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핌=노희준 기자] "대추위 구성 변경은 없다."
'용두사미'였다. 금융권에서 '강한 사외이사'로 평가되는 KB금융지주 사외이사들도 결국 지주 회장의 계열사 대표이사 인사권을 제한하지 못했다.
KB국민은행장 등 계열사 대표이사 후보를 회장이 추천하면 이를 승인하는 ′계열사 대표이사 후보추천위원회(대추위)′ 구성 방식을 변경하려던 KB금융 사외이사들이 스스로 이 방안을 거둬들인 것이다.
4일 이경재 KB금융 이사회 의장은 기자와의 통화에서 "(사외이사들이) 시기가 좋지 않다고 해서 적절한 시기에 나중에 (변경)하자고 (대추위 구성 변경을) 보류했다"고 말했다.
앞서 일부 KB금융 사외이사들은 대추위 구성을 회장, 사장, 사외이사 3인(총 5명)으로 바꾸는 방안을 추진해왔다. 현 대추위가 회장, 사장, 사외이사 2인 등 총 4명으로 구성돼 있어 보통 홀수로 구성되는 위원회와 다른 데다, 가부동수일 경우 회장이 캐스팅 보트를 행사해 사실상 사외이사의 역할이 유명무실하다는 문제의식에서였다.
하지만 복수의 KB금융 사외이사들에 따르면, 이들은 대추위 구성 변경안을 이사회에서 실제 발의는 해놓고도 보류(펜딩, pending)해 버렸다.
이 의장의 말을 그대로 따르면 시기 문제 때문이었다고 한다. 이 의장은 "지금은 과도기"라 했다. 이른바 '권력 교체기'이기 때문에 '게임의 룰'을 바꾸지 않겠다는 것이다.
또 다른 사외이사도 "시기적으로 오해받을 가능성이 있으니 다음에 적절한 시기에 하자는 의견들이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KB금융 (대추위) 자체가 잘못된 것이고 잘못된 것을 고치자는 대원칙은 서로 공감하고 있다"며 "사외이사 권한이 너무 강하다는 식으로 이야기가 있었지 않느냐"고 털어놨다.
하지만 KB금융 사외이사를 포함해 금융지주 사외이사들이 권력화 돼 있는지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다. 실제 금융지주 사외이사들이 최근 3년간 처리한 400여 건의 안건 가운데 부결된 것은 단 한 건에 불과하다.
비록 이 부결이 바로 KB금융 사외이사들이 어윤대 회장이 야심 차게 추진했던 ING생명 한국법인 인수에 대한 반대였지만, 300건 안건에서 단 하나의 반대라는 사실이 어떤 의미를 나타내는지는 의문이다.
전성인 홍익대 교수는 "사외이사 권한이 아무리 과해도 해도 지금은 사외이사가 지나치게 고무도장(거수기)에 기울어져 있기 때문에 조금 '과하다'는 쪽으로 와도 전체적으로 보면 아직은 고무도장에 가깝다"고 말했다.
사실 사외이사들의 의도대로 대추위 구성이 변경되더라도, 회장은 사외이사 3명 가운데 1명을 더 설득하면 그만이다. KB금융 사장은 회장이 선임하기 때문에 회장과 의사를 달리하는 경우는 상정하기 어렵다.
또 다른 금융지주 사외이사는 "언론이나 일반의 눈치를 보고 될 수 있으면 가만히 있겠다는 것 같다"며 "사외이사의 비대해진 권한, 지주회장의 전횡이라는 식으로 양쪽 다 비판을 받으니 가만히 있겠다는 것"이라고 혹평했다.
금융지주 지배구조에 단 하나의 정답이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대추위 구성 변경이 보류되면서 '리딩 뱅크'라는 KB금융의 계열사 CEO인사는 회장이 전권을 행사하는 구조를 탈피하지 못하게 됐다.
KB금융의 대추위에 해당하는 하나금융의 경영발전보상위원회(경발위), 신한금융의 자회사경영관리위원회(자경위), 우리금융의 자회사은행장후보추천위원회(자은위, 은행장 선임)·자회사대표이사추천위원회(자대위, 계열사 CEO 선임) 등은 모두 사외이사가 경영진보다 더 많고 회장에게 캐스팅 보트 등의 특별한 권한을 부여하고 있지 않다. <뉴스핌 "대추위에 사외이사 한명 더"…국민은행장 선임 새 변수 기사 참조>
[뉴스핌 Newspim] 노희준 기자 (gurazip@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