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핌=글 장주연 기자·사진 이형석 기자] “그럼 누가 있어요?” 앞서 뉴스핌과 인터뷰에 윤제균 감독이 ‘왜, 덕수가 황정민이어야 했느냐’는 질문에 대답 대신 내놓은 반문이다. 대한민국 배우 중 20대부터 70대까지 연기할 수 있는 배우가 황정민 말고는 없다는 확신이 (촬영 전에도 개봉 후에도)윤 감독에게는 있었다. 물론 영화를 본 관객이라면 그의 말에 이견을 달지 않을 거다. 영화를 보면서 다른 배우가 떠오를 리도, 다른 배우를 생각할 필요도 없을 테니까. 프레임 속 황정민(44)은 덕수 그 자체였기에, 감독의 말대로 덕수는 황정민이어야만 했다.
윤제균 감독이 5년 만에 선을 보인 신작 ‘국제시장’(제공·배급 CJ엔터테인먼트, 제작 ㈜JK필름)이 최근 베일을 벗었다. 영화는 평생 자신을 위해서가 아닌, 오직 가족을 위해 굳세게 살아온 우리 아버지들의 이야기를 그렸다. 극중 황정민은 아버지 덕수를 연기, 20대부터 70대까지 인물의 인생을 완벽하게 재현했다.
황정민이 윤 감독의 손을 잡고 덕수로 태어나기까지는 사실 그리 복잡한 과정이나 특별한 에피소드가 없다. 제작자로 인연을 맺은 윤 감독이 어느 날 전화를 걸어 영화를 함께 하자고 제안했고 황정민은 딱 하나, 무슨 이야기냐고 물었다. 수화기 너머로 돌아온 답변은 아버지 이야기. 그는 망설일 것도 없이 그 자리에서 출연을 확답했다.
“제일 큰 이유였죠. 아버지 이야기라는 말에 ‘아, 해야겠다’고 결심한 거예요. 그렇다고 특별히 아버지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기보다는 아버지 이야기를 하면 잘할 수 있을 듯했죠. 그간 아버지 이야기는 별로 없었잖아요. 사실 잘 이야기를 안 하고 꺼리지만, 건드리기만 하면 큰 파장을 불러일으키는 게 바로 아버지 이야기죠. 물론 나중에 시나리오를 읽었더니 아주 좋더라고요. 눈물이 흘렀죠(웃음).”
아버지 이야기라는 이유만으로 흔쾌히 출연을 결정했지만, 시나리오에는 다소 놀라운(?) 설정이 있었다. 앞서 언급했듯, 사십 대 중반 황정민이 20대 청년부터 70대 노인까지 연기해야 했던 것. 하지만 그는 “어린 시절이지만 저 역시 같이 울고 웃던 시기라 한 인물을 온전히 살아간다는 게 부담되진 않았다”고 말했다. 오히려 한 사람의 인생을 살 수 있었던 것이 행운이자 행복이라며 웃었다.
“한 작품에서 다양한 세대를 연기한다는 게 평생 있을까 말까 한 일이죠. 인연이라 생각했고 행복했어요. 물론 70대를 연기할 때는 조금 힘들었고 고민도 많았죠. 특히 영화의 끝이 덕수의 70대, 즉 현재잖아요. 그런데 반대로 70대만 정확하게 성립되면 그냥 갈 수 있겠다 싶었죠. 예전에 뮤지컬 ‘맨 오브 라만차’에서 노인 역할을 한 적이 있어요. 다행히 그때 자료들을 찍어놓은 게 있더라고요. 그때 한 인터뷰, 손짓 같은 디테일한 장면들을 적어 놓은 자료들이 도움이 많이 됐죠.”
신경을 기울인 게 혹 아들보다 아버지의 입장에 더 감정이 기울어서가 아니냐는 질문에는 주저 없이 고개를 저었다. 그저 어떨 때는 가족을 위해 모든 짐을 짊어진 아버지였고, 어떨 때는 철부지 아들이었노라고 했다. 촬영하면서 또 영화를 보면서 그는 아버지와 아들 사이를 수없이 오갔다.
“여느 관객처럼 어떤 장면에선 아버지의 감정에, 또 어떤 장면에서는 아들 감정에 몰입했죠. 개인적으로는 처음으로 제 아들과 볼 수 있는 영화라 의미도 있었고요. 아버지까지 처음 삼 대가 본 거죠. 아버지는 언제나처럼 특별한 말씀은 없으셨어요. 아이는 어리니까 지겨워겠죠(웃음). 그래도 아빠 영화를 함께 봤다는 건 분명 좋은 기억으로 남을 거라 믿어요. 저 역시 아버지와 함께한 추억이 그렇게 남아있고요. 전 그래요, ‘국제시장’을 통해 젊은 친구들이 역사를 알았으면 좋겠단 생각보다 ‘우리 부모님이 보시면 좋아하겠다’고 느끼면 성공한 게 아닌가 싶죠. 그렇게 몇 마디라도 대화를 나눌 수 있다면 더없이 행복할 듯합니다.”
황정민은 요즘 ‘국제시장’ 홍보 일정 외에도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후배 대원들의 시신 수습을 위해 목숨을 건 원정을 떠난 엄홍길 대장의 이야기 ‘히말라야’(가제) 촬영이 한창이다. 인터뷰가 끝날 무렵 밖은 이미 어두웠지만, 그의 하루는 끝이 아니었다. 집으로 돌아가 짐을 챙긴 후 다시 촬영에 합류해야 했다. 바쁜 일정 탓에 눈은 벌겋게 충혈됐지만, 개봉을 앞둔 설렘과 새 작품에 대한 기대 덕인지 그의 입가에는 연신 미소가 번졌다.
“‘히말라야’의 경우 지금 12회차 정도 찍었어요. 개봉은 내년 여름을 목표로 하고 있어요. 현재는 양주랑 영월을 오가면서 촬영하고 있고요. 소스들은 촬영팀에서 이미 찍어왔고, 올라가는 과정은 내년 3월 네팔 가서 찍을 예정이죠. 그래서 요즘 산악훈련부터 고압훈련까지 하고 있고요. 근데 어쩌다 보니 정우, (정)유미, (라)미란이 다 다 대학 동문이라 재밌게 찍고 있어요. 아마 이 작품도 재밌을 거예요. 우선 ‘국제시장’ 많이 사랑해주시고 ‘히말라야’도 많은 관심 부탁합니다(웃음).”
“특수 분장 퀄리티보다는 연기가 중요하다고 생각했죠.” 한 배우가 20대부터 70대까지 연기하다 보니 세월의 흐름을 담아낼 CG와 특수 분장은 필수였다. 이에 국제시장 제작진은 에이지 리덕션 CG로 생기 넘치는 젊은 시절의 모습을 복원했고 특수 분장으로 노인 얼굴을 만들어 냈다. 특히 특수 분장의 경우 ‘007 스카이폴’의 스웨덴 특수 분장팀을 섭외하는 노력을 기울였다. 얇은 본 한 개를 떠 얼굴에 붙이는 기존 방식과 달리 일곱 개의 얇은 본을 떠 노인의 얼굴 질감을 만들었다. 덕분에 근육의 움직임과 표정을 더욱 자연스럽게 구현했다. 물론 제작진이 특수 분장에 신경을 쏟은 만큼 황정민은 디테일한 연기를 위해 남다른 노력을 기울였다. “부산 국제시장에서 이틀 정도 촬영했어요. 근데 할아버지 분장을 하고 있으니까 아무도 못 알아보더라고요. 오죽했으면 촬영하려고 가게에 앉아 대기하는데 지나가는 사람들이 ‘이거 뭐 촬영 하는 거예요? 배우 누구 오는 거예요?’ 묻더라니까요(웃음). 이번에는 또 시간도 확실히 줄였어요. 두 시간 반 세 시간 정도 걸렸죠. 개인적으로 이 부분에 신경을 써달라고 했어요. 물론 퀼리티도 중요하지만, 분장한다고 진이 다 빠지면 정작 촬영할 때는 힘이 없는 거예요. 그리고 솔직히 전문가가 아닌 이상 검버섯 하나까지 신경을 기울이는 사람은 없죠. 대신 연기적인 부분에 신경을 썼어요. 등이 굽은 정도, 담배 피울 때 손 떨림, 걸음걸이, 말투 등이 더 중요했죠. 그게 정확할 때 진짜 노인 같아 보이고요. 얼굴만 노인처럼 해서 될 게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
[뉴스핌 Newspim] 글 장주연 기자 (jjy333jjy@newspim.com)·사진 이형석 기자 (leehs@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