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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가버린 시절,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다
- 고향생각 1
어느 가을날 오후, 겨울을 재촉하며 소리 없이 내리는 찬비는 불현듯 고향생각에 젖어들게 했다. 마침내 나는 지난날 고향의 기억 속으로 빠져들어 갔다. 봄이면 머루를 따고 가을이면 밤나무아래에서 떨어진 알밤을 줍던 뒷동산은 언제나 어머니 품속같이 푸근했다. 동구 밖 과수원과 과수원 한복판에 자리한 원두막은 친구들과 만남의 장소였고 놀이동산이었다. 솔직히 이제 그 친구들의 얼굴들은 잘 생각나지 않는다. 그러나 그들과 함께 뛰어 놀던 옛 고향의 모습은 아직도 뚜렷하게 기억에 남는다.
고향, 그 이름만 들어도 가슴이 저려온다. 어린 시절의 추억이 아련히 밀려오고 가슴 속에 진한 향수와 그리움이 묻어난다. 고향이란 자기가 태어나 자란 자신의 뿌리와도 같은 곳이다. 언제라도 찾아가면 반가이 맞아줄 것만 같은 곳, 어머니 품과 같이 포근하고 따뜻한 그곳이 바로 고향이다. 그런 고향에 대한 정감이 자꾸만 사라져 잊혀진 고향, 잃어버린 고향이 되어가는 것만 같아서 안타깝다.
고향의 봄은 특별히 따스하다. 동면에서 깨어난 개구리가 여기저기 튀어 오른다. 마을의 담벼락을 노랗게 수놓은 개나리와 산중턱에 새색시마냥 수줍게 살며시 피어난 연분홍 진달래. 동구 밖 과수원 길은 복숭아꽃 살구꽃으로 뒤덮인다. 아지랑이 피어오르는 언덕길 저 너머서부터 아카시아 꽃향기가 향기롭게 퍼진다. 뒷동산에서는 뻐꾸기 울음이 뻐꾹뻐꾹하며 봄의 소리를 전한다.
여름이면 개구쟁이들은 신이 난다. 한낮에는 시원한 매미울음을 들으며 원두막에서 수박을 잘라 놓고 서로 큰 것을 잡으려고 다투기도 했다. 그것도 재미가 없어지면 시냇가로 몰려가 멱을 감고 물장구를 치며 정신없이 놀았다. 시냇물이 졸졸 흐르는 실개천에서 돌팔매 치기를 하거나, 송사리를 잡는답시고 시간 가는 줄도 몰랐다. 날이 어두워지면 아이들은 참외나 수박 서리를 한다고 몰려다니기도 했다. 아이들은 그게 나쁜 짓인 줄도 모르고 그냥 하나의 놀이처럼 생각했던 때였다.
가을은 풍성했다. 마을로 들어오는 길 양쪽에는 코스모스가 하늘거리며 끝없이 피어있다. 오곡이 누렇게 익어 고개를 숙이고 있는 논두렁 밭두렁 길을 따라 메뚜기를 잡으러 다녔다. 집 뒤뜰에는 홍시가 빨갛게 익어가고 있다. 뒷동산에 흐드러지게 피어난 억새풀을 한 움큼 꺾어 집안을 장식하였다. 가끔은 서글피 울어대는 귀뚜라미 소리에 잠을 이루지 못한 밤도 있었다.
(고향생각 2 에서 계속)
*저자 이철환 프로필
-재정경제부 금융정보분석원장
-한국거래소 시장감시위원장
-현 하나금융경영연구소 초빙위원
-현 단국대 경제학과 겸임교수(재직)
*저서- 과천청사 불빛은 꺼지지 않는다, 한국경제의 선택, 14일간의 경제여행, 14일간의 (글로벌)금융여행 등 다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