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자 보상 난항 예상...텔레뱅킹 근본 대책 나와야
[뉴스핌=노희준 기자] 단위농협의 텔레뱅킹 금융사고가 심상치 않다. 경찰 첫 번째 수사에 이어 금융당국의 검사에서도 원인이 드러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 재수사가 진행 중이지만, 금융당국도 경찰만 바라보는 처지가 됐다. 원인 규명에 실패할 경우 피해자 보상 처리도 난항을 겪을 전망이다.
<자료=농협중앙회 국회 텔레뱅킹 인출 관련 현안보고서, 금융감독원> |
18일 금융당국에 따르면, 금감원은 최근 단위농협에서 주인도 모르게 수십 차례에 걸쳐 텔레뱅킹으로 1억2000만원이 인출된 금융사기에 대한 검사를 지난 12일로 마무리했다. 지난달 26일 착수해 약 3주(13일 영업일)를 검사한 것이다.
금감원은 상호금융검사국과 IT정보보호단, 외부 전문가인 금융보안연구원까지 동원해 농협중앙회에 인력을 대거 투입했다. 검사기간도 한 차례 연장(5일→12일)하면서 검사에 의욕을 보였다. 하지만 당국차원에서 짚을 수 있는 부분에서는 이렇다 할 구멍을 찾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금감원 관계자는 "현재 검사 결과를 정리 중이지만, 일단 농협 전산시스템의 외부 해킹 가능성, 내부직원의 고객정보 유출 여부 등에서는 문제의 흔적은 발견되지 않았다"며 "아직 경찰수사가 진행 중이라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
앞서 지난 5일 먼저 철수한 상호금융검사국 인력도 일반적인 내부통제 시스템에서 딱 부러지는 문제는 찾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농협이 FDS(이상거래탐지시스템)를 구축하는 도중에 벌어진 사고라 내부통제 미비를 무턱대고 지적하기 힘든 측면도 있다는 게 금감원 설명이다.
금융당국이 원인을 규명하지 못하고 사실상 경찰 수사에만 의존하는 속수무책의 상황에 이르자 자칫 이번 금융사기가 미궁으로 빠질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이미 신종금융사기 수법 가능성이 제기된 상태에다 피해자 과실도 아직 잡힌 게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금융당국 차원의 사건 원인규명과 책임소재 가리기가 난관에 부딪히자 피해자 보상 문제도 제대로 처리될 수 있을지 의구심이 생기고 있다. 김정식 농협상호금융 대표는 이번 사건과 관련, 국회에 출석해 "피해 원인이 밝혀지지 않으면 기존 유사사례를 적용해 처리할 계획"이라고 말한 바 있다.
금융기관은 전자금융거래법에 따라 접근 매체의 위조나 변조로 발생한 사고, 계약체결이나 거래지시의 전자적 전송이나 처리 과정에서 발생한 사고 등으로 이용자에게 손해가 발생한 경우 그 손해를 배상할 책임을 져야 한다. 다만, 피해자의 고의나 중과실이 있으면 책임을 제한이나 면제받을 수 있다.
문제는 중과실의 해석과 적용에 논란이 많아 피해금액을 100% 받는 경우는 거의 없다는 설명이다. 현재 이와 관련한 대법원 판례 자체가 "금융사고의 구체적인 경위, 위조 수법 내용 및 수법에 대한 일반인의 인식 정도, 거래 이용자의 직업 및 금융거래 이용경력 기타 제반 사정을 고려해 판단할 것"이라는 다소 공허한 수준이라는 지적이다.
이 때문에 금융당국이 공인인증서 과정 등이 없어 보안 사각지대에 있던 텔레뱅킹에 대한 보다 강화된 대책을 제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크다. 최근 농협 텔레뱅킹 사고 이후 이체한도 축소와 유명무실해진 SMS인증절차, 사전 전화번호 등록제, 거래내역 통지 등의 방안을 되살리라고 이체거래를 하는 금융권에 지시했지만,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된다.
금융권 관계자는 "새로운 대책은 아니고 과거에 이미 시행했던 것"이라며 "보안카드를 스마트폰에 카메라로 찍어서 휴대하지 말고 아예 OTP(일회용비밀번호생성기)를 쓰거나 이용하지 않는 텔레뱅킹은 정리하는 등 소비자 자체적인 노력부터 할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으로 텔레뱅킹 등록자는 4088만명, 실제 이용 고객은 1184만명에 이른다. 하지만 농협, 우리은행 등에서 텔레뱅킹으로 피해를 봤다는 사례가 속속 등장하면서 인터넷 상에서는 텔레뱅킹 해지 움직임까지 일고 있다.
금감원 관계자는 "경찰이 피해자 휴대폰을 포함해 중국발 IP에 대한 역추적을 하고 발신번호 변작 등에 대해 수사를 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경찰 수사 결과를 지켜보면서 추가 공조할 사항이 있으면 할 것"이라고 말했다.
[뉴스핌 Newspim] 노희준 기자 (gurazip@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