수천억대를 주무르는 금융투자회사에서 2000만원 차이에 의미를 둔다는 것이 이해가 되느냐"는 지적이다.
C증권사 관계자는 "앞으로 사업에 미칠 영향을 감안한다면 삼성증권이 해보지도 않고 포기하는 것은 그들만의 그룹 문화로밖에 이해가 안 된다"며 "삼성은 그룹이 있다보니 소송 등에 자주 언급되며 굳이 잡음을 내는 것을 할 필요가 있느냐는 판단에서 그냥 덮은 것 아니겠느냐"고 귀띔했다.
그는 "삼성증권은 새로운 자회사를 설립하지 않을 것이라는 판단으로 항소를 포기한 것 같다"며 "그룹 차원에서야 금융업계 관련한 사업 부문에서 필요할 경우 삼성자산운용이나 삼성생명을 통해 진행할 수 있겠지만 증권만의 고유 사업영역에 대해 발목이 묶인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이같은 결정이 과연 이재용 삼성그룹 부회장의 금융산업 육성 의지와 부합하느냐는 이슈와도 연결짓고 있다. 평소 금융업에 대한 관심이 높은 이 부회장은 금융산업에서도 삼성전자와 같은 일류 기업을 만들겠다는 의지를 피력해왔다.
하지만 금융의 삼성전자를 논하면서 향후 사업 영역 확장의 족쇄가 될 수 있는 사안에 대해 이토록 소극적인 대응을 하는 것은 과도한 눈치보기가 아니냐는 지적도 흘러나온다.
다만 나머지 5개사가 항소에서 모두 패소할 경우 오히려 삼성증권으로선 득이 될 수 있다. 5개사들이 대법원에서도 벌금형을 받게 된다면 5년간 일괄적으로 신규사업 진출에 제한을 받는다. 반면 먼저 매를 맞은 삼성증권은 한발 앞서 M&A 시장에 자유롭게 등장할 수 있다는 셈법도 가능하다.
삼성증권 관계자는 "법원의 판결을 받은 다음날인 6월 4일을 시작으로 5년간 인수 설립 등 신규 사업 진출이 불가능한 규제에 적용되고 있다"고 답했다.
이 관계자는 "벌금의 규모도 타사 대비 적고 항소하더라도 소요되는 노동력 대비 굳이 추진할 필요를 못 느낀 것 같다"며 "회사가 자산관리 분야에 초점을 많이 맞추고 있어 타사 인수시 동화가 힘들 수 있다는 점 등을 감안하더라도 당장 (인수합병과 관련한) 니즈는 없는 것으로 안다"고 설명했다.
[뉴스핌 Newspim] 박민선 기자 (pms0712@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