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중에도 견딜 수 없이 미쳐버릴 것 같은 날들. 아내의 속수무책인 방황에 대해 이러지도 저러지도, 그 어떤 심혈의 노력도, 지옥 같은 몸부림도 빙판을 스치는 돌처럼 미끄러져가기만 하는 날들. 그냥 끝내버리든 옥상에 올라 뛰어내리든 동반 자살까지 해버리고 싶은 날들. 마지막 남은 인내심마저 고갈되어 총에 맞은 새처럼 수직으로 고꾸라지던 시간. 내 방황의 불에도 휘발유가 부어져 밤늦도록 술을 푸며 고 위험도로 치닫던 정신. 꼬리에 불을 단 쥐새끼가 들판을 미친듯 내질러 새까맣게 타들어간 몸뚱이를 어디에 처박고 객사할지 모를 위험천만. 어디로 흐를지 암담하기만 한 세월의 물살보다 더 빠른 속도로 거침없이 흐르기에 세상의 풍경과 고통 따위가 우습거나 약해 보이던 내 마음의 격류. 귀가 도중 아무데나 내려 무작정 걷던 거리들, 시장들. 새벽까지 불을 밝힌 남대문, 동대문 시장. 이른 새벽에 물건을 떼러 줄을 선 사람들. 추운 몸을 녹일 포장마차. 뜨거운 오뎅 국물. 내 얼굴보다 밝아 보이는 시장 사람들 얼굴. 시의 절망 속에 실의에 빠져 있다가 어쩔 수 없는 숙명인 듯 내 가슴속 창고에서 몽유병자의 발걸음처럼 쑥쑥 걸어 나오는 것들. 그것들에 의지해 겨우겨우 지탱하던 혹독한 나날들...
안개의 나라
해명을 받아내야겠어
눈 앞을 가린 안개가 자욱해진다
내 슬픈 눈빛은 안개의 벽을 뚫지 못한다
안개는 부글부글 끓어오르며,
풍경들을 지우며
내 눈을 향해 몰려온다
해.명.을. 받.아.내.고.야. 말.겠.어.
안개에 채워진 내 눈은 백내장이 된 듯
그녀와 그녀의 공범인 生이 우유처럼 보이고
해명 자체가 우스운 안개의 나라에서
앞으로 몇 십 년이나 똑같은 질문을 하며 살다가
안개가 되고 말 거라고 느끼는 순간
이미 더운 입김이 몸 안에 퍽퍽 퍼지고 있다
하얀 솜처럼 만져지는 내 몸
왼손에 감긴 하얀 오른손
용서는 나의 몫이 아니었다. 안개뿐인 나라에
안개의 질서가 있으며, 그녀 또한
안개에서 태어난 안개이므로 안개의 자유를
갖고 있으며 설혹 그 자유가 내 가슴을
면도칼로 긋고 달아난다해도
안개를 사랑한 이상 나는
아픔에 도취할 자유밖에 없으며
축축한 대지에 뿌리내리기로 한 이상
아픔의 질병을 안고 살아야 한다
안개는 너무 아름다워
껴안는 순간 불길하고 미혹적인 미궁으로
언제 또 나를 빠뜨릴지 모를, 여자의, 생의
치명적인 매혹일지 모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