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통융자 대주업무, "사문화된 제도" VS "52년 고유업무"
- 금융당국 "의결권 공지 증권사 창구 이행여부 실태조사"
[뉴스핌=홍승훈 기자] "전체 주식시장 신용거래 절반에 달하는 2조6000억원이 증권금융의 유통융자로 조달됩니다. 유통융자는 개인 대주거래를 위해 증권금융이 주식의결권을 갖죠. 그런데 현재 대주 잔액은 120억원이 조금 넘는 수준. 한 마디로 주객이 전도된 꼴이죠."
주식 신용거래 시 '유통융자'에 대해 한국증권금융이 투자자를 대신해 의결권을 우선 갖게 되는 현행 제도가 불합리한 게 아니냐는 지적이 증권가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다.(뉴스핌 관련 기사 보기 [단독] "내 주식에 의결권이 없다고?"... 증권금융의 ′갑질′ 1월 14일자)
이들의 논리는 주식 신용거래가 투자자들이 높은 금리(연 이자율 7~12%)를 지불하는 거래인데다 위험발생시 반대매매로 돈을 빌려준 증권사나 증권금융은 사실상 리스크를 떠안지 않는다는 것. 때문에 증권금융이 주주 권한을 가져갈 하등의 이유가 없다고 말한다.
다시말해 배당이나 신주인수권 등과 같은 제반 경제적 권리 외에 핵심적인 권리인 의결권에 대해서도 투자자에게 귀속돼야 한다는 얘기다. 증권사가 자기자금으로 빌려주는 '자기융자'가 의결권을 포함한 모든 권리를 투자자에게 부여하는 것처럼 말이다.
특히 증권금융이 50년 이상 고유업무로 이어온 유통금융을 통한 대주거래 비즈니스가 명분을 상실해가고 있다는 점도 이들 주장에 힘을 싣는다.
증권금융은 투자자들이 유통융자를 이용할 때 투자자 대신 주주명부에 이름을 올린 후 이같은 지위를 활용해 개인투자자 대상으로 대주거래 비즈니스를 해왔다. 대주거래를 활성화해 증시 변동성을 완화하자는 취지에서 금융당국이 2008년 다시 증권금융에 부여해 줬다.
하지만 현재 개인 대주거래 잔액은 120~130억원 수준으로 시장 영향력이 거의 없는 상황. 애초 증권금융이 '양도담보' 형식으로 유통융자에 대한 의결권 권리를 보유하게 한 명분이 소멸된 셈이다.
증권금융에 따르면, 융자담보 주식의 의결권은 대주한 주식의 경우 이를 매수한 제3자가 의결권을 행사하게 하고 나머지 주식 의결권은 증권금융이 보유한다. 하지만 이 의결권을 증금이 행사하는 경우는 잘 없다. 고객이 증권사를 통해 의결권 행사를 요청하는 경우에는 위임장을 발급하는 방식으로 의결권 행사를 지원한다.
◆ 22년 사장됐던 유통금융 대주거래, 증시 변동성 완화 위해 2008년 재개
증권금융의 유통금융 비즈니스는 1963년 1월 첫 시행돼 50년 넘게 이어져 왔다. 위기는 있었다. 대주거래 실적이 저조한 데다 1986년 주식시장이 급등하면서 금융감독당국이 증권시장 수급안정 방안의 일환으로 증권금융의 신규 신용융자를 하지 못하게 한 것. 이후 22년간 관련업무는 사실상 중단됐다.
그러던 것이 2008년 해빙기를 맞는다. 국내 주식시장이 급격한 변동성을 보이자 정부는 투자위험 헤지 수단으로써 개인 대주거래 활성화 방안을 도입했고, 증권금융은 유통금융 비즈니스를 재개할 수 있었다.
당시 금융당국으로선 주식담보와 미수거래 중심의 거래 패턴을 신용거래로 돌려 초단기 투자를 지양하고 투자기간을 좀더 길게 가져가게 하려는 의도도 있었다. 신용거래는 최대 180일까지 가능해 3일내 갚아야 하는 미수거래와는 기간에서 현저한 차이가 있다.
이 같은 취지로 재개된 유통금융은 성장을 거듭하며 전체 주식 신용거래(잔고 5.2조원 수준)의 절반을 웃도는 2.6조원에 달할 정도로 커져왔다. 증권금융으로선 증권사의 자금조달 지원 효과와 함께 관련 비즈니스를 통한 수익도 짭짤하게 낼 수 있었다.
◆ 사라진 명분... 대주거래 성과 없이 개인 의결권만 낭비
문제는 유통금융을 통한 대주거래 재개의 애초 취지가 사라졌다는 점이다. 최근 증권금융의 개인 대주거래 잔액은 120~130억원 수준에 그치고 있다. 유통금융 중단 직전인 지난 1985년 34억원에 비해선 4배 성장했지만, 당시 물가수준과 주식시장 규모를 감안하면 상당한 퇴보다.
이에 대해 증권금융 측은 "개인 대주거래에 대한 홍보도 덜 됐던 데다 파생상품시장이 급성장하는 등 리스크 헤지 전략이 다양화되면서 시장이 활성화되지 못했다"고 인정했다.
결국 관련업무를 사실상 독점하는 증권금융이 사장화됐던 유통금융 대주거래 서비스를 증시 변동성 완화 명분으로 재개했지만, 성과물이 없이 개인 의결권만 낭비하는 결과를 초래한 결과라는 지적이다.
증권 유관기관 한 임원은 "증권사들에 대한 안정적인 자금공급이라는 증권금융 설립 목적에 따라 유통금융 비즈니스는 지속되는 것이 맞다"면서도 "다만 사문화된 제도와 업무규정을 근거로 투자자들의 의결권을 대신 갖는 현 시스템은 개선이 필요한 부분"이라고 지적했다.
최근 의결권 행사에 제한을 받았던 증시 한 투자자는 "주식시장에서 우선주를 안 사고 보통주를 산다는 것은 당연히 의결권을 포함한 주식에 대한 모든 권리를 행사하겠다는 의미"라며 "이를 두고 신용거래 투자자는 의결권이 아닌 시세차익이 목적이라고 증권사나 유관기관이 예단해 투자자 의결권에 무심한 행태를 보이는 것은 적절치 못하다"고 꼬집었다.
◆ 뒤늦게 실태조사 나선 금융당국 "증권 창구지도 등 개선책 마련할 것"
이 쟁점에 대한 이해가 낮았던 업계와 금융당국은 최근 문제점을 인식하고 관련제도 개선에 나섰다.
일단 금융감독원은 증권금융, 금융투자협회 등과 함께 주식 신용거래시 관행적으로 이뤄진 고객 의결권 유무에 대한 공지의무 등의 프로세스를 면밀히 파악해 문제점을 개선하겠다는 입장이다. 주식 신용거래시 융자의 종류(유통금융과 자기금융)를 증권사 임의대로 정하고 이를 고객에 제대로 공지하지 않는 공급자 중심의 관행에 철퇴를 내리겠다는 것이다.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지금까진 신용거래가 시세차익을 위한 레버리지 차원의 의미가 커 감독 당국도 사안을 세부적으로 파악하지 못했던 게 사실"이라며 "문제 제기가 된만큼 전체 증권사를 대상으로 전수, 실태조사를 서둘러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한국증권금융 역시 기존의 수동적인 자세를 버리고 고객의 의결권이 적절히 행사될 수 있도록 거래 증권사의 약관 이행 현황을 파악해 적극 대응하겠다고 답했다. 다만 유통융자시 자동적으로 넘겨받는 주주로서의 권한, 즉 의결권 보유에 대해선 "법과 업무 규정에 근거한 것인만큼 우리가 판단할 부분이 아니다"고 선을 그었다.
이에 대해 증권업계 다른 관계자는 "신용거래 절반에 달하는 유통금융 잔액을 감안할 때 이에 대한 의결권을 고객에게 일괄 넘겨준다면 상장사들의 반발도 사실 만만찮을 것"이라며 "특히 경영권 분쟁이 있거나 의결권이 예민하게 작용하는 기업들로선 반가운 일이 아닐 것"이라고 전해오기도 했다.
민병두 의원실 한 관계자는 "유통금융 융자대출시 증권사와 증권금융간의 유착이 있는지, 의결권 행사관련 증권사에서 고객에 대한 설명의무를 제대로 이행했는지, 유통금융 융자담보 주식의 양도담보 제공이 적법한 지 여부 등에 대해 꼼꼼하게 실태조사를 해야한다"고 지적했다.
한편 증권금융에 따르면 유통융자를 이용한 투자자들의 의결권 행사 요청 건수는 지난 4년동안 총 69건이었다. 주로 경영권 분쟁중인 기업들에 대한 의결권 요청이 대부분이었다. 다만 증권금융과 유통금융 비즈니스를 하는 총 22개 증권사 중 9개사는 지난 4년간 단 한차례도 의결권 요청을 하지 않았다.
[뉴스핌 Newspim] 홍승훈 기자 (deerbear@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