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흑자=불황형 흑자 또는 통계적 착시" 지적
[뉴스핌=우수연 기자] 26개월째 이어지는 우리나라 경상흑자 기조가 향후 지속되더라도 원화의 추가적인 강세는 없을 것이라는 주장이 제기됐다.
올해 초 대비 원/달러 환율은 2.87% 절상됐다. 빠른 원화절상 속도에 당국이 제어에 나서고 있으나 대다수의 전문가는 이같은 환율 하락이 대규모 경상흑자에 따른 자연스러운 하락이라고 설명한다.
하지만 이미 원화의 절상폭은 고점에 다다랐으며, 최근 경상흑자의 급증은 펀더멘털 호조에 따른 것이 아니라 통계적 착시 또는 내수 침체에 따른 불황형 흑자일 수도 있다는 새로운 시각이 나오고 있다.
◆ 원화 절상≠경상 흑자…"변수간 관계 약화돼"
권구훈 골드만삭스 이코노미스트는 이미 오랫동안 이어진 우리나라 경상흑자는 원화 가치에 반영돼 있으며, 추가적인 원화절상 재료로 작용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최근 발표한 보고서를 통해 "경상수지 흑자로 원화가 추가 강세를 나타낼 것이라는 시장의 예상과는 달리 한국에서는 경상수지와 원화간의 연결고리가 약화되고 있다"고 판단했다.
그는 이같은 주장의 근거로 ▲ 한국의 높은 저축률 ▲ 이미 상당부분 진행된 원화의 고평가 ▲ 원화 강세에도 지속되고 있는 내수부진을 꼽았다.
권 이코노미스트는 한국 베이비부머 세대들이 투자보다 저축을 늘리며 국내 시장의 공급 우위 현상이 나타나게 됐다고 분석했다. 총저축이 총투자를 압도하게 되면 경상흑자가 나타난다.
그는 "저축과 투자의 균형을 반영하는 경상수지의 공급 과잉은 최근 베이비부머들의 저축의 증가에 따라 확대됐다"고 말했다.
이어 "한국의 주요 저축자(Prime saver, 35~69세)들은 2010년과 2020년 사이에 13.6% 증가하며 국가 저축률을 높일 것으로 전망된다"며 "이는 같은 기간 세계 인구 증가율 4.1%과 비교해도 높은 수준"이라고 말했다. 주로 50대에 해당하는 한국 은퇴자들은 자녀들의 교육을 대비해 저축을 늘리는 경향이 있으며, 이에 따라 가계의 현금 잉여 보유 자금 비중은 늘어나게 된다는 설명이다.
또한 그는 원화의 가치를 실질실효환율로 따져봤을때 이미 20년 장기 평균보다 다소 높은 수준이며, 고점을 찍었던 2006년에 비해서도 10%가량 낮은 수준이라고 분석했다.
![]() |
원화의 실질실효환율(REER)은 이미 20년 장기평균을 상회하고 있다. 대개 기준시점 100이상이면 기준시점대비 자국통화가치의 고평가를 나타낸다. <자료=한국은행, 골드만삭스> |
그는 "지난 2004~2006년에는 원화의 절상이 지속되는 동안 국내 수요가 회복을 나타냈으나, 현재의 상황은 그때와는 다르다고 생각한다"며 "그때와 같이 신흥국의 수출이 경기회복을 일으키는 작용을 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현재는 부동산과 금융시장이 취약한 상황이기 때문에 원/달러 환율의 하락이 내수에 기여하는 정도가 매우 약하다"고 덧붙였다.
◆ 韓 경상흑자, 내수 부진 따른 '불황형 흑자'
최근 국제수지 통계 개편에 따라 해외에서 생산되는 우리나라 기업들의 소득까지 경상흑자에 포함되면서 흑자폭이 더욱 확대됐다는 분석도 있다. 따라서 실제적인 수출의 호조보다도 상대적으로 내수 부진에 따라 수입이 줄면서 경상수지의 흑자가 확대된 것처럼 보이는 착시효과일수도 있다는 설명이다.
박성욱 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경상수지가 내수부진형 흑자의 성격을 내포하고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는데 가공무역, 재투자수익, 배당금 등 기업의 해외생산 활동과 관련된 항목들이 경상흑자 확대에 주요 요인이었다는 점에서 이런 우려는 어느 정도 타당성이 있다"고 말했다.
우리나라 국제수지의 통계편제 방식이 개편으로 2013년 가공무역 관련 흑자도 추가로 늘었고, 해외직접투자 기업의 재투자 수익분(해외 기업이 모기업에 배당하지 않고 보유하고 있는 미배분 수익)도 늘었다.
또한 그는 최근 내국인의 해외투자에 대한 수요가 늘면서 경상흑자에 따른 우리나라 공급 우위의 시장 상황을 다소 조절해 줄 것이라고 판단했다.
박 연구위원은 "경상수지 흑자 지속으로 원화 절상 압력이 커질 것이라는 우려가 있으나 최근 내국인의 해외투자가 확대됨에 따라 달러 수요가 늘고 있다는 점에서 경상수지 흑자 규모와 외환시장의 초과 공급 규모가 동일하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최근 환율의 하락을 온전히 경상흑자의 탓으로만 돌리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분석이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내국인의 해외증권투자는 2012년 260억8000만달러, 2013년 268억5000만달러로 크게 늘었으며 2010년 이후 4년간 유출초를 기록했다.
박 연구위원은 "최근 경상흑자의 내용을 보면 우리 기업의 해외 생산활동과 관련이 깊고, 이것이 내수와 대체되는 측면이 있어 내수부진 얘기가 나오는 것 같다"며 "전체 생산 과정 중 고부가가치를 낼 수 있고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할 수있는 기업을 국내에 유치할 수 있도록 친투자 환경을 조성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뉴스핌 Newspim] 우수연 기자 (yesim@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