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T "AIIB, 중국 거부권 포기·투자결정 간소화 등 성공적 모델"
[뉴스핌=배효진 기자] "나 같은 사람을 회원으로 받아주는 클럽에는 가입할 생각이 없다."
미국의 유명 희극배우 그루초 막스는 이런 말을 남기며 클럽에 가입하려는 친구들을 만류하지 않았다. 자신처럼 별로인 사람이 들어갈 수 있는 곳이라면 보나마나 하찮은 조직일 것이라는 의미다.
중국이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창립 계획을 발표한 당시 미국은 그루초 막스와 같은 의견을 쏟아냈다. AIIB가 창립의도와 달리 중국 정부에 휘둘리는 조직으로 전락해 인권침해와 환경파괴만 유발할 것이란 비판이었다.
하지만 이후 상황은 정반대로 역전됐다. 미국의 주요 우방국들이 연이어 AIIB 창립멤버로 가입하고 주도국인 중국이 거부권을 내려놓는 모습을 보이는 등 기존 국제기구들에서 볼 수 없었던 모습이 거듭된 까닭이다.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 양해각서 체결식 <출처=블룸버그통신> |
파이낸셜타임스(FT)는 AIIB가 정식 출범 전부터 서방 국제기구보다 더 훌륭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고 27일(현지시각) 보도했다.
현재 AIIB 창립회원국으로 확정된 국가는 57개국이다. 한국과 인도를 비롯한 아시아 25개국과 유럽 20개국이다. 한국을 비롯, 영국과 프랑스, 호주 등 미국의 주요 우방국들은 자발적으로 AIIB에 참여를 결정했다.
아시아개발은행(ADB) 회원국 67개국에는 못 미치는 수준이지만 향후 추가로 가입을 선언할 국가가 나올 가능성이 높아 ADB 규모 이상의 회원국을 유치할 것으로 전망된다.
예상보다 참가국이 늘어나자 경영을 안정시키기 위해 초기 자본금도 500억달러에서 1000억달러로 증액됐다. ADB와의 자본금 격차는 500억달러에 불과하다.
당초 전망과 달리 참가국과 자본금 규모 면에서 모두 ADB에 실질적인 위협이 되는 수준까지 오른 셈이다.
FT는 무엇보다 혁신적인 지배구조를 AIIB의 강점으로 꼽았다.
주도국인 중국은 창립회원국 유치를 위해 거부권을 내려놓기로 결정했다. 미국이 제기해 온 독점적 지배구조에 대한 우려를 불식시키는 조치다. 미국이 국제통화기금(IMF) 등 국제기구에서 최대주주 지위를 유지하며 거부권을 행사하는 모습과 대조적이다.
인프라 사업에 투자에 필요한 대출 승인이 사무국과 이사회를 거치지 않는 방안이 검토되는 점도 차별된다. 대출을 승인하는 속도를 높여 까다로운 절차를 요구하는 기존 국제기구와 차별화하겠다는 구상이다.
세계은행(WB)은 본부에 상주하는 위원회가 모든 대출을 승인한다. 신문은 "AIIB의 운영방식이 WB보다 덜 엄격해보일 수 있다"면서도 "하지만 WB 이사회는 매년 7000만달러에 이르는 높은 보수를 챙긴다"고 지적했다.
데이비드 달러 세계은행 담당관은 "세계은행은 운영이 느리고 지나치게 위험을 회피하려고 한다"며 "인프라에 대한 투자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꼬집었다.
AIIB가 불러온 주요국의 인프라 투자 전쟁도 순기능으로 평가됐다.
AIIB가 예상 외로 선전하자 ADB 역시 대출능력을 대폭 확대하고 관련 사업에 대한 승인 속도를 높이기로 결정했다. 이어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향후 5년 동안 아시아 지역 인프라 사업에 1100억달러의 통 큰 투자계획을 밝히기도 했다.
FT는 "당장 미국과 일본이 AIIB에 달려갈 일은 없을 것"이라면서도 "AIIB가 운영 효율성을 입증하면 양국이 빠른 시일내에 AIIB 참여를 원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뉴스핌 Newspim] 배효진 기자 (termanter0@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