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기사 최신뉴스 GAM 라씨로
KYD 디데이
문화·연예 대중문화·연예일반

속보

더보기

각(角) 10 - 버리고 싶은 욕망과 쥐고 싶은 애착

기사입력 : 2014년01월24일 08:00

최종수정 : 2014년01월10일 16:01

“알았다. 이 새끼야. 산에 죽으러 가는 놈한테 뭐 이렇게 떠들어!”
어른에게 한 최초의 욕이었다. 막되어 가는 사람 흉내를 냈다. 어색했다. 손에 집히는 대로 지폐를 던져주었다.

새벽산. 하늘은 어슴프레한 빛을 머금고 있었다. 여름이면 우리 가족이 배낭과 돗자리를 메고 놀러와 물장난 치며 오이와 사과를 깎아 먹던 세검정. 지금은 나 혼자다. 가파른 산길을 뛰다시피 오른다.

마른 풀과 가시덤불이 정강이와 허벅지를 감아죄고, 휘휘 젓는 손등이 가시에 긁혀 피가 듬성듬성 맺힌다. 높은 바위에 올라서니 숙취가 올라 몸이 거꾸러질 것 같다. 머리가 혼란하고 다리가 휘청거리며 숨이 가쁘다. 토할 것 같다.

하지만 멈추기 싫었다. 가파르게 달리고 달리다가 바위 밑으로 구르거나 절벽 아래 떨어져 죽고 싶었다. 고의로 죽을 용기는 없으니 우연히 죽을 상황에 처하도록 내 몸을 혹사시켰다. 수풀을 스치는 바람보다 거칠게 숨소리가 학학거렸다. 바지는 흙먼지에 뒤덮였고 하얀 운동화가 새까매졌다. 손등이 가시에 긁혀 나갔다. 아랑곳하지 않고 가시덤불 속을 계속 휘저었다.

분이 쌓여 한숨의 강을 이루고 배신감에 치를 떨었다. 가슴속 울분을 끌어모아 ‘야아’ 고함을 지르며 내달렸다. 메아리가 돌아오면 곧바로 되받아치며 목 놓아 울부짖었다. 돌변한 아내가 이해되지 않았다. 지난밤의 악몽이 돌팔매질을 하며 쳐들어왔다. 꿈속에 포근히 잠겨있을 아이들 얼굴이 눈물 속에 아른거렸다. 왜 그랬을까, 왜 그랬을까, 아내가 왜 그랬을까. 심장 잃은 늑대처럼 가파른 산 속을 내달렸다. 자꾸 눈물이 났다. 닦지 않고 내버려두었다.

무너질듯 뛰어올라 비봉 꼭대기에 오르자 갑자기 왈칵, 눈물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느닷없이, 아내가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면서 온몸에서 울음이 솟기 시작했다. 오죽 했으면 그렇게 했을까.

내가 아내를 학대했나? 내가 비겁한 놈이라고? 그 놈이 밉지는 않았다. 그가 내 심장에 꽂은 두 촉의 화살이 굳은 살에 예리한 구멍을 내 그곳에서 하수같은 눈물이 마구 솟구치기 시작했다.

문득 아내가 걱정되어 산을 내려오기 시작했다. 오래 묵은 누런 노폐물들을 한꺼번에 다 쏟아내서인지 발걸음이 가벼워졌다. 아파트 단지 입구에 막 문을 연 새벽의 꽃집에서 장미 한 송이를 샀다. 이 이른 아침에 꽃을 산 것은 생전 처음이었다.
아파트 문을 열어 꽃을 건네려는 순간, 아내는 핸드폰을 받고 있었다. 그 남자인듯 했다.

“웃으며 주려 했는데, 웃음이 안나온다.”
미소를 거두며 꽃을 건넸다. 아내도 웃음기 없는 얼굴로 받았다. 건조한 아침 식사. 식사후 차를 몰아 인근 공원으로 향했다. 바람이 세차게 불어 단풍잎들이 어지럽게 흩날렸다.

모든 것을 얘기해 달라고 했다. 바람이 옷자락 속으로 사납게 파고들었다. 아내는 그간의 일을 간결하게, 아주 간결하게만 이야기해 주었다. 쥐기 싫은 것을 쥐어야 하는 고뇌와 놓아버리고 싶은 욕망, 놓기 싫은 것을 놓아야 하는 번민과 쥐고 싶은 애착 사이에 아내도 어렵게 견디고 있었다.

나는 따지듯이 물을 수가 없었다. 아내에게나 내게 이 싸움은 각자 견뎌내야 할 지독한 전쟁이다. 차라리 가난이나 질병이 대상이라면, 우리가 이를 악물고 함께 헤쳐 나가거나 마음을 비우고 순응하면 될, 투명한 성질일 수 있다.

하지만 이 전쟁은 우리 둘만의 노력으로 해결되는 것만도 아니다. 어떤 파란을 일으키며 달려들지 모를 복잡 미묘한 외부변수로서의 그가 있고, 우리 부부도 깊은 상처로 분열되어 있다.

그렇지만 아이들의 정원이고 낙원이어야 할 가정이 이렇게 쉽게 무너져서는 안된다. 최소한 그것만은 아내와 내가 깊이 공감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마저 허무의 바다에 빠질 만큼 아내는 위태롭게 흔들렸다.

아내는 안과 의사인 그를 세미나 끝나는 시간에 만나기로 약속했다며 성모병원에 가봐야겠다고 했다. 나는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내가 차를 몰아 병원 입구에 나를 내려주었다. 주차한 후 병원 안으로 들어서는 아내를 멀리서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무턱대고 걸었다.

테헤란로의 찻집. 창유리 밖으로 우리가 성공의 꿈을 키우며 다운라인들과 함께 사무실을 낸 빌딩이 보인다. 테헤란로. 무수한 욕망들이 충돌하고 결합하고 부서지는 거리. 금융과, 벤처와, 네트워크 마케팅의 메카. 그와 더불어 그 화려함의 허전한 이면을 채우고 적셔주기 위한 단란주점, 모텔, 룸싸롱, 노래방, 러브호텔....매일 보는 익숙한 풍경이 먼 나라의 것처럼 낯설고 서먹서먹하다. 조금 전에 산 노트를 펼친다.

[뉴스핌 베스트 기사]

사진
'해병대원 특검법' 국회 본회의 상정…與, 필리버스터로 맞불 [서울=뉴스핌] 김윤희 기자 = 더불어민주당이 해병대원 순직사건 외압 의혹의 진상규명을 위해 제출한 '채 해병 특검법'이 3일 국회 본회의에 상정됐다. 국민의힘은 즉각 필리버스터(무제한토론) 요구서를 제출하며 맞불을 놨다. 국회법상 필리버스터는 '종결동의' 제출 24시간 후 국회 재적의원 5분의 3 이상 동의로 중단할 수 있다. 이날 민주당이 15시 45분 필리버스터 종결 동의서를 제출함에 따라, 특검법은 24시간 토론을 거친 뒤 오는 4일 오후 표결이 진행될 전망이다. [서울=뉴스핌] 윤창빈 기자 = 유상범 국민의힘 의원이 3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415회국회(임시회) 제415-45차 본회의에서 채상병 특검법 상정을 반대하는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를 하고 있다. 2024.07.03 pangbin@newspim.com 국회는 이날 본회의 첫 안건으로 박찬대 원내대표 등 민주당 의원 전원 명의로 제출된 '순직 해병 수사방해 및 사건 은폐 등의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 검사의 임명 등에 관한 법률안'을 상정했다.  당초 민주당은 지난 2일 본회의에서 특검법을 상정하겠다는 방침이었지만, 전날 대정부질문이 진행되던 도중 김병주 민주당 의원의 발언으로 여야 간 고성이 오가며 본회의가 파행돼 불발됐다. 추경호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이날 본회의 전 열린 의원총회가 끝난 뒤 취재진과 만나 "채상병 특검법안이 상정되면 의사 진행 발언과 함께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를 시작할 예정"이라고 엄포했다. 그러나 민주당은 같은 날 오전 최고위원회의에서 4일 본회의 처리를 목표로 해병대원 특검법을 상정하겠다는 방침을 재차 공고히 했다. 당초 이들은 대정부질문 이후 채상병 특검법을 본회의에 올리겠다는 계획이었으나, 필리버스터를 예고한 여당에 맞춰 의사일정을 변경하고 특검법을 먼저 상정했다. 무제한토론이 이뤄짐에 따라 이날 예정됐던 경제 분야 대정부질문은 파행됐다. 채해병 특검법이 오는 4일 본회의를 통과해 정부로 이송되면 윤석열 대통령은 15일 안에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다. 윤 대통령이 15일을 꽉 채워 거부권을 행사하더라도 민주당이 당초 목표했던 채해병 순직 1주기인 7월 19일 직전에 국회 재표결이 가능한 셈이다. 앞서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21대 국회에서도 야당이 단독으로 강행 처리한 해병대원 특검법에 거부권을 행사한 바 있다. 이후 국회에 되돌아온 특검법은 재의결 필요 요건인 재적의원 과반수 출석과 출석의원 3분의2 이상의 찬성을 채우지 못해 폐기 수순을 밟았다. yunhui@newspim.com 2024-07-03 16:11
사진
김건희 여사, 한밤 중 시청역 참사 현장 찾아 조문 [서울=뉴스핌] 박성준 기자 = 김건희 여사가 서울 시청역 역주행 교통사고 현장을 찾아 헌화한 것으로 4일 알려졌다. 김 여사는 지난 3일 밤 10시 50분쯤 짙은 색 치마를 입고 조화를 든 채 사고 현장을 방문한 것으로 전해졌다. 김 여사의 방문은 대통령실에서 공식적으로 자료를 배포하지는 않았지만, 김 여사를 알아본 시민이 사진을 촬영하고 인터넷 커뮤니티에 올리면서 알려졌다. 3일 시청역 참사 현장을 찾은 김건희 여사. [사진=인터넷 커뮤니티] 김 여사는 현장 인근에 시민들이 자율적으로 조성해놓은 추모공간에 헌화한 뒤 잠시 자리를 지키다 떠났다. 앞서 지난 1일 시청역 교차로에서 60대 제네시스 차량 운전자 A씨가 몰던 승용차가 역주행하다 인도로 돌진해 9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부상자는 7명이다. 교통사고처리특례법 위반 혐의로 입건된 A씨는 경찰에 급발진을 주장하고 있다. 현장에는 고인들을 추모하는 시민들의 발걸음이 줄을 잇고 있다. parksj@newspim.com 2024-07-04 08:59
안다쇼핑
Top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