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들, 피난통로 미흡·민방위 훈련 불참 등…'사무실 안전불감증'
[뉴스핌=추연숙 기자] 지난해 세월호 참사 이후 한국 사회는 안전에 대한 중요성을 깨닫고, 사회 곳곳에서 안전시스템을 개선하기 위한 작업에 매달렸다. 하지만 세월호 참사 1년이 지난 지금, 우리 사회 곳곳에서는 여전히 안전에 무감각한 모습이 발견되기도 한다. 특히 경제활동인구가 하루 중 많은 시간을 보내는 직장의 안전 실태는 어떨까.
세월호 참사를 1주기를 하루 앞둔 15일 우리의 일터는 예고 없이 찾아올 안전 사고에 여전히 취약해 보였다. 기자가 서울 강남의 한 대기업 건물의 안전실태를 점검해 본 결과, 안전을 위협하는 사례들이 발견됐다.
물론 산업현장이 아닌 대기업 사무실은 안전 사고 위험에 상시 노출돼 있지는 않다. 하지만 비상구 확보 등 최소한의 소방안전 기준을 미충족하는 모습에서는 여전한 안전불감증이 엿보였다.
서울 삼성전자 서초사옥 3층 폐쇄된 비상구 연결통로. '통제구역'이라는 표시와 함께 문이 잠겨있다. <사진=추연숙 기자> |
◆ 비상 통로에 '통제'·'관계자외 출입금지'
기자실이 위치한 3층. 하루 최소 30여명, 많게는 100여명이 이 곳에 머물지만, 3층 전체 어디에도 비상 통로가 없다. 초록색 비상구 유도등을 따라가면 하나같이 '통제구역, 다른 출입구로 우회하십시오'라는 안내문이 붙어 있다. 하지만 엘리베이터 외에는 계단 등 외부로 통할 수 있는 출입구가 없었다.
같은 건물 5층 다목적홀도 상황은 비슷했다. 비상 계단으로 통하는 출입문은 '관계자 외 출입금지'라는 문구가 쓰인 채 굳게 닫혀 있었다. 이곳에서는 지난 9일 수 백 여명의 인파가 몰려든 제품 출시행사가 열리기도 했다.
소방당국은 최근 '생명의 문 비상구' 점검 캠페인을 펼치고 있다. 비상구나 통로를 폐쇄하게 되면 화재 시 대형 인명피해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서초당국 관계자는 "비상구에 장애물을 쌓아두거나 비상구 문을 잠그면 안된다"며 "구체적인 도면 등을 봐야 알겠지만, 엘리베이터 외에 외부로 통하는 계단이 없다면 기준에 어긋낫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회사 관계자는 "해당 건물에서 화재사고가 나면, 연결된 건물에서 관리자가 와서 폐쇄된 통로를 열어줄 것"이라고 말했다. 화재가 발생하면 위험을 무릅쓰고 엘리베이터를 타거나 관리자의 손길을 기다려야 하는 셈이다.
지난 9일 갤럭시S6 출시행사 당시 서울 삼성전자 서초사옥 5층 비상문. 비상구 유도등 아래 문에는 '관계자외 출입금지'라는 표시(확대사진 우측 하단)가 적혀있다. <사진=추연숙 기자> |
◆ 민방위 훈련…"나가지 말고 일하라"
일터는 안전 훈련에서도 예외가 됐다. 국민안전처가 전국적으로 실시한 민방공 대피 훈련이 열렸던 지난달 16일, 이 회사는 임직원들에게 훈련에 참여하지 말고 업무에 임할 것을 권고했다.
이날 민방위 훈련은 시내 주요시설과 기반시설이 적의 공습에 노출됐을 때를 가정해 열렸다. 특히 이날은 비상사태 발생을 가정한 대비 훈련이 함께 실시됐다. 국민안전처는 이날 전국 828개 주요 기업도 비상사태 발생을 가정해 훈련을 함께 실시하도록 했다.
하지만 훈련 당일 아침 이 건물에서는 "오늘 오후 2시 훈련 경보가 울리면 지하대피소로 대피해야하지만, 임직원은 건물 외부로 나가지 말고 사무실에서 업무에 임해달라"는 방송이 반복해 흘러나왔다.
그렇다고 모든 기업이 민방위 훈련을 외면하는 것은 아니다. 같은 날 임직원을 대상으로 안전훈련을 실시한 여의도의 한 대기업 관계자는 "지난달 16일 임직원들은 비상 계단을 통해 지하로 대피를 하는 등 위기상황에 대처할 수 있도록 교육을 받았다"고 전했다.
한편 국민안전처는 세월호 참사 1주기를 맞아 4월말까지 ‘국가 안전대진단’ 기간으로 정하고 우리사회 안전 분야에 대한 전국적인 안전점검을 실시하고 있다.
국민안전처 안전점검과 관계자는 "국민안전처의 안전 진단 대상은 시설이나 제도같은 부분이지, 기업은 안전점검 대상이 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뉴스핌 Newspim] 추연숙 기자 (specialkey@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