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정부 경제2팀 '경기부양' 강조…한은 '보조'에만 신경쓰면 안돼
[뉴스핌=김윤경 국제전문기자] "시장에서 기대(혹은 우려)가 커지고 있다."
경제를 담당하는 기자들이 기사에 꽤나 많이 쓰는 표현(문장)이다.
여기서 '시장'이란 누구인가. 객체로 쓰이면 모르겠는데 '시장'이 이렇게 주어로 쓰이면 정말이지 애매하다. 대개는 기자들이 취재한 금융시장에서 직접 거래하는 '플레이어'들이나 시장을 분석하는 금융사 관계자들이나 전문가 집단을 의미한다고 보면 된다.
그런데 우리나라 재정 및 통화 정책, 이 '시장'을 위해 존재하는 것일까 의문이 든다.
박근혜 정부 2기 경제팀, '최경환 팀'이 이제 공식 업무를 시작했다. 이 사실을 알리는 기사에도 이런 문장이 많았다. "시장에선 강력한 경기 부양 의지를 밝힌 최경환 경제팀에 대해 기대를 걸고 있다"라는 식으로 말이다.
최경환 경제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최근까지 정치권에 몸담아서인지 관(官)의 느낌은 거의 지웠다. 그리고 '시장'을 매우 의식하는 듯하다. '부동산 규제완화' 이런 식으로 얼버무리지도 않고 민감한 단어들을 직접 거명한다. 총부채상환비율(DTI)과 담보인정비율(LTV)을 조정해야 한다고.
민감하기론 '추경(추가경정예산)'이란 단어도 얼마나 민감한가. 최경환 부총리는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경기 상황만 감안하면 추경을 하고도 남는다"고 말했다. 근거도 있다. 일본식 장기불황으로 갈 우려가 있다"고 했다. "우리 경제가 저성장, 저물가, 과도한 경상수지 흑자 등 매크로(거시경제) 쪽의 불균형이 존재하는 게 아닌가 생각한다"며 "이게 '일본의 잃어버린 20년' 과정에서 전형적으로 나타났던 현상이었다"라고 밝혔다.
추경은 쉽게 말해 지금 나라 예산이 부족하니 어떻게든 추가로 더 쓰겠다는 것이고, 이 돈을 마련하려면 세금을 더 걷든지 국채를 발행하든지 해야 한다. 빚을 낸다면(국채를 발행한다면) 국가 재정 건전성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도 있다. 추경은 꺼져가는 연탄불엔 제격인 번개탄인가? 추경 얘기만 나오면 "시장이 반기고 있다"라든지 "시장의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는 내용의 기사들이 도배된다.
박근혜 정부 2기 경제팀 출범과 함께 성장 중심의 경제 정책에 보조를 맞출 지 주목되는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출처=비즈니스위크) |
이를 두고 속보 처리된 기사들을 보면 '역시나 동결'(혹시나, 하고 기대를 걸었는데 실망했다는 뉘앙스가 담겨 있다) "(그래도 금통위 위원들의 만장일치가 깨졌으니)금리 인하 신호가 켜진 것" "올해 경제 성장률 전망치를 낮춘 것(한은은 전망치를 기존 4.0%에서 3.8%로 낮췄다)은 금리를 낮출 수 있다는 신호를 보내며 최경환 경제팀에 보조를 맞추려는 것"이라는 해석이 많았다.
통화 정책의 차선을 바꾸기 위한 깜빡이를 켠 셈으로 보이기는 한다. 정부와 코드를 맞추기 위해 말이다.
그런데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우리 경제가 이렇게 건강하지 않다는 분석은 많지 않았다. 일본식 장기불황 답습은 커녕 성장률 자체는 둔화되어도 견조한 흐름을 보일 것이란 전망이 많았는데, 최경환 부총리의 우려 섞인 진단이 나오면서부터 언론 보도도 줄줄이 기조를 바꿨다는 혐의가 짙다.
경기가 그리 나쁘다면 그럼 추경과 금리 인하, 부동산 규제 완화는 처방되어야만 하는 것이며 효과도 좋은 약(藥)이란 것인가. 100%는 아니지만 대체로 금리 인하는 주식값을 올릴 수 있으며, 부동산 규제를 완화하면 부동산값도 오를 수 있다. 그렇게 되면 부(富)의 효과가 나타나 민간 소비도 활성화될 수 있다고 알려져 있다.그렇지만 예외도 있다. 민간으로 이 돈과 효과가 흘러들지 못할 수도 있다는 얘기다.
지금도 우리 경제가 거둔 과실의 대부분은 기업으로 가고 있으며, 기업은 불확실한 경기를 핑계삼아 고용이나 투자를 늘리지 않고 있다. 그래서 여기서 선순환의 고리가 끊기고 만다. 각 가계의 지갑은 굳게 닫히고 있는 것이다.
그럼 부동산 값은 더 올라도 될까. 최절정기에 비해선 폭락 수준이지만 아직도 우리나라 부동산 값은 소득에 비해 과도하게 높다는 것이 중론이다.
마침 지난 11일 부동산 써브가 이달 첫째 주 시세를 기준으로 조사해 발표한 전국 아파트 평균 전세가격은 1억7956만원. 서울은 평균보다 두 배 가량 높은 3억1348만원이다. 내년 최저임금은 시간당 5580원. 월급으로는 116만6220원인데, 이걸 하나도 쓰지 않고 모아 아파트에 전세로 들어가려면 평균 12년 10개월, 서울은 22년 55개월이나 걸린다. 번 돈을 아무 데도 쓰지 않을 때 말이다.
그러니 전세값만 높아지지 않게 실수요자들은 집을 사게 하자고, 그래서 규제를 완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다시 나올 수 있다. 합리적으로 정책을 조절할 수 있다면 그렇게 해도 좋다. 하지만 대출 규제를 풀고 금리도 낮아지면 사람들의 근본적인 '욕심'이 작동할 수도 있다. 이 때 집을 사두면 더 오를 것이라고 전망하게 될테니까. 그렇잖아도 부풀어 있는 가계 대출, 그리고 부동산에도 끼게 될 거품은 어떤 결과를 가져올까 신중하게 보지 않을 수 없다.
이주열 한은 총재는 취임 당시엔 통화정책에 있어 '매파'로 지칭됐고 본인도 "금리를 움직여야 한다면 올리는 쪽"이라고도 말했다. 그런데 첫 금통위에서 발언의 수위가 낮아지더니 이번엔 "(최경환 부총리의)경제를 보는 시각이 (나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유턴에 가까운 입장 변화이며 금리 인하를 점치는 기사를 뒷받침해주는 근거다.
성장 일변도의 아베노믹스를 강력하게 추진하고 있는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왼쪽)와 이에 적극 동참하고 있는 구로다 하루히코 일본은행(BOJ) 총재(오른쪽).(출처=월스트리트저널) |
또 여기서 한은이 스리슬쩍 잊은 듯, 혹은 잊은 척 하는 것인지 모를 숙제 하나를 지적할까 한다. 바로 물가안정목표제(Inflation Targeting)이다. 한은이 목표로 하고 있는 근원 소비자물가지수(CPI) 상승률은 2013년부터 내년까지 2.5~3.5%다. 작년 물가 상승률은 1.3%였고 지금도 1%대에 머물러 있다. 남은 기간 물가가 급등하지 않는 한 목표는 맞추기 어려워 보인다.
물가안정목표제는 한은법 제1조 1항에 담겨있지만 이를 못 지켰을 경우 책임을 물을 근거가 없다는 허점이 있다. 숙제를 잊어도 상관없을 수 있다.
그래서 이 숙제를 왜 도입했는지 모르겠다. 물가안정목표제가 도입된 이후에도 부동산 버블을 막지 못했고, 이제는 장기 디플레이션 우려마저 나오는 데도 속수무책이다. 혹시 독자적인 판단을 하기 어려운 위상 때문은 아닐런지. 금리를 올리거나 내려야 할 때 정치권과 '시장'의 눈치를 보느라 말이다.
전성인 홍익대 경제학과 교수가 올해 발표한 논문 '물가안정목표제의 경험과 한국은행의 과제'에도 이런 지적이 담겨 있다. 전성인 교수는 우리나라 통화 정책은 오히려 자산 가격 안정에는 상대적으로 무심했고 물가안정목표제 하에서 금기(禁忌)라 할 수 있는 성장 촉진과 관련해선 과도할 정도로 관심과 집착을 보였다고 했다. 하지만 그 성과는 미미했다고 분석했다. 복기해볼만한 내용이다.
[뉴스핌 Newspim] 김윤경 국제전문기자 (s914@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