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시픽 림'의 주인공이 탑승하는 미국 예거 '집시 데인저' |
기예르모 델 토로 회심의 역작 ‘퍼시픽 림’은 지금껏 만났던 블록버스터의 기준을 뒤바꿀 괴물 같은 작품이다. 거대한 스케일과 압도적인 그래픽, 호쾌한 액션, 엄청난 몰입감 등 뭐 하나 빠지는 게 없다. 충격적 비주얼로 객석의 눈높이를 꼭대기에 올려놓을 ‘퍼시픽 림’을 보노라면 이후에 등장할 블록버스터들이 걱정될 지경이다.
영화는 시작과 동시에 객석을 거세게 몰아친다. 멀지 않은 미래, 태평양 해저에서 솟아오른 거대한 괴물 ‘카이주(괴수)’와 이에 맞서 개발된 강철로봇 ‘예거’의 사투가 보는 이들의 눈과 귀를 뒤흔든다.
2인1조로 구성되는 예거의 '드리프트' 조종시스템 |
‘퍼시픽 림’은 남자의 로망으로 통하는 메카물이다. 비단 메카물에 목숨 거는 마니아가 아니더라도 거대한 예거와 첨단 조종시스템 등 관객을 즐겁게 할 요소로 가득하다. 예거는 파일럿 두 명이 하나가 되는 ‘드리프트’ 시스템으로 움직인다. 파일럿은 서로의 머릿 속 데이터를 공유하고 일체가 돼 예거를 움직인다.
메카물을 보면서 짜임새 있는 스토리를 기대한다면 과욕이다. 영화는 각국의 예거가 힘을 합쳐 카이주를 처치하고 인류를 구하는 밋밋한 스토리를 채용했다. 주인공이 아픈 과거를 딛고 새 파트너와 의기투합하는 과정과 미국식 영웅주의도 물론 식상하다. 영화 곳곳에 일본 애니메이션 ‘에반게리온’과 영화 ‘아마겟돈’과 비슷한 설정이 엿보이기도 한다.
주인공 롤리(찰리 헌냄, 왼쪽)와 마코(키쿠치 린코) |
하지만 ‘퍼시픽 림’은 압도적인 화면 하나만으로도 단점들을 커버한다. 스크린을 꽉 채우는 거대한 로봇 ‘예거’가 내뿜는 존재감만으로도 극장을 찾을 의미가 충분하다. 특히 엄청난 투자가 필요한 액션의 비중을 높인 점을 높이 살만하다. 러닝타임의 절반 넘게 이어지는 예거와 카이주의 전투는 미처 경험하지 못했던 쾌감을 선사한다. 빅스케일 전투신 앞에서 ‘트랜스포머’는 시작에 불과했다는 감탄이 터진다. 카이주의 안면에 작렬하는 강철주먹의 타격감은 어지간한 공포영화보다 시원하다. 코앞에서 전투가 벌어지듯 엄청난 현장감 역시 압권이다.
영화 '퍼시픽 림'에 등장하는 예거들 |
재미있는 것은 ‘퍼시픽 림’의 주인공이나 다름없는 예거가 디지털과 아날로그를 혼합한 매력덩어리라는 점. 교감을 응용한 첨단 드리프트 시스템으로 움직이는 예거는 강철판을 두들겨 만든 듯 투박한 몸체와 불을 내뿜은 엔진 등 아날로그 감성이 살아있다. 도시를 불바다로 만드는 카이주 무리에 맞서는 ‘집시 데인저’ ‘크림슨 타이푼’ ‘체르노 알파’ ‘스트라이커 유레카’ 등 다양한 예거를 비교해가며 감상하는 재미도 짜릿하다.
다소 일본풍이 느껴지고 스토리의 짜임새가 탄탄한 수준은 아니지만 ‘퍼시픽 림’은 스케일과 화면만으로 올 여름 극장가를 평정할 가공할 경쟁력을 가졌다. 3D 블록버스터의 전과 후를 나눌 ‘퍼시픽 림’을 이왕 즐기려 한다면 아이맥스를 적극 추천한다.
[뉴스핌 Newspim] 김세혁 기자 (starzooboo@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