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거비 항목이 핵심 변수…임대료·OER '0 처리' 논란
JP모간 "현재 수치에 하방 편향…향후 되돌림 가능성"
[서울=뉴스핌] 고인원 기자= 미국의 11월 소비자물가지수(CPI)가 시장 예상보다 큰 폭으로 둔화했지만, 월가에서는 해당 지표를 그대로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경계의 목소리가 확산되고 있다. 최근 연방정부 셧다운으로 물가 데이터 수집에 공백이 발생하면서 통계가 왜곡됐을 가능성이 크다는 지적이다.
미 노동통계국(BLS)에 따르면 11월 미국 CPI는 전년 동월 대비 2.7% 상승했다. 이는 블룸버그 설문에서 집계된 시장 예상치 3.1%와 9월 상승률 3.0%를 모두 크게 밑도는 수준이다. 변동성이 큰 식료품과 에너지를 제외한 근원 CPI도 2.6%로, 시장 예상치(3.0%)를 하회했다.

◆ 주거비 항목이 핵심 변수…임대료·OER '0 처리' 논란
그러나 파이낸셜타임스(FT)와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이번 CPI 보고서가 최근 정부 셧다운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았다는 점에 주목했다. 연방정부 셧다운으로 약 6주간 물가 데이터 수집이 중단되면서, BLS는 10월 CPI 발표를 아예 취소했고 11월 지표 역시 실제 조사값이 아닌 추정치를 상당 부분 활용할 수밖에 없었다.
KPMG US의 다이앤 스웡크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FT에 "이번 수치는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기보다는 일정 부분 걸러서 봐야 한다"며 "올라야 할 항목은 내려가고, 내려가야 할 항목은 오르는 등 우리가 실제로 관측해온 가격 흐름과 잘 맞지 않는다"고 말했다.
실제 월가에서는 주거비 항목이 대표적인 왜곡 요인으로 지목된다. CPI에서 약 3분의 1을 차지하는 주거비(임대료·주택소유자 등가임차료)의 경우, 데이터 수집이 불가능했던 기간 동안 상승률이 사실상 '0'으로 처리됐을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다. 여기에 11월 말 조사 재개 시점이 블랙프라이데이 할인 기간과 겹치면서 일부 재화 가격이 과도하게 낮게 반영됐을 가능성도 제기됐다.
JP모간의 수석 이코노미스트 마이클 핸슨은 FT에 "예상보다 낮은 CPI 수치는 BLS가 10월에 수집하지 못한 여러 가격을 고정값으로 처리했을 가능성을 시사한다"며 "이는 현재 수치에 상당한 하방 편향을 만들었고, 향후 몇 달간 정상적인 가격 수집이 재개되면 되돌려질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시장 반응도 차분했다. 통상 이 정도 폭의 물가 둔화는 금융시장을 크게 흔들 수 있지만, 투자자들은 이번 데이터를 신중하게 해석했다. 미 국채 금리는 단기물 중심으로 한때 하락했으나 곧 낙폭의 절반가량을 되돌렸고, 주식시장은 오히려 상승했다. S&P500 지수는 0.8%, 나스닥 지수는 1.4% 올랐다.
바클레이즈의 미국 인플레이션 전략 책임자인 존 힐은 FT에 "시장은 이 데이터를 신경 쓰지 않는다"며 "데이터가 직관적으로 납득되지 않고, BLS가 어떤 방식으로 판단을 내렸는지에 대한 설명도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수치가 예상과 너무 크게 어긋난 데다 시장이 이를 문자 그대로 받아들이기 어려워 투자자들이 큰 베팅을 꺼리고 있다"고 말했다.
정치권의 해석은 엇갈렸다. 백악관은 이번 CPI 발표를 두고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정책이 인플레이션 억제에 성과를 내고 있다는 근거로 적극 활용했다. 케빈 해싯 백악관 국가경제위원회(NEC) 위원장은 "아직 승리를 선언할 단계는 아니지만, 놀라울 정도로 좋은 CPI 보고서"라고 평가했다. 반면 월가 이코노미스트들은 통계의 기술적 한계를 감안할 필요가 있다고 선을 그었다.
이번 CPI는 연준의 통화정책 논의에도 변수로 작용할 전망이다. 연준은 지난주 기준금리를 3년 만의 최저 수준으로 낮췄지만, 정책위원들 사이에서는 인플레이션 재확산 위험과 노동시장 둔화 중 어느 쪽을 더 경계해야 할지를 두고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BLS가 별도로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11월 미국 실업률은 4년 만의 최고치로 상승했다.
다만 WSJ는 "연준이 다음 회의 전에 받아보게 될 추가 인플레이션 지표가 정책 판단에 훨씬 더 중요할 것"이라고 전했다. 연준이 중시하는 개인소비지출(PCE) 물가지표가 CPI보다 정책 판단에 더 명확한 신호를 줄 수 있다는 분석이다.
◆ 닉 티미라오스 "주거비 가정 자체가 문제"…통계 왜곡 논란 확산
이와 관련해 WSJ의 '연준 해설가(Fed whisperer)'로 불리는 닉 티미라오스 기자는 자신의 엑스(X) 계정을 통해 인플레이션인사이츠의 오마르 샤리프 설립자의 분석을 소개하며 통계 왜곡 논란에 힘을 실었다.
샤리프는 11월 CPI 결과에 대해 "이건 전적으로 용납할 수 없는 일(totally inexcusable)"이라며 "BLS가 10월 임대료와 주택소유자 등가임차료(OER)를 사실상 '0'으로 가정해버렸다"고 지적했다.
그는 "임대료 상승률의 2개월 평균이 0.06%, OER이 0.135%가 나오려면 10월 수치를 0으로 처리하는 수밖에 없다"며 "이런 판단이 합리적일 수 있는 경우는 전혀 없는데, 현실에서는 그렇게 됐다"고 비판했다.
샤리프는 특히 "가장 큰 문제는 10월 임대료와 OER을 0으로 처리한 점"이라며 "BLS가 별도의 조정을 하지 않는 한, 이 효과는 내년 4월까지 전년 대비 물가 상승률을 인위적으로 낮추는 결과로 이어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월가에서는 이번 CPI를 두고 "수치 자체보다 통계가 만들어진 과정이 더 중요해진 보고서"라는 평가도 나온다. 연준의 정책 판단 역시 단일 지표가 아닌, 향후 발표될 추가 물가·고용 데이터에 더 큰 비중을 둘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다.

koinwon@newspim.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