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경·내용 유사...정치적 리더십·추진력은 차이
최경환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사진=기획재정부 제공) |
최 부총리는 지난 24일 경제정책방향을 발표하면서 “그간 경험해보지 못한 ‘저성장-저물가-경상수지 과다흑자’ 현상이 나타나면서 우리 경제에 ‘축소균형’의 경고음이 커지고 있다”며 “여기에 인구둔화, 가계부채 등 잠재적 위험요인들이 눈 앞의 문제로 닥쳐오면서 자칫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을 답습하는 것은 아닌지 우려되는 상황”이라고 강조했다.
부총리로 내정된 후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에 빗대 우리 경제의 상황을 여러 차례 이야기한 연장선상에서 벗어나지 않은 발언이다.
그는 “새로운 전기가 없이 그대로 갔다가는 자칫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을 답습하지 않는가 하는 경계심을 갖게 된다"며 “우리 경제는 저성장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한 가운데 최근에는 미약한 회복세마저 주춤하면서 경기 회복의 불씨가 꺼지는 것 아닌가 우려마저 제기되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최 부총리가 내놓은 경제정책은 상당부분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을 답습하지 않으려는 노력이라고 볼 수 있는 지점이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사진: 뉴시스 제공) |
◆ 잃어버린 20년에 대한 우려
최 부총리뿐 아니라 우리 경제가 일본이 걸어간 길과 유사한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경고는 몇년 전부터 있있다. 일본만큼 침체가 깊지는 않지만 잠재성장률에 미치지 못하는 성장이 계속되고 있는데다 고령화와 인구감소로 생산성이 저하될 우려가 큰 상황이다.
생산가능인구(15∼64세)가 줄어들면 '소비 축소→내수시장 후퇴→설비투자 감소→고용 감소→성장률 둔화→물가 하락’이라는 악순환 고리를 만든다. 바로 일본이 고령화로 인한 디플레이션의 극단적인 예를 보여줬다.
통계청에 따르면 우리나라 생산가능인구는 2010년 100을 기준으로 2040년에는 80.2 수준까지 떨어질 전망이다. 오는 2016년을 기점으로 우리나라의 생산가능인구가 꺾이는 것으로 나와있다.
이부형 현대경제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한국경제가 세계 최고 경쟁력을 자랑하던 일본의 몰락을 되풀이 하지 않기 위해서는 여전히 견실하고 빠른 성장세를 바탕으로 일자리 창출과 소득 수준 향상은 물론 성장을 통한 재정 건전성 제고가 가장 시급한 과제”라고 지적했다.
◆ 최경환노믹스=한국판 아베노믹스?
이런 배경 때문인지 최경환노믹스는 아베노믹스와 여러 측면에서 비슷하다.
최경환 경제팀이 내놓은 경제정책방향은 내수활성화·민생안정·경제혁신을 세 축으로 한다. 20년 가까이 이어져 온 디플레이션과 엔고현상에서 벗어나기 위한 아베노믹스 역시 통화·재정·구조개혁 3개축으로 이뤄져있다.
최 부총리는 올해 추가경정예산(추경)을 편성하지 않되 이에 버금가는 41조원의 재정·금융을 투입하기로 했다. 그리고 내년에 확장적 예산편성을 하겠다고 예고했다. 아베 총리는 취임 직후 13조1000억엔 규모의 추가경정예산(추경)을 편성하는 등 막대한 재정투입을 통해 경기부양을 꾀했다.
이외에도 최 부총리는 ▲ 기업소득을 가계소득으로 유도하는 세제 ▲ 공공기관 개혁 ▲ 서비스업 육성 ▲ 규제개혁 등 구조적 변화를 추구하고 있다. 아베노믹스의 ‘세 번째 화살’인 성장전략에도 전력·의료·기반시설 정비 등 공공사업 부문의 규제 개혁과 민간투자 활성화 계획이 담겼다.
향후 최경환노믹스가 아베노믹스와 얼마나 더 닮아갈 지 여부는 통화정책의 추가 완화에 달렸다. 일본 중앙은행(BOJ)은 기준금리를 0~0.1% 범위에서 유지하는 가운데 본원통화를 연간 60조~70조엔씩 늘리는 자산매입을 실시하고 있다.
최경환 부총리도 “기준금리 결정은 한국은행의 고유권한”이라면서도 금리인하에 대한 찬성 의견을 수 차례 시사한 바 있다. 최 부총리는 후보자 시절 인사청문회에서 “추경, 금리인하, 규제완화에 대해선 대체로 동의한다”고 밝혔다.
이준협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내수 디플레이션 우려가 커지고 있는 지금, 소비진작과 고용확대를 위해 선제적으로 재정과 통화를 확대하는 정책조합이 꼭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 최경환노믹스도 아베노믹스처럼 성공?
아베노믹스는 실제로 일본을 디플레이션의 늪에서 꺼내는데 일단 긍정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일본의 실질 국내총생산(GDP)는 2012년 0.7%에서 2013년 2.3%까지 올라섰다. 올해 일본의 경제성장률과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각각 1.2%씩으로 예상되고 있다.
그렇다면 최경환노믹스도 아베노믹스와 같은 효과를 기대할 수 있을까.
김두언 하나대투증권 이코노미스트는 “최경환 경제대책에서 가장 중요한 점은 ‘향후 효과가 나타날 때까지’ 즉, 시리즈의 서막이라는 점”이라며 “경제는 심리라는 연장선상에서 보면 하반기 국내 경기의 우호적인 분위기 조성은 성공”이라고 평가했다.
반면 익명을 요구한 한 대학 경제학과 교수는 "정치적 리더십의 차이를 감안해야한다"며 부정적으로 봤다. 아베 총리는 일본 국민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으며 정책을 추진한 반면 박근혜 정부의 최근 지지율은 하락하고 있어 추진력에서 차이가 있다는 지적이다.
최경환노믹스의 핵심 정책 중 하나인 기업의 사내유보금 과세에 대해 재계가 적극 반대하고 있다. 근로소득증대세제, 배당소득증대세제 등에 대해서도 발표 이전부터 부정적인 기류가 크다.
또 하나는 시기적으로 늦었다는 점이다. 이미 미국 유럽 일본 등 선진국들이 양적완화라는 적극적인 통화재정정책을 쓴 반면 우리나라는 이제 시작한다는 것. 조금 더 일찍 시작했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인하한 후 몇달 뒤 미국 등은 금리 인상으로 돌아설 수 있는 상황이다.
[뉴스핌 Newspim] 김민정 기자 (mj72284@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