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도 코끼리(대형 M&A)에 대한 투자를 계속하겠다". 워렌 버핏이 최근 한 얘기다. 확실히 투자의 현인은 위기를 지나면서 글로벌 기업 인수합병 기회가 열리고 있다는 판단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위기를 지나면서 저렴해진 매물로 달려들던 투자자들과 기업의 손길이 주춤하고 있다. 아직 세계경제와 체제의 불확실성이 높다는 판단인데, 이럴 때가 M&A 시장의 온도를 측정하는 좋은 기회가 될 수 있다. 선진국에서는 업계의 통합과 산업 간 융합의 필요성에 따른 대형 M&A가 증가한 가운데, 여전히 신흥시장 기업들의 해외 진출과 새로운 기회의 땅을 찾는 움직임이 발 밑에서 분주하다. 최근 글로벌 M&A의 동향과 특징을 살펴본다. <편집자 주>
[뉴스핌=김사헌 기자]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크고 인구가 많은 아프리카 대륙의 성장세가 아시아를 앞지를 것이란 전망이 나오면서, 이 시장에 대한 서방의 관심이 뜨겁다.
한국 KT가 남아프리카공화국의 텔콤 지분 인수 시도에 이어 모로코의 마록텔레콤 지분 인수전에 등장하면서, 아프리카가 기회의 땅이란 인식은 한국 사회에서도 널리 퍼지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이제 더이상 아프리카는 '희망없는 대륙'이 아니다. 최근 유력 글로벌 경제지인 '이코노미스트(Economist)'는 아프리카 특집을 통해 "아프리카는 희망에 가득차 있는 떠오르는 대륙"이라고 치켜세웠다.
아프리카는 그 동안 서방기업이 금과 다이아몬드, 석유만 캐가고 현지 경제는 도외시하는 '착취의 땅'으로 알려졌지만, 지금은 내수시장이 아직 막대한 성장 기회를 남기고 있는 '블루오션'으로 평가받고 있다.
아프리카는 1960년~70년 대에 과도한 사회주의적 계획 경제의 폐단이나 1980년 대의 지나친 규제완화와 다운사이징의 문제점을 해소하면서 최근 성장세를 되찾았다. 정치 지도자들도 과거에 비해 성숙했고, 무엇보다 아프리카인들의 능력이 높아지고 있다.
그 과정에서 전 세계 상품시장의 개발 붐과 통신시장의 급격한 성장이라는 호재도 만났다. 이어 소매금융과 의료정보 등의 시장도 성장이 개시되고 있다.
미국발 금융 위기에 이은 유럽 부채 위기로인해 선진국 경제가 부진하게 되자 전 세계 광산 붐이 주춤하면서 아프리카 대륙의 관련 M&A 시장도 위축되고 있지만, 여전히 식품과 통신 등 내수업종으로는 막대한 기회가 열리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출처: 국제통화기금, FT에서 재인용 |
◆ 지역 사모펀드시장 작지만 성장 기회 많아
아프리카에서는 기업 인수합병을 할 때 매물을 찾기 위해 투자은행의 자문을 받기 보다는 고급 술집에서 하라는 얘기가 있다. 그 정도로 아직 딜링마켓이 선진화되어 있지 않다.
현재 신흥시장 사모펀드의 절대 다수는 아시아에 몰려 있다. 아시아의 비중이 63%인 것과 비교하면 아프리카는 아직 4%를 차지하는 데 그친다. 그러나 시장의 성장 속도는 아프리카가 훨씬 빠르고 성장 여력이 매우 크다.
현지 시장조사업체인 프리킨(Preqin) 자료에 의하면, 현재 57개의 사모펀드가 131억 달러 규모의 딜을 노리고 있으며, 그 중 절반은 남아프리카에 포진 중이다. 최근 2년 동안 신흥시장의 사모펀드는 72%나 증가했는데, 지난해 하라 이남 지역의 사모펀드는 14억 5000만 달러로 되레 3% 줄었다. 2008년에 22억 4000만 달러가 최고점이었다.
최근에는 브라질 자금도 유입되고 있고, 중동과 미국에서도 시장에 뛰어들고 있다. 칼라일과 KKR과 같은 업계의 거물들이 이들과 손잡고 시장을 공략 중인데, 이 시장에서의 경쟁이 갈수록 만만치 않게 된다는 소식이다.
1990년 대에는 이 지역 M&A가 통화가치의 변동성 때문에 수익을 내기가 쉽지 않았는데, 지금은 통신시장에서 빛나는 성과가 있기는 했어도 다른 분야는 신통치 않다. 더구나 금융 위기가 발생한 뒤로는 더욱 성과를 찾기 힘들어졌다.
※출처: 딜로직, FT에서 재인용 |
◆ 착취 받던 땅, 진입장벽 많아
다만 이 시장의 진입장벽은 생각보다 높다. KT가 앞서 남아공 텔콤 지분 인수에 실패한 것은 현지 정부의 반대에 따른 것이다. 아프리카 정부들은 서방 기업들의 '제국주의적' 태도가 바뀌지 않는다면 배척할 것이란 경고와 함께, 그동안 막대한 원조와 함께 진출하던 중국에 대해서도 '신 제국주의'라며 경계감을 드러냈다. 그 만큼 내부적인 성장의 기회를 찾으면서 외부의 경제적 지분 추출 시도에 대해서는 제어하려는 것으로 판단된다.
이는 앞서 미국이 중국의 아프리카 진출 노력에 대해 "신 제국주의"라고 비난한 것이나 중국이 미국에 대해 "아프리카의 친구가 아니라 고압적인 과거 인식에서 접근하고 있다"는 비판을 내놓은 것과 무관치 않다. 다른 시각에서 보자면 아프리카가 그 만큼 중요한 시장으로 부상했음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일화다.
KT의 마록텔레콤 지분 인수도 이런 점에서 쉽지 많은 않다. 최근 카타르의 큐텔이 현지 정부와의 관계를 강조하면서 인수전에서 자신감을 드러냈는데, 이런 경쟁을 넘어서려면 생각보다 많은 부담스런 가격을 써넣어야 할 수 있다.
마록텔레콤 입찰에는 KT와 큐텔 외에도 프랑스텔레콤, 아랍에미리트연합(UAE)의 에티살랏 등이 참여 중이며, 3월 말부터 입찰이 개시된다.
아프리카 현지기업들도 역내시장이나 여타 외부 시장으로 확장에 관심이 많다. 내수 시장이 거의 포화상태에 도달하는 곳이 있는 만큼, 이러한 외부 확장이 성장을 위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 소매, 금융, 통신시장 기회 열려있다.
컨설팅업체 맥킨지는 소매와 금융 그리고 통신서비스를 포함하는 아프리카 내수시장이 2020년까지 무려 4100억 달러(456조 원) 증가할 것이란 전망을 제출했다. 아프리카 전체 산업의 같은 기간 성장의 절반 이상이 내수시장을 통해 나올 것이란 예상이다.
맥킨지는 "아프리카는 내수시장이 가장 큰 기회"라고 조언했다.
실제로 아프리카 정부들이 통신시장을 개방하고 금융규제를 완화하면서 그 동안 이 시장을 지배하던 독점 구조가 깨지고 있다. 유니레버와 같은 다국적 기업이 점차 이 시장에서 자리를 잡아가고 있으며, 한국과 터키, 인도, 중국도 시장 선점을 위해 열심히 기회를 찾고 있다.
특히 아프리카는 최근까지 중국의 관여와 함께 이동통신 서비스의 개시로 인해 빠르게 변화를 경험하고 있다. 이 시장의 성장 속도는 공식 통계 수치가 제대로 반영하지 못할 정도라고 한다.
무엇보다 사하라 이남 지역의 인구가 급격하게 증가하고 있는데, 2012년 현재 약 9억 명이던 지역 인구가 2050년까지 무려 21억 명까지 증가할 것이란 전망이 제기되고 있다. 아프리카는 15세 이하의 어린 인구가 40%를 차지할 정도로 인구가 젊은데, 길게 보면 막대한 소비시장이 형성될 것이다.
세계은행은 지금 아프리카가 30년 전의 중국처럼 막 고속성장을 하기 직전 상태라는 분석을 제출했다. 이제는 상품시장과 원자재 추출 산업으로는 고용과 성장의 기회를 담보하지 못하는 시장이 되고 있다.
◆ 아프리카 현지기업 외연 확장 필요성 증대
최근 아프리카 최대 제약업체인 아스펜(Aspen)은 발빠르게 나이지리아와 케냐의 직원들을 철수하고 다른 지역 시장에서의 기회를 찾는 방식으로 위험을 줄이는 전략을 구사해 주목을 받았다. 아스펜의 판매담당 부사장은 사하라 이남 지역의 42개 역내 시장은 물론, 아시아와 라틴아메리카까지 판매지사를 운용하고 있다. 이러한 지역시장으로 확장을 통해 위험을 분산할 수 있다고 본다.
특히 그 동안 서구의 다국적기업들이 아프리카시장을 방관하는 사이, 현지기업들은 불어난 틈새를 적극 공략했다. 무엇보다 파편화되고 좁은 역내 시장을 잇는 과정이 필요했는데, 이 과정에서 경쟁의 심화도 발생했다. 이런 변화를 주도한 것은 남아공의 서구화된 현지기업들이었다.
이들 범아프리카 기업들은 대륙의 성장을 국제투자자들과 잇는 역할도 햇다. 미국 유력 컨설팅업체인 보스턴컨설팅그룹의 분석에 의하면, 1999년에 아프리카 증시의 최상위 시가기업들 40곳에 100달러를 투자했다고 할 경우 2010년까지 900%의 투자수익률을 올릴 수 있을 정도였다.
금융산업서도 지역시장의 변화를 반영하고 있다. 아프리카에서 자산규모로 가장 큰 남아공의 스탠다드뱅크는 17개 아프리카 국가들에 진출하면서 자국시장과 역내시장에서 지위를 공고히헸다. 하지만 최근에는 유나이티드뱅크가 지역시장에 크게 확장한 가운데, 나이지리아은행이나 도코의 에코뱅크 등도 역내 확장 전략을 내놓으면서 도전장을 내밀고 있다.
제조업계에서는 아프리카 최대 갑부인 알리코 당고트의 당고트 그룹이 역내 13개국에 진출하면서 지배적지위를 차지하고 있고, 소매업체 중에서는 케냐의 나쿠마트와 식용유와 비누를 생산하는 비드코가 역내 시장으로 확장하고 있다. 물론 대부분의 현지 기업들은 아프리카 시장 전체로 확장할 수 있을 정도로 과감하지는 않다.
이 가운데 에어텔, 유니레버 그리고 네슬레 등 굴지의 다국적기업을 광고주로 삼는 케냐의 광고마케팅업체 스칸그룹은 나이지리아와 가나 등지에 사무소를 개설하면서 역내시장으로 확장 시도를 보이고 있다. 이 업체에 따르면 나이지리아 시장 규모는 동아프리카 전체를 합친 것보다 큰 것으로 분석된다.
[뉴스핌 Newspim] 김사헌 기자 (herra79@newspim.com)