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과욕이 발단…당국 "증권사 손실 파악 중"
[뉴스핌=이에라 김선엽 기자] 지난 13일 한국투자증권이 회사 내 채권중개팀의 손실에 대해 내부감사에 들어갔다는 소식이 전해지며 채권파킹 문제가 채권시장 참여자들 입에 오르내리고 있다.
일단 한투증권은 이번 사태가 채권파킹과는 무관하다는 입장이나 이번 사태를 계기로 채권 파킹 관행이 근절될 필요가 있다는 자성의 목소리도 들려온다.
◆ 채권파킹, 누가 왜 하나
채권파킹이란 매수한 채권을 제 3의 거래자에게 일시적으로 보관해 두고 그에 대한 수수료를 지불하는 변칙거래다.
예컨대 A가 C에게 채권을 사서는 B에게 보관을 부탁한다. B의 투자장부에는 B가 C에게 직접 산 것으로 기재가 되고 A의 장부에는 아무런 매매기록이 남지 않는다. A 회사 입장에서는 A의 거래를 알지 못한다. A와 B의 거래는 양자의 구두계약에만 의존하는 것이다. 그리고 약속한 날짜에 A는 B에게서 약속한 금리로 채권을 되산다. B는 채권을 맡아두는 대신, 수수료 명목으로 이자수익을 얻을 수 있고 A는 자신의 투자한도를 넘어서는 거래를 할 수 있다.
A의 기대대로 채권가격이 상승하는 경우에는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다. 하지만 A의 예상과 달리 채권가격이 떨어지면 A의 손실이 뒤늦게 장부에 반영된다.
채권파킹을 하는 이유는 통상 브로커나 딜러가 회사가 지정한 보유한도를 넘는 채권을 사기 위해서다. 금리 하락을 확신하는 경우에 더 큰 이윤을 얻기 위해 무리수를 두는 것이다. 수익률에 따라 성과급을 지급받는 고용계약을 체결했기 때문에 돈 벌 기회를 놓치기 싫을 수밖에 없다.
◆ 한투證 "채권파킹, 아니다"
한투증권 관계자는 이번 사태가 파킹은 아니었다고 주장한다. 거래 한도가 5000억원이므로 굳이 파킹을 할 이유가 없다는 설명이다.
한투증권 관계자는 "매매과정에서 문제가 없는지 검사하는 것"이라며 "규정대로 했는데 손실이 났다면 문제가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채권시장에서 이미 파킹은 공공연하게 이뤄지고 있다. 그 규모를 짐작하기는 어렵지만, 중소형 기관들의 경우 자금펀딩이 여의치 않을 수 있고 또한 일시적으로 자금 조달이 막히는 경우도 있어 파킹의 유혹에 언제든지 노출된다.
증권사의 한 채권운용역은 "처음부터 손실을 숨기려는 목적보다는 대박을 노리고 무리하게 트레이딩을 한 경우일 것"이라며 "단기자금 조달 부족을 임시적으로 메꾸려다 보니까 남용되는 경우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물론 파킹을 한다고 해서 특별히 이익을 얻는 것도 아니고 손해를 영구적으로 감출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또한 파킹 자체가 특별하게 시장 질서를 교란한다고 보기도 어렵다.
다만, 파킹 규모가 크다면 해당 증권사의 리스크 관리 차원에서 문제가 될 수 있다. 회사가 자신의 채권팀의 수익률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가 뒤늦게 뒤통수를 맞을 수 있는 것이다.
◆ 금감원 "증권사들의 손실 규모 파악 중"
'작은 욕심'에서 시작됐다가 몇 번의 물타기(평균 매입 단가를 낮추기 위한 매수행위)를 거치면서 손실 규모가 눈덩이처럼 불어날 수도 있다. 특히 최근과 같은 금리 상승기에는 더욱 그렇다.
또한 반드시 할당받은 채권의 보유한도가 크다고 채권파킹을 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 예컨대 현·선물 차익거래(현물과 선물의 저평을 이용해 수익을 내는 거래, 통상 현물을 팔고 선물을 산다)를 하도록 부여받은 포지션에서 선물을 담으면서 ′딜미스′ 등으로 현물을 제때 팔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이 경우 물타기와 파킹이 반복되면서 손해가 커질 수 있다.
이처럼 현선 차익거래로 야금야금 이익을 내라고 준 포지션을 과도하게 열어뒀다가 문제가 생기는 경우도 채권시장에서 빈번한 것으로 알려진다.
국채를 담지 못하고 은행채나 회사채를 담기 위해 마련된 '인수북'을 운용하는 경우에도, 몰래 국채나 통안채를 파킹할 가능성이 있다.
파킹의 또다른 문제점은 거래의 안전성이다. 당사자간의 은밀한 약속에 의해 거래가 이뤄지기 때문에 후에 한 명이 변심을 할 경우, 상대방이 계약을 입증하기가 상당히 곤란하다. 아직까지 이같은 문제들이 불거지지는 않았지만 위험성은 상존한다.
결국 장내거래의 활성화로 해결을 모색해야 하지만, 단순히 파킹을 막기 위해 장외거래를 위축시킬 수는 없는 만큼 이 역시 쉽지 않다.
현재로서는 금융당국이 채권파킹에 대한 일제 점검에 돌입할 가능성은 크지 않아 보인다. 하지만 최근 채권금리 상승으로 증권사 등이 큰 손실을 보고 있어 추가적인 조치가 취해질 가능성도 남아 있다.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파킹이 일반적으로 행해지는 것은 아니라고 보고 있다"며 "다만 현재 각 증권사들에게 채권금리 급등으로 인한 손실 규모를 파악하기 위해 자료를 요청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뉴스핌 Newspim] 이에라 김선엽 기자 (sunup@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