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효성' 있는 권한 필요 vs 기업 자율경영 침해
[뉴스핌=김연순 기자] 최근 유동성 위기가 불거지고 있는 동부그룹과 한진해운, 현대상선 등이 대대적인 자구책 마련에 나서고 있다.
동부그룹이 지난 17일 계열사 매각과 총수 일가의 사재 출연으로 총 3조원을 마련하겠다는 자구계획을 발표한 데 이어, 한진해운과 현대상선은 자산매각과 영구채 발행 등을 적극 추진하고 있다.
금융감독원이 올해 선정한 주채무계열 30개사 중 재무구조개선약정을 체결한 대기업은 동부, STX, 대한전선, 한진, 금호, 성동조선 등 6곳이다.
이 중 STX와 대한전선, 성동조선은 유동성 문제를 해결하지 못해 재무구조개선약정보다 강화된 자율협약을, 금호는 워크아웃을 채권단과 각각 체결했고, 동부와 한진만 재무구조개선약정을 이행 중이다. 주채무계열에서 빠진 현대그룹은 내년 주채무계열이 확대되면 재편입이 예상된다.
이런 가운데 금융위원회는 지난 5일 '기업부실 사전방지 제도개선 대책'을 발표한 이후 개선 방안에 대한 은행권 의견을 수렴한다는 방침이다.
이와 관련 채권은행들은 "(기업부실을 사전에 실질적으로 막기 위해) 이번 대책은 실효성이 떨어진다"고 입을 모은다. 이미 다 망가질 대로 망가져 재무구조에 '빨간불'이 들어온 단계가 아니라 '노란불' 수준의 주채무계열에 대해 채권은행들이 관리할 수 있는 권한이 주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시중은행의 한 여신담당 임원은 "정상적인 일반기업이지만 우량하지 않은 기업은 사전적으로 관리를 해야 CP사태를 막을 수 있다"며 "정상적일 때 채권은행들이 사전적으로 가이드라인을 줄 수 있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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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 금융위원회> |
채권은행들이 실질적인 권한 강화를 요구하는 대기업 계열은 B등급에 해당한다. 하지만 이번 금융당국이 발표한 기업부실 방지대책은 C등급, D등급에 대한 채권은행의 권한 강화에 국한돼 있다는 설명이다.
우선 내년부터 신설되는 관리대상 계열로 선정된 그룹은 주채권은행과 정보제공 약정을 체결하고 신규사업 진출, 해외투자 등 중요한 영업활동을 하기 전에 주채권은행과 협의해야 한다.
또 대기업 계열이 재무구조개선 약정체결을 거부하면 회사채 등을 발행할 때 '약정체결을 거부해 은행권 차입이 어려운 기업'이라는 내용을 공시토록 해 사실상 약정을 강제하도록 했다. 또 약정을 제대로 이행하지 않을 경우 주채권은행이 경영진 교체 권고, 금리 인상 등 현실적인 제재를 가할 수 있도록 했다.
하지만 정작 채권은행들은 C, D등급이 아닌 B등급 수준에 해당하는 대기업 계열에 대해 컨트롤할 수 있는 권한을 줘야 실질적으로 기업들의 사전 부실을 막을 수 있다는 입장이다. C, D등급의 경우 이미 재무구조와 유동성에 '빨간불'이 켜진 상황에서 주채권은행들이 할 수 있는 것은 '긴급여신 지원' 책임 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A은행 여신담당 부행장은 "주채무계열 대기업이 신용에 '빨간불'이 들어올 단계가 아니라 '노란불' 정도는 들어왔을 때인 B등급 정도일 때부터는 관리, 제어할 수 있는 권한을 줘야 기업 부실을 어느 정도 사전에 방지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앞선 여신담당 임원도 "관리대상계열과 재무구조개선 약정체결 기업에 대한 권한이 강화됐지만 실질적으로 채권은행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자금지원하는 것 밖에 없다"면서 "잇따른 기업 부실로 채권은행들의 책임은 강화되는 반면 권한은 제한돼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과거에는 내년도 경영계획을 받아 채무계열 기업들을 점검하는 권한이 은행에 있었다"면서 "일정정도 이상의 신규투자와 부동산 투자를 하려면 주채권은행의 사인을 받도록 하는 등의 권한이 은행에 부여돼야 한다"고 밝혔다.
이와 대해 금융당국은 채권은행들의 권한이 너무 강화될 수 있다며 다소 부정적인 입장이다. 예를 들어 B등급에 해당하는 대기업 계열군에 대해서도 채권은행들이 평소 모니터링을 통해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이다.
금융당국 고위 관계자는 "기업들 입장에선 자율경영을 침해한다며 지금도 불만이 많다"면서 "채권은행들이 평소 주채무계열에 대한 모니터링을 강화하는 것은 의무"라고 말했다.
[뉴스핌 Newspim] 김연순 기자 (y2kid@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