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수 년 간 '등급장사' 지켜보다 뒤늦게 철퇴‥"당국도 책임"
[뉴스핌=김선엽 기자] 금융당국으로부터 강도 높은 징계를 받은 신용평가사들이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기관징계 정도를 예상했으나 몇몇 임원들에 대한 인적징계가 포함됨에 따라 조직 전체가 '멘붕'상태다.
감독당국의 징계를 두고 회사채 시장에서는 예정된 결과이자 적절한 조치였다는 의견이 주를 이룬다. 신평사의 '등급장사'는 회사채 시장의 발전을 위해 반드시 짚고 넘어갈 문제라는 것이다.
하지만 감독당국의 책임을 따지는 목소리 역시 상당하다. 십수 년 간 존재했던 관행을 그동안 묵인해 오다가 지난해 동양사태 문제가 터지자 뒤늦게 일벌백계에 나섰다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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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일 신평업계에 따르면 금융감독원은 지난주 신평 3사에 대해 기관징계와 함께 일부 임원진에 대해서는 인적징계를 사전통보했다.
금감원의 이번 조치는 지난해 동양사태 이후 신평사의 뒷북 등급조정이 문제가 되자 실시된 검사 결과에 따른 것이다. 금감원은 지난해 말부터 올 초에 걸쳐 신평 3사에 대해 강도높은 검사를 실시했다.
이 결과 신평사들이 평가절차 등 내부통제를 제대로 지키지 않고 이른바 '등급장사(피평가 기업이 사전에 신평사들과 접촉해 등급을 문의하고 신평사들은 높은 등급을 제시해 고객을 유치하는 행위)'를 했다고 결론내렸다.
이를 두고 회사채 시장에서는 '비정상의 정상화'란 측면에서 일단 긍정적 평가를 내놓는다. 신평사들이 '등급 인플레이션'이란 오랜 악습 속에서 편하게 수익을 내왔다는 것이다.
하지만 오로지 신평사에 대해서만 강도 높은 처벌을 부과하는 것은 형평성 차원에서 문제가 있다는 판단이다.
실제 그동안 회사채 발행기업은 등급을 내리려는 신평사를 상대로 평가수수료를 무기로 협박하거나 등급을 올려달라고 떼쓰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계열사 중 한 곳의 등급이 내려갈 조짐이 보이면 전체 계열사가 평가사를 교체하겠다고 으름장을 놓기도 했다. 이 때문에 대기업 계열사의 신용등급 중 상당수는 '뻥튀기' 상태다. 신평사가 내놓는 몇몇 기업의 신용등급을 회사채 시장이 흘려듣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금감원 역시 십수 년째 이런 문제가 있다는 것을 이미 충분히 알고 있었다. 이에 지난 2012년 '신용평가시장 선진화 방안'을 내놓았으나 등급쇼핑은 여전히 횡횡해 왔다.
결국 평가수수료를 발행기업이 지불하는 현실에서 신평사들이 발행기업에 휘둘리는 것은 어쩔 수 없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수수료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이상 내부규제 강화 만으로는 현재의 등급쇼핑 관행을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감독당국이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못하다가 문제가 불거지자 부랴부랴 만만한 평가사만 잘라냈다는 지적이다. 신평 3사 못지 않게 금융당국도 일정 정도 책임을 감수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한 신평사 관계자는 "당국은 FM(필드 매뉴얼)대로 하라는 것인데 그렇게 하면 지금 대부분의 기업들 등급을 손봐야 한다"며 "발행기업, 금융투자지관, 신평사, 감독당국 등 모든 시장 플레이어에게 책임이 있는데 가장 약한 고리인 신평사만 잘려나갔다"고 말했다.
회사채 시장의 한 관계자 역시 "여태 내버려두다가 이제 와 문제 삼은 감독원도 책임을 피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또 금감원이 단순히 징계에 그치지 않고 현재의 왜곡된 구조를 개선할 수 있는 현실적인 대안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또다른 회사채 시장 관계자는 "금감원의 조치는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경우"라며 "평가기관에 모든 책임을 지운다고 감독당국의 책임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라고 언급했다.
이어 "사후 약방문, 일벌백계식의 금융감독정책이 아니라 금융기관을 끌고갈 수 있는 원칙을 세워주는 금융감독을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뉴스핌 Newspim] 김선엽 기자 (sunup@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