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1장 26절에서 그런 징후와 숨겨진 의미망들을 눈치챌 수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로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육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시고(Then God said, “Let us make man in Our image, according to Our likeness; and let them rule over....”).
원어를 보면, '하나님이 사람(man)을 만들고, 그(them)로 하여금'이란 말에서 그는 갑자기 복수인 그들(them)로 비약해 버린다. ‘그들’을 아담과 이브로 해석할 수도 있겠지만 이 말씀은 아담과 이브를 지으시기 이전에 내리신 말씀인 것이다. 당연히 아담과 이브 이전에 에덴 동산엔 에덴을 낳은 부모를 포함한 사람들이 살았다는 것이다. 이처럼 에덴을 둘러싼 문제들, 인류사에 구구한 추측과 상상, 오류를 일으킨 선악과, 갈빗대, 생명나무 등등의 말들도 모두 비유로써 무릎을 탁 치게 할 정도로 후련하게 해결되었다.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신비롭고 불가해한 영적 체험들, 환상이니 초혼, 빙의, 계시, 유체이탈 등이 자유자재로 행해졌다. 예쁘장한 여대생들이 죽은 영을 불러 이야기하고, 환상을 보거나 영음을 들었다. 집단으로 방언하고 통성기도하며 울고불고, 기쁨에 취해 날뛰는 정경들을 어두침침한 구석에서 매일 볼 수 있었다.
마이크를 잡았다 하면 몇 시간이든 좌중의 혼을 휘어잡는 랍비가 “오늘 밤엔 이런 꿈을 꿀 것이다” 하면, 다음날 아침 무수한 신도들이 똑같은 꿈을 꿨다며 하나같이 입을 모았다. 나 역시 그 대부분의 체험을 직접 체험했다. 방언을 처음 받았던 순간은 지금도 생생하다. 통성기도를 해나가며 영적으로 뛰어난 자매가 방언을 내려주겠다고 말하는 순간, 온몸이 느닷없이 뜨거원지더니 강렬한 불기운이 혀끝으로 몰리는 것이었다. 혀가 저절로 굴러가면서 나도 모르는 사이에 무슨 외국어 같은 말을 해대고 있었다. 방언이 익숙해졌을 때는 내 방언을 자매들이 통역해 주었다.
내 방언이 시 같다며 죽은 시인의 영혼이 내게 보호령으로 붙어있는 것 같다는 말도 많이 들었다. 잊을래야 잊을 수 없는 기억은, 내가 유체이탈 하는 순간이었다. 초저녁, 방에 불을 끄고 혼자 누워있을 때인데, 비몽사몽 중에 내 머리 끝으로부터 내가 빠져나가는 것이었다. 어느덧 천장 높이까지 떠올라 있었다. 바닥을 내려보니, 그 자리에도 내가 누워 있었다.
내가 둘이었다. 그런데, 빠져나온 내가 나라는 느낌이 들었고, 바닥의 나는 시체처럼 아무 느낌이 없었다. 잠시 후 나는, 천장을 뚫고 지붕 위로 떠 있었다. 천장을 뚫을 때 아무 장애도 느껴지지 않았는데, 그것이 하나도 이상하지 않았고, 의식조차 없었다. 희한한 해방감이 느껴지며 마음이 편해졌다. 그러나 순간, 내가 죽는구나 하는 두려움이, 스산하게 몰려왔다.
육체와 유체 간에 혼줄이 붙어있는데, 그것이 끊어지면 죽게 된다는 것을 랍비에게 익히 들어온 터였다. 두렵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 눈 깜짝할 사이에, 내가 다시 내 속으로 쏘옥 들어와 있었다. 지금도 아쉽게 생각하는 것은, 그때 좀더 용기를 냈었더라면, 하는 것이다. 이왕 빠져나온 거, 내 영혼이 지상 영계를 벗어나 저 하늘 영계까지 무한정 여행하다 왔을 텐데. 사실 영계를 마음대로 들락거리는 랍비의 말로는, 영계의 구조도 지상의 그것처럼 복잡 다양하고 많은 단계로 계층화되어 있다는 것이다. 사람이 죽으면 신이 되어 영계에서 살게 되는데, 지상 세계의 영향을 받아 그곳도 복잡 다양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사실도 모르고 천국, 지옥이니 하는 단순한 흑백 논리로 외치고들 있으니 한심하다는 것이다. 지금이 어느 때인데, 그리고 자기가 누군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